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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에 ‘버티는 지구력’을 설계한 브랜드의 3가지 비밀

지속가능성의 비밀 : 리텐션과 진입장벽, 그리고 레버리지

by 엄지용

불황을 극복하자는 말, 요즘은 살짝 공허합니다. 지난 몇 년을 돌아보면, 불황은 한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팬데믹이 덮쳤고, 글로벌 물류가 막혔고, 전쟁은 이어졌고, 최근 트럼프 2기의 관세 이슈까지 더해졌죠. 변수는 상수가 됐고, 이 환경에서 사업이 살아남는 방법은 단순합니다. 오랫동안 버틸 수 있는 체력을 기르는 것. 그러면서도 조금씩 성장을 만드는 것. 멈추지 않고 천천히라도 전진하는 바닥의 힘을 깔아두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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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희 데일리트렌드 대표가 밝힌 요즘 시대의 커머스 트렌드 ‘지속가능성’도 같은 맥락입니다. 단기간에 몇 배씩 성장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것은 불황기에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시계를 되감아 호황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SF 영화가 아니니까요. 이보다는 여러 변수로 충격을 받아도 흔들리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우상향하는 비즈니스의 골격을 세우자는 겁니다.


그 골격을 만드는 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단기간에 이뤄질 수 있는 요행이 아니죠. 김 대표가 찾은 답은 ‘구조’에 있습니다. 고객 전방 프론트엔드에서는 광고를 끄더라도 돌아오는 고객의 ‘리텐션’을 설계해야 합니다. 고객 눈에 보이지 않는 백엔드에서는 누구나 못 들어오는 ‘진입장벽’을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만 현금흐름을 지키고, 마진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 김 대표의 강조사항입니다.


오늘은 커넥터스의 미디어 파트너이기도 한 데일리트렌드를 운영하는 김소희 대표로부터 장기화된 불황에도 ‘지속가능성’을 찾은 여러 브랜드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정리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가 독자 여러분에게 불황을 견디고 나아갈 수 있는 힌트가 되길 바랍니다.


프론트엔드 : 광고를 꺼도 돌아오는 힘


지속가능성의 첫 질문은 앞단에서 시작합니다. 광고를 꺼도 고객이 돌아오는가. 이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당장 광고를 꺼버리면 트래픽이 죽어버려 고민인 브랜드들이 시장에 너무나도 많으니까요. 자생하는 리텐션을 만들기 위해서는 브랜드 철학이든, 디자인이든, 사용 경험이든. 고객에게 기억되고 사랑받는 브랜딩을 만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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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는 뷰티 ODM 업체 ‘엔코스’의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한국콜마나 코스맥스 같은 기업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뷰티 제조사라면요. 엔코스는 ‘하이드로겔 마스크팩’과 같은 틈새 제품에 전문성을 가진 기업인데요. 16년의 업력 만큼이나 어떤 제품이 뜨는지, 반대로 어떤 제품이 잊혀지는지 잘 알고 있고, 브랜딩에 대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곳이라 소개했습니다.

“엔코스의 고객 중에도 쟁쟁한 브랜드들은 정말 많지만, 그중에는 지금 사라진 곳도 있어요. 정말 안타까운 일인데요. 브랜드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마케팅 메시지와 고객 후기가 일치해야 합니다. 마케팅은 당연히 해도 되지만, 과대광고는 경계해야 합니다. 이를 깨닫고 제대로 한다면 누군가는 에이피알 같은 브랜드가 되고, 그게 안 된다면 반짝 성과로 활활 태우고 사라질 수 있습니다”
- 김소희 데일리트렌드 대표
ADKq_NaVSboKN4dLJg6NujLPkIIYL3GPVGAoYWKpPnLuxIpNBmJy4i1EwQTJuwyFkNSqZoCz9K3suWhm-VCPdpfS475cfv7GtWPpW5gRiVFbtroW5kM7=s0-d-e1-ft 독일 ‘iF 디자인 어워드 2024’ 커뮤니케이션 브랜딩 부문에서 본상을 수상한 어톰의 뷰티 브랜드 톰 제품 ⓒ앳홈

또 다른 사례는 ‘앳홈’입니다. 소형 가구를 타깃한 생활 가전제품 브랜드 ‘미닉스’를 운영하는 기업으로, 음식물쓰레기 처리기로 히트를 쳤는데요. 한 편에서 뷰티 브랜드 ‘톰(THOMB)’을 전개하고 있기도 합니다. 김 대표는 앳홈이 성공한 이유로 기본적으로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if 디자인 어워드 등에서 수상할 정도로 디자인이 훌륭하기도 했지만, 브랜드 오너의 일관된 철학을 꼽았습니다.

“앳홈 대표님은 혼자서 작은 집에 사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해요. 왜 작은 집에 놓을 예쁜 가전제품은 없는 걸까. 집에 건조기를 두고 싶은데, 왜 작은 집에는 그걸 둘 공간조차 마땅치 않을까. 그렇게 고민하다가 하나씩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작은 가정에 들어갈 수 있는 예쁜 가전제품으로 틈새를 찾은 거죠.

앳홈이라는 이름엔 ‘집에서 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피부 관리도 집에서 하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몇 년 동안 개발하여 뷰티 디바이스를 냈는데, 이것도 디자인이 너무 예쁩니다. 그 비주얼은 ‘발뮤다’나 ‘애플’과 비교하여도 꿀리지 않아요. 저는 앳홈을 브랜딩에 투자하면서도 창업자의 철학과 잘 연결되는 브랜드라 생각해요”
- 김소희 데일리트렌드 대표

오프라인을 리텐션을 굳히는 장치로 사용하는 브랜드도 있습니다. 무신사 스탠다드가 보여줍니다. 김 대표에 따르면 무신사 온라인 스토어가 존재함에 불구하고 고객이 오프라인 매장에 방문하는 이유는 ‘경험할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무신사는 상권에 맞춘 로컬 콘셉트로 ‘보러 갈 이유’를 만들고요. 오프라인에서 핏과 감성을 확인하고, 결제는 온라인에서 마무리합니다. 외국인 유동이 많은 상권에서는, 오프라인이 글로벌 인지 확장을 위한 촉매로도 기능합니다. 가봤다는 경험이 온라인 구매를 밀어주는 구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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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가 강조한 프론트엔드는 결국 팬을 만드는 공정이라 요약 가능합니다. 우리는 이를 몇 가지 질문으로 점검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 브랜드를 표현하는 한 줄 문장은 무엇인가. 제품이 바뀌어도 그 문장이 유지되는가. 둘째, 홍보 문구와 실제 후기가 일치하는가. 과장된 약속이 리텐션을 갉아먹고 있지 않은가. 셋째, 오프라인 경험이 온라인 결제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루프를 설계했는가.


백엔드 : 관계 자산으로 만드는 진입장벽


앞에서 팬을 만들었다면, 뒤에서는 누구나 못 들어오게 막아야 합니다. 막강한 물류나 제조, 공급망 인프라도 진입장벽이 될 수 있겠죠. 다만 여기에는 많은 초기 투자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고요. 그보다 김 대표가 주목한 것은 오랜 시간과 열정, 생태계(Scene)에 대한 이해가 만든 신뢰 네트워크였습니다. 이를 통해 일종의 ‘관계 자산’을 구축하여 진입장벽으로 활용하는 브랜드들이 있습니다.


먼저 웍스아웃. 표면적으로 웍스아웃은 될성부른 브랜드의 상품을 떼어 와서 소개하는 편집샵, ‘유통사’입니다. 그런데 스트릿 패션 생태계에서 그 영향력은 단순한 유통사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 자체로 ‘플레이어’로 인정받은 회사이고, 이는 길게는 십수 년을 함께하며 쌓은 신뢰가 만든 결과입니다. 이것이 큐레이션의 깊이와 협업의 속도, 현지화의 감각에 영향을 준다는 평가입니다.

“웍스아웃은 어떻게 보면 엔터테인먼트 매니지먼트 회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웍스아웃은 글로벌 네임드샵으로 인정받고 있고, 브랜드로부터 투자를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기도 합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오랜 기간 브랜드들과 관계를 함께 하면서 신뢰를 쌓아야 해요. 스트릿 씬은 2년마다 보직이 바뀌는 대기업 담당자가 요청한다고 옷을 받아올 수 있는 세계가 아니예요. 그 씬의 문화를 이해하는 사람으로 인정받아야 할 수 있는 겁니다. 괜히 칼하트, 팔라스 같은 브랜드가 웍스아웃을 유통 파트너로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웍스아웃은 무려 20년 동안 관계 자산을 만들어 왔고, 이제 그 잠재력이 터졌습니다. 스트릿 패션이라는 스케일업을 논하기 어려운 니치(Niche) 카테고리에서 인정받아 매스 시장을 이뤘습니다”
- 김소희 데일리트렌드 대표


두 번째 사례는 작업용품 업계의 다이소라고 불리우는 ‘워크업’입니다. 겉으로 보면 워크업은 저렴한 작업용품을 파는 매장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김 대표가 주목한 것은 내부의 네트워크 구조였습니다. 예를 들어 2013년 워크업의 전신인 캠핑용품 매장 ‘고릴라캠핑’의 탄생부터 2022년 대명화학 인수 이후까지 10년 이상 만들어 온 브랜드들의 관계와 대명화학 브랜드끼리 밀어주는 가맹 구조가 대표적이죠. 김 대표에 따르면 불황이 길어지면서 모두가 다이소 같은 걸 하고 싶어 하지만, 이러한 백엔드는 복제가 어렵습니다. 누군가는 가격 경쟁에 휘청이지만, 버텨나가는 브랜드는 다릅니다. 똑같이 ‘가성비’를 외쳐도 백엔드의 깊이에서 승부가 갈립니다.


이처럼 관계 자산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맷집을 만듭니다. 프론트엔드가 팬을 만든다면, 백엔드는 그 팬들이 떠나지 않는 이유를 백스테이지에서 공고히 합니다. 둘 중 하나만 세우면 불안합니다. 앞에서 사랑을 받아도 뒤가 비어 있으면 금방 따라잡히고, 뒤가 단단해도 앞이 비면 성장 곡선이 꺾입니다. 가능하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두 가치를 모두 채워야, 지속가능한 브랜드가 될 수 있습니다.


기존 강점을 지렛대로 쓴다면 생기는 일


마지막으로 김 대표가 강조한 것은 ‘레버리지’의 중요성입니다. 불황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기존 자산만으로 높은 성장을 만들기는 쉽지 않습니다. 브랜드들은 기존 자사 강점을 지렛대로 활용하여 새로운 ‘부업’을 찾아야 합니다. 예컨대 판매만으로 성장을 만들기 어려운 소비 침체기라면 광고에서, 데이터에서, 물류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합니다.

ADKq_NaFaNXHprUzwU3hatZaru6FusLNFYodQwGoO0D5Od8jtsKYABzNzXAvoRJitthOuJsREGSaAIwS814wGUBQ_Ebo9jD8LxELIFtB6bXpSa_Dv1sM=s0-d-e1-ft LCDC가 운영하는 성수 매장. 연무장길이 힙해지기 이전부터 이 거리의 문화를 만드는데 기여한 브랜드로 꼽힌다. ⓒLCDC

LCDC를 예로 들어볼까요. LCDC는 패션기업 에스제이그룹이 성수동 연무장길이 힙해지기 이전부터 운영하던 플래그십 스토어가 시작점이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연무장길에 사람이 몰리자 지금은 공간 대관으로 더욱 잘 나가고 있어요. 팝업스토어도 팝업스토어이지만, 매달 한 번 이상은 음악 콘서트를 하기도 해요. 최근에는 싱어게인 우승자인 홍이삭 콘서트가 화제가 되기도 했죠. 공간에 사람이 몰리자, 부동산의 가치는 자연스럽게 올라갔습니다.

“단순히 공간을 감각적으로 꾸민다고 그 공간이 돈을 버는 것은 아닙니다. 공간이 돈을 벌려면 사람들이 오래 머물러야 합니다. 그러면 그 공간에서 물건을 안 사더라도 커피를 사 먹고, 밥을 사 먹고 돈을 씁니다. 이제 우리는 공간의 리텐션, 최적화를 고민해야 합니다. 공간 스스로가 돈을 벌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 김소희 데일리트렌드 대표

다른 예로 GS리테일은 요즘 ‘리테일 미디어’ 실험에 한창입니다. 편의점에 디지털 사이니지를 설치하고, 오프라인 방문 데이터와 앱 점점에서 확보하는 온라인 데이터를 활용한 광고 사업을 운영하고 있어요. 오프라인 유통기업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접점을 미디어 자산으로 돌리는 시도가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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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가 설명하는 ‘레버리지’란 확장의 언어입니다. 브랜드 기업이 성장한다면 자연스럽게 유통을 하고, 플래그십 매장을 운영하다 보면 또 자연스레 부동산에 투자하게 됩니다. 반대로 유통기업이 브랜드를 전개하는 일도 너무나 일반적입니다. 생활용품 브랜드가 뷰티로, 식품으로 카테고리를 넘나드는 일도 흔합니다. 본업의 성장 부진을 본업의 경쟁력을 지렛대로 삼은 새로운 부업이 극복해 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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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는 경계가 무너진 세상에서 “사일로를 깨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커머스라는 거대한 생태계 안에서 브랜드하는 사람, 유통하는 사람, 제조하는 사람, 물류하는 사람이 남의 일처럼 서로를 바라보면 안 됩니다. 전체 가치사슬을 조망하고, 나의 이야기가 그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파악해야만 ‘기회’를 찾을 수 있다는 겁니다.

“리테일 산업은 그 자체로 굉장히 큽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각각의 사일로가 존재해요. 자꾸 연관된 업계에 자신만의 우주를 들이댑니다. 그러려면 너무 많은 공력이 필요해요. 예를 들어 리테일 테크 기업이 그들이 어떤 기업이고 어떤 기술력을 갖고 있는지 산업 실무자에게 소개한다면 그게 잘 와닿지 않는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보다는 상대방의 우주에 들어가서 그들의 고민에 공감하고, 이를 해결해줄 수 있다고 하는 것이 훨씬 설득력이 좋아요. 그래야만 서로 통할 수 있어요”
- 김소희 데일리트렌드 대표

잠깐 생각해보죠. 이 글을 읽은 여러분의 비즈니스와 서비스는 어떤 강점을 갖고 있나요? 그리고 그 강점을 어떤 다른 장면으로 번역할 수 있나요? 사일로를 깨고 상대방의 고민 속으로 들어간다면, 매출은 한 번이 아니라 다음번을 데려올지 모릅니다. 프론트엔드에서 팬을 만들고, 백엔드에서 관계 자산을 다지고, 레버리지로 확장의 경로를 열어두는 것. 불황이 상수인 지금, 버티며 성장하는 브랜드가 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순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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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콘텐츠에 등장한 엔코스, 앳홈, 무신사, 웍스아웃, 워크업, LCDC, GS리테일 등은 모두 다가오는 10월 22일, 23일 열리는 <넥스트 커머스 2025>에서 직접 만날 수 있습니다. 지면상 모든 이야기를 전하지는 못했지만 연세유업, 설빙, 번개장터, 예스비, 스타벅스코리아, YTN(N서울타워 운영사) 등의 세션도 준비돼 있어요. 자세한 구성은 공식 프로그램을 확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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