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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니크 Nov 13. 2021

둘째라는 축복

  어렸을  내가 입고 다니는 옷은  유행이 4년쯤 지난 디자인이었다. 4 터울의 언니와 사촌 언니가 물려준 옷은 낡진 않았지만, 디자인이나 색상이 촌스러워 어린 나이에도 입고 싶지 않았던 적이 많았다. 설날에 받는 세뱃돈의 금액은 3남매  언제나 내가 꼴찌였다. 맏이인 언니에게 1 원을 주고 나와 남동생에게 나란히 5 원을 주고 나면 동생이 우엥 하고 울음을 터트렸고, 그러면 부모님은  이기는  동생에게 5 원을  얹어주셨기 때문이다.  도시락에 없던 계란후라이가 남동생 도시락을 뒤집어보니 있었다는 에피소드는 계란이 귀하지 않고 급식을 먹는 시대에 태어났기에 다행히 겪지 않았지만, 비슷한 에피소드는 눈물 콧물 쏟으며 얘기할  있을 정도로 많다.


  어렸을 때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언니는 첫째라서 권위를 세워줘야 하고, 동생은 막내라서 돌봐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세뇌된 말들은 그게 이상하다는 생각조차 들지 못할 정도로 어린아이였던 나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  자신은 언제 누가 챙기나하고 서러웠던 적이 많았다.



 인생 최초의 결핍은 
둘째 딸로 태어난 것이다.

  10  목수정의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처음 읽었던 때가 기억난다.  속에서 한없이 자유로워 보였던 그도 나처럼 둘째 딸이라는 사실이 반가웠다. 지난 10 동안 수없이 채워지고 비워진  책장의 역사 속에서  책이 살아남을  있었던 이유는 그가 나의 가장  결핍을 축복으로 바꾸어주었기 때문이다.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던   구절.


 그리고  열두  무렵,
나는 불안한 존재의 이유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결과 
 가지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나를 향해선 반쯤 감겨있던 
 부모의 시선,  악조건을 딛고 
가장  살아갈  있는 방법은 
 통에 주어진 자유를 만끽하는 
이라는 깨우침이었다.
 후론  이상 태어난 불운한 순번을 
책망하지 않았다.


  나는  이상 나의 결핍을 서러워하지도, 애달파하지 않기로 했다. 태어난 순번은 바꿀  없지만, 이후 삶은 내가 선택할  있기에.


  마음대로 했다. 인기없는 학과를 선택해 대학에 들어간 것도,  다니고 있던 회사를 퇴사한 것도, 대학원을 가기로 했다가 그만둔 것도, 이전 직장에서 받던 월급의 반밖에 주지 않는 회사에 다니기로  것도   마음대로였다. 선택도 결정도 모두 오롯이  몫이었다. 자식이 셋이나 있는데 칠순까지 손주 한명 안겨주는 자식 놈이 없다는 아버지의 투덜거림이 마음 아프지만,  뿐이었다. 아마 내가 맏이였거나 독자였다면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결혼을 서둘렀을지도 모르겠다. ‘굳이라는 단어가 바로 떠오르는  내가 둘째라서다. 믿었던 맏이가, 혹은 기대하던 아들이 부모님이 원하는 방향으로 살지 않을때는 실망이 크겠지만 둘째  정도는 잘되면 좋은거고 안되면 부모로서 걱정이 되는거지 실망은 하지 않는다. 애초에 기대도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유로웠고 둘째라서  자신에게는 축복이었다.


  누군가 30살이 넘으면 한국 사회에서 그에게 씌우는 굴레가 최소한 3 이상은  텐데, 그나마  굴레가 적다면 나는 태어난 불운한 순번이 가져온 축복이라 여기겠다. 가족  차별은 옛말이라고들 하지만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 눈에는   보인다고,  안다. 그런 말을   있는 정말 축복받은 사람들도 있지만, 아닌 사람도 여전히 많다는 . 그런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존재의 이유를 찾지 못한다는  결핍이   있지만, 존재의 이유가 확실한 사람들도  나름의 고충이 있으니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즐기라고. 태어난 순번은 그야말로 운일 뿐이니, 그렇다면 주어진 축복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각자의 몫으로 남을테니.



인용은 모두 목수정,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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