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천문대에서의 별자리 프로그램과 가장 밝은 별.
1.
입대 몇 주 전에 동생과 김해 천문대를 갔었다.
하필 그 날 잔뜩 낀 구름은 별이란 별들은 죄다 가리워,
천체망원경으로 쏘아보낸 나의 시각엔 검은 하늘만 잡힐 뿐이었다.
대신 '별자리 프로그램'이라는 선험지식 학습 프로그램을 듣게 되었는데
당연히 기대되지 않던 그 한시간이 굉장히 큰 만족을 주었던 기억이 난다.
후일에 마음에 꼭 맞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오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절기마다 별자리가 다르듯, 프로그램도 달라지니 그건 또 얼마나 매력적인지.
아마 그 날은 오리온자리에 관한 일화들과, 가장 밝은 별이 북극성이 아니라는 사실,
큰 개 자리와 작은 개 자리의 위치 따위를 들었던 것 같은데
요즘 새로 배치된 내무실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꼭 작년의 그 별들이 보이는 것이었다.
맞아, 어느덧 1년이 지났다.
2.
여태 가장 밝은 별은 북극성으로 알았다.
하지만 태양을 제외하고 우리에게 가장 밝은 별은 사실 '시리우스'다.
'북두칠성'의 북극성이 아니라 '큰 개 자리'의 시리우스가 밤하늘의 가장 밝은 별이었던 것이다.
가장 밝게 빛나는 시리우스를 지표로 방향을 잡아온 우리는, 그 무지로 인해 얼마나 환상방황을 했던가.
가장 밝을 줄 알았던 북극성이, 사실은 그렇게 밝은 별이 아니라는 사실은 또 얼마나 우리를 당황케 했던가.
나는 '속도보단 방향'이라며, 앞서 가는 치들을 그렇게도 비웃었으나
정작 방향설정부터 어긋난 나의 현실은 서슬 퍼런 날을 제 목에 들이댔다.
내 모습이 이렇게까지 처량해질 줄은 몰랐다. 스스로 빛난다 믿었던 그 시절엔.
언제까지 북극성처럼 밝을 줄 알았던 내 모습은
사실 그렇게 밝은 별도 뭣도 아닌, 그저 북쪽에 있는 별이었다.
3.
오늘은 머리를 짧게 잘랐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볼 땐 '밀었다'는 표현이 적당할 텐데 뭐랄까,
머리를 '잘랐다'고 얘기할 때의 그 담담하고 쓸쓸한 느낌이 좋아 잘랐다는 표현을 썼다.
하지만 현실은 잘린 게 아니라 밀린 머리처럼, 그저 겨우 살아내는 처절한 종류의 것이었다.
나는 해야 할 공부부터, 진로와 관련된 대부분의 계획을 포기했다.
양재역에서의 1년도 버틴 나였는데, 벌써부터 이번 겨울이 추울 것임을 짐작케 하는 많은 시선들은
파리처럼 틈만 나면 방으로 들어와, 귓가에서 쉴 새 없이 챙챙거렸다.
근데 포기란 건 막상 하고나면 기분 좋은 냄새가 나는 것으로써,
나는 이제야 아무 것도 들지 않게 된 손들을
주머니에 찔러 넣어 보기도 하고,
아름다운 것들엔 손을 내밀어 더듬기도 하며 행복해보는 것이다.
이번 3개월은 아무것도 안하고 책만 읽고, 밥을 먹고, 운동하고, 또 책만 읽기로 했다.
4.
북극성이 가장 밝은 별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다음으론 손이 덜덜 떨리도록 붙잡고 있던 것들을 놓아보니,
도리어 선명해진 것이 있다.
안되는 건 결국 안되고 만다는 사실은 얼마나 멋진 것인가.
안되는 것도 어떻게 하면 될 수 있다면 그건 정말 불행한 일인 것이다.
안되는 건 결국 안되고 말고, 되는 건 결국 되고 만다.
나는 그 흐릿한 간극을 이제야 선명하게 보고 만다.
이번 겨울은 추울 거다. 어쩌면 작년보다도.
하지만 그래도 책장엔 아직도 덜 읽은 책들이 가득하고, 그것만으로도 이미 나쁘지 않다.
머리는 다시 길게 마련이고, 잠 든 쑥들은 기어이 얼어붙은 땅을 녹여내고
대지에 제 머리를 들이미는 것이다.
5.
2015년에도, 조금 이르지만 온 힘을 다해 고마운 마음을 보낸다.
아직은 잘 모르긴 하지만 결국은 고마워하고 말 거다.
내년에도 하늘엔 똑같은 겨울철 별자리가 수 놓일 테지만, 그때는 조금 달라져 있을까.
가장 밝은 별이 북극성이 아니라 시리우스임을 이제는 아니까.
아마 한동안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