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액을 향한 욕망이 만든 파국
1. 이 글은 커넥터스가 만드는 큐레이션 뉴스레터 '커넥트레터'의 8월 22일 목요일 발송분입니다.
언젠가부터 저의 오랜 지인은 인스타그램 크리에이터가 됐습니다. 서울 동대문구 모처에 자리 잡은 그는 열심히 지역 음식점을 소개하는 사진과 글, 숏폼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렸고요. 포스팅당 수백~수천개 정도의 ‘좋아요’는 기본적으로 몰고 오는 사람이 됐습니다. 최근에는 구독자 60만의 맛집 유튜버가 지인에게 해당 지역 음식점을 추천해 달라고 요청했고, 이후 리뷰 콘텐츠까지 나왔을 정도라니 이런 걸 인플루언서의 인플루언서라 하던가요?
사실 팔로워가 거의 없던 초기부터 그의 활동을 지켜보던 저로서는 그의 전향(?)이 꽤나 궁금했습니다. 제가 알기로 그는 레스토랑 쉐프로 일하던 사람이었고요. 굳이 갑자기 ‘로컬’에 초점을 맞춘 음식점 리뷰어가 될 만한 연결점이 떠오르지 않았던 탓이겠죠.
심지어 그가 콘텐츠를 만드는데 집중하던 지역은 과거 서울의 대표적인 슬럼 중 하나로, 개발이 진행된 지금 기준으로 봐도 ‘핫플’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곳이었는데요. 그저 그가 그 지역 거주민이다 보니 취미 생활을 하나보다 정도로 가볍게 이유를 추측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 최근 우연히 그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듣게 됐는데요. 지역에 특화한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이 해당 지역 진출을 노리는 기업들이라면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핵심 마케팅 파트너로 떠오르고 있다나요?
예컨대 대기업들의 팝업스토어 실험장이자 F&B 각축장이 돼버린 성수동에서 그와 유사한 일을 하고 있는 인스타그램 크리에이터가 있는데요. 그의 한 달 수입은 수천만원에 달한다고 하고요. 그조차 한 달에 몇 건 이상의 광고를 받아 수십~수백만원의 부수입을 올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물론 당장 그가 콘텐츠를 만드는 지역이 핫플로 명성이 높지는 않지만요. 향후 성수동과 같은, 신사 도산공원과 같은, 용산 해방촌과 같은 변화가 그 지역에도 찾아온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겠고요. 이미 변화의 전조는 느껴지고 있다고 합니다. 최소한 그 지역에서 그는 최고의 명성을 가진 로컬 크리에이터로 자리 잡았기에, 변화는 곧 기회로 다가올 것이라고요.
한 편에서 그의 본업은 여전히 요식업이었습니다. 콘텐츠를 만드는 지역을 중심으로 여러 음식점 매장을 전개하고 있었는데요. 어떻게 보면 인스타그램을 통해 같은 상권에서 경쟁하는 음식점들을 홍보해준다고 볼 수도 있잖아요?
이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이야기하더군요. 서두에 이야기했던 60만 맛집 유튜버의 콘텐츠가 그의 가게를 다루진 않았지만요. 그 콘텐츠가 나온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지역 상권에 몰려왔고요. 같은 상권에 있었던 그의 가게 매출 역시 크게 늘어났다고요.
그렇다면 그가 만든 콘텐츠 역시 해당 지역에 트래픽을 유입하여, 전체 상권의 활기를 불어넣는 촉매 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봤습니다. 지역 가게들의 경쟁이 제로섬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수요가 유입돼 모두가 성장하는 그런 도시 재생의 시작점과 같은 이야기랄까요. 이건 실존하는 로컬 크리에이터의 이야기입니다.
얼마 전 전자제품을 주력으로 판매하는 한 커머스 업계 관계자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분은 저에게 왜 티메프(티몬, 위메프) 미수금 사태의 피해가 유독 ‘용산 전자상가’에 집중됐는지 아냐고 물으면서 운을 띄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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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이상합니다. 기사(경향신문)를 찾아보니 용산 전자상가 업체들은 이미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 판매에 주력한지 오래고요. 특히 올해 초 기준으로 티몬과 위메프 판매 비중이 90%에 육박한 업체도 있다고 하는데요. 왜 하도 많은 플랫폼 중에서 ‘티메프’에 온라인 판매가 쏠리는 현상이 일어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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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는 티메프의 적자를 감수한 특가 판매 정책 때문이었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 여러 사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티메프 사태 발발 이전부터 티몬과 위메프에서는 전자제품 및 컴퓨터 부품에 대한 최저가 행사가 이어지곤 했는데요.
저에게 이야기를 전해준 관계자에 따르면 이 할인액을 대부분 플랫폼인 티메프가 감당했다고 하고요. 용산 판매업자는 여기서 일정 비중의 ‘이익’을 보장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티메프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크게 늘어났다고 합니다. 심지어 ‘깡’이라는 별칭이 붙은, 거래와 판매를 반복하여 플랫폼 거래액과 판매자 이익을 끌어올리는 행위도 이어졌다고 하고요.(이건 별도 취재를 거친 콘텐츠로 더 자세히 다룰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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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티메프는 이렇게 손해를 보면서까지 무리한 특가 판매를 감수한 것일까요? 이커머스 업계에서는 그 이유를 플랫폼의 GMV(Gross Merchandise Value, 거래액)를 부풀리기 위한 욕망에서 찾더군요.
큐텐이 물류 계열사 ‘큐익스프레스’의 나스닥 상장을 지상 목표로 움직이고 있었던 만큼, 상장 성공을 위해서는 티메프를 포함한 인수 기업들의 ‘성장세’를 보여주는 것이 너무나 중요했을 텐데요. 특히 큐익스프레스는 티메프의 글로벌 풀필먼트를 담당하는 업체인 만큼, 티메프의 GMV 성장 지표는 더 높은 기업가치로 평가받기 위한 사전 작업의 재료가 됐을 것이란 추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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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더해 티메프의 GMV 증대는 그 자체로 큐텐그룹의 ‘현금흐름’ 마련에도 도움이 됐을 것이라는 평가가 함께 나옵니다. 최근 검찰이 규정했다는 보도가 나온 것처럼 이번 사태는 티메프가 판매자에게 정산할 대금으로 현금흐름 돌려막기를 하고 있었기에 발생한 것이나 다름없는데요. 물론 이렇게 늘린 GMV는 몇 달 뒤 판매자에게 정산해야 할 돈이고, 여기 더해진 특가 할인 비용은 필연적으로 티메프의 재무 부담으로 가중되겠지만요. 그 사이 큐익스프레스 상장을 성공시킨다면 새로운 자본을 수혈하면서, 당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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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GMV는 모바일 시대의 개막과 함께 우후죽순 등장한 이커머스 플랫폼들의 성장을 평가하는 대표적인 지표였습니다. 매출 성장률은 다소 부족하더라도, 심지어 막대한 규모의 적자가 나오더라도 GMV 성장률만 높다면 대규모 투자를 받을 수 있었던 시기가 분명 있었고요. ‘계획된 적자’라는 이커머스 업계의 유행어도 사실 높은 GMV 성장이 뒷받침됐던 쿠팡과 같은 플랫폼을 중심으로 사용됐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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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GMV가 이커머스 성장의 모든 것을 설명하던 시대는 이제 저물고 있습니다. 2022년 엔데믹 이후 인플레이션과 소비침체, 금리 인상과 투자 유동성 악화 등이 가장 큰 영향을 줬고요. 투자업계에서는 기업 투자에 앞서 손익 관련 지표를 요구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관측되고 있습니다. 최소한의 수익성이 검증되지 않는다면, 투자하지 않겠다는 것이 최근까지 이어지는 투자 기조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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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에서 유행처럼 GMV 관련 성장 지표를 발표하던 이커머스 플랫폼들은 더 이상 실적 발표 보도자료에서 ‘거래액’을 이야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외부 투자 유치로 추가 유동성을 끌어들이기 어려워진 만큼, 이커머스 플랫폼 역시 ‘손익’을 최우선 지표로 조직을 정비하는 모습이고요. 최근 몇 년 사이 부쩍 늘어난 이커머스 플랫폼의 공헌이익, EBITDA, 영업이익 흑자 전환 소식들이 이를 방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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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플랫폼들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상황은 손익 지표를 개선함과 동시에, GMV와 매출까지 동시에 성장하는 그림을 만드는 것일 텐데요. 안타깝게도 거시 경기 악화로 인해 GMV 및 트래픽 성장률이 정체되거나 역성장한 플랫폼들이 곳곳에서 보이고 있고요. 이렇게 저성장이 장기화 된다면 유동성 호황기에 높은 GMV 성장률을 기반으로 받았던 기업가치(Valuation)를 지키는 것도 요원해지니, 여러모로 플랫폼들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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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 편에서 최소한 GMV를 기준으로 봤을 때 국내 이커머스 업계 ‘양강’ 지위를 상실한 것처럼 보이는 플랫폼이 있으니 ‘네이버’입니다. 네이버 커머스 GMV는 2023년 4분기를 정점(12.4조원)으로 성장 정체를 면치 못하고 있고요. 최근 2024년 2분기 기준 네이버의 커머스 거래액 성장률은 4.1%로 동기간 통계청 발표 기준 이커머스 평균 거래액 성장률(8.6%)의 절반에 못 미칩니다. 1위 플랫폼인 쿠팡의 2024년 2분기 국내 커머스 플랫폼(Product Commerce) 매출 성장률(고정환율 기준 18%)과 비교하자면 1, 2위 플랫폼 사이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는 모습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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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군다나 그나마 높은 성장률을 이어가면서 네이버의 자존심을 지켜주던 스마트스토어, 브랜드스토어 등 네이버 자체 커머스 플랫폼 실적이 반영되는 ‘온플랫폼 거래액’ 성장세도 악화되고 있습니다. 네이버는 매분기 실적발표에서 언급하던 온플랫폼 거래액 지표를 2024년 2분기 실적 발표에선 밝히지 않았고요. 2024년 2분기 기준 온플랫폼 거래액의 전년 대비 성장률로 7.6% 정도만 언급했는데, 이 또한 동기간 이커머스 평균 거래액 성장률에 못 미치는 수준이거든요.
이 때문인지 최근 네이버 2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 현장에서는 네이버의 GMV 성장률이 점차 둔화되고, 1위 플랫폼 쿠팡과의 격차가 벌어지는 것에 대한 네이버의 대책을 묻는 애널리스트의 질문이 나오기도 했는데요.
이에 대해 김남선 네이버 CFO는 “마케팅, 특히 커머스에서 저희 과제는 거래액 같은 단기적인 외형만 쫓는 것이 아니라, 음수 아닌 양수가 나오는 ROI(Return on Investment)로 똑같은 마케팅 비용을 쓰더라도 보다 탄탄한 코호트(고객 집단)를 쌓을 수 있도록 사용자를 확보하는 것”이라며 “보다 장기적으로 사용자를 위한 근본 가치를 제공해야 마케팅 ROI가 나오고, 매출 가속으로 이어질 것”이라 답했고요.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FMCG 카테고리를 중심으로 한 경쟁사(쿠팡)의 매출 성장세는 기존 오프라인 리테일 사업자들의 점유율을 가져가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지만, 이 부분이 네이버의 경쟁 상황을 심화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조금 더 고관여 모델을 진행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면서 “네이버의 차별화된 강점은 우리 생태계를 통해 참여자들이 함께 성장하는 모델이며, 커머스 본연의 목적이나 사용자 가치가 하나로 통일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최수연 네이버 대표가 이야기한 생태계 파트너와 ‘동반 성장’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결국 네이버의 매출뿐만 아니라, 생태계에 참여한 파트너들의 매출 역시 증가해야 할 것으로 보이고요. 파트너의 매출을 설명하는 가장 직관적인 지표가 GMV인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인데요.
[함께 보면 좋아요! : 네이버가 거래액 성장 둔화와 중국발 커머스 침공에 대응하는 방법, 커넥터스]
한편, 네이버의 2024년 2분기 커머스 매출은 729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6% 성장하면서 동기간 거래액 성장률(4.1%)과 3배수 이상의 차이를 벌렸습니다. 네이버에 따르면 이는 (스마트스토어보다 수수료가 높은) 브랜드스토어 입점사 확대, 브랜드 솔루션 패키지로 대표되는 커머스 솔루션 매출 확대, (수수료 과금을 본격화한) 크림의 성장에 따른 결과라는 설명입니다.
이는 최근 스마트스토어 판매자들 사이에서 “네이버에 별도의 광고비용을 집행하지 않으면 노출조차 되기 어렵다”는 증언이 곳곳에서 나오는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이는데요. 점점 벌어지고 있는 매출과 거래액 성장률 사이의 격차는 무엇보다 네이버의 핵심 파트너인 셀러들의 불안감을 키우는 모습입니다. 네이버는 이들의 불안을 불식시킬 수 있을까요?
티메프 사태의 여파는 아직도 이커머스 업계 전체를 흔들고 있습니다. 미정산의 피해는 이제 셀러들을 넘어서, 그들과 연결된 가치사슬 전체로 확장될 조짐이 보이고 있는데요. 바로 셀러들에게 상품을 공급한 공급업체와 고객까지의 물류를 대행한 물류업체들의 이야기입니다. 엔데믹 이후 경영 상황이 악화된 것은 물류업체들 역시 마찬가지인데, 이들은 어떻게 티메프 사태의 여파에 대응하고 있을까요? 연쇄 피해를 막을 만한 ‘한 수’는 없는 걸까요?
[함께 보면 좋아요! : 물류까지 번지는 티메프 사태, 현장이 말하는 해결책은?, 커넥터스]
거시 경기 불황 속 국내 사업 성장을 확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물류기업들은 ‘글로벌’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특히 저성장 시대가 무색한 폭발 성장을 증명한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들과 연계한 ‘크로스보더 이커머스’ 물동량에 물류기업들이 주목하고 있는데요. 한국에서도 적극적으로 브랜드 러브콜을 보내는 알리바바의 상품 소싱 방법론과 연결된 물류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함께 보면 좋아요! : K-브랜드 러브콜 보내는 ‘알리바바식 상품 소싱’의 두 갈래 방향, 커넥터스]
소비 침체가 계속되는 와중에도, 변하지 않는 물류의 역할은 역시나 생산성 증대와 비용 절감으로 대표되는 기본 가치입니다. 신규 고객 및 물동량 유입으로 매출을 늘리긴 어렵더라도, 여전히 기존 고객 대상의 물류 원가를 절감하여 이익의 파이를 넓히는 방법은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 수천억원 매출을 만드는 식품 브랜드 이그니스의 물류센터장인 커넥터스 외고진 양거봉님의 이커머스 물류 실무 연재가 풀필먼트 핵심 관리 영역인 ‘출고관리’ 방법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양거봉님이 이전부터 남긴 연재도 함께 보면 좋습니다.
[함께 보면 좋아요! : 물류 생산성 높이는 피킹 프로세스 설계 방법론 AtoZ, 커넥터스]
오늘 커넥트레터는 여기까지입니다. 티메프 사태로 인해서 엔데믹 이후 하나씩 등장하던 이커머스 플랫폼의 현금흐름 이슈가 다시 한 번 곳곳에서 부각되는 요즘인데요. 여러모로 분명한 위기 상황이지만, 저희는 와중에도 희망을 찾고 싶습니다. 가장 처음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작은 영역’일지언정 성과를 만들고 있는 크리에이터, 셀러, 브랜드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요. 이들의 이야기가 업계의 반등을 만드는데 작은 힌트가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저희도 분발하겠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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