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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베이지 Dec 11. 2016

[라라랜드] 당신을 위한 단 한번의 플래시백.

Welcome to Seb's

                                                                         

▲ 12월 7일 개봉작, 데미언 채즐의 라라랜드.                                                                         




1. 프롤로그


  데미언 채즐 감독의 신작, '라라랜드'를 보고 왔습니다. 한 해를 예쁘게 매듭짓는 방법으로 영화만한 게 있을까요. 하물며 그게 이토록 황홀한 작품이라면 또 어떤가요. 엔딩부의 우아한 플래시백과 함께, 묵은 감정들이 영화와 현실을 넘나들며 물감처럼 뒤섞이는데 고것 참 간질간질- 난처하더군요. 하지만 이내 연주곡이 잦아들면서 감정의 파고도 잔잔해져 갑니다. 엔딩 크레딧과 함께 다사다난했던 올 한해도 곱게 매듭지어봅니다. 고마웠어!



  자, 본격적으로 영화평을 시작하기 전에 우선 비하인드 스토리를 보겠습니다. 오늘 소개할 '라라랜드'는 데미안 차젤레(Damien Chazelle) 감독의 플래그쉽 작품입니다. 데미안이 라라랜드의 각본을 썼을 당시에는 어디에서도 투자를 받지 못했다고 하지요. 생각해보면 85년생 초짜 감독의 데뷔작에 (심지어 촬용비용도 상당한) 선뜻 투자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거야말로 마법같은 일이지요. 그래서 데미안이 준비하게 된 작품이 위플래시입니다. 평단의 박수는 물론이고, 국내에선 대중들까지 사로잡아 입소문을 탄 작품인데요. 사실 대중적인 작품은 아닌데, 오히려 그 매니악한 지점이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킨 부분은 주목할만합니다. 



  위플래시의 성공으로 자본과 명성을 획득한 데미안은 2016년, '라라랜드'를 완성하게 됩니다. 이러한 현실 속 배후사연이 영화 속 줄거리와 상응하는 부분이 있어, 상당히 입체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미아 역의 엠마스톤은 작품속에서 1인극으로 시작해 대배우가 되지요. 또한, 미아의 오디션 장면에서 왜 캐스팅 스탭이 문을 덜컥 열고 들어오잖아요. 그 장면 역시 라이언 고슬링이 직접 겪은 실화라고 합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영화평을 시작해볼까요.






▲ 영화 속 탭댄스와 피아노 연주 장면들은 모두 대역없이 이뤄졌다. 배우들 대단해.






▲ 엠마 스톤이 눈부시게 예쁘게 나온 장면. 실제로 눈부심.


▲ 함께 영화보는 커플은 이렇게 예쁘다. 진짜 진짜...





▲ 너무도 예쁜 야경에서 진행되는 이중무.











2. 라라랜드를 움직이는 세 가지 동력



  라라랜드는 크게 세 가지 동력축으로 작동됩니다. 첫째는 뮤지컬이라는 장르적 장치입니다. 저는 라라랜드를 뮤지컬 영화로 한정하고 싶진 않습니다. 작금에 이르러 사장되다시피 한 '뮤지컬'이란 장르를 오히려 재료처럼 써먹는 느낌이랄까요. 예컨대, '레미제라블'같은 영화를 생각해보면 트랙 시퀀스가 전개 중에 독립적으로 돌출되어 있습니다. 대화 중에 뜬금없이 노래를 부르거나 하는 식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뮤지컬이란 장르에서 위화감을 느끼는 대목이기도 하고요. 라라랜드의 경우, 작품의 도입부 프롤로그를 제외하고는 이러한 뮤지컬적인 요소의 배치에 있어서 이물감이 거의 없습니다. 뮤지컬이 영화의 전개와 스크립트에 자연스럽게 물들어 있어요. 이는 뮤지컬과 영화라는 장르적 구분 사이에 판타지라는 완충제가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천문대에서 엠마 스톤의 허리를 감아 우주로 사뿐히 띄워주는 모습이라던가, (사실 그런 장면들은 현실에 있을 수 없잖아요.) 어디까지나 은유와 표현의 영역으로 작동하는 장면인데 이 부분이 뮤지컬로의 전환을 자연스럽다 못해 우아하게 만들어 주는 거겠지요. 





▲ 존 레전드와 밴드를 만들게 된 라이언 고슬링. 이 부분에서 재즈의 변주에 대한 심도있는 대화가 나오는데 사실 이 부분은 따로 후속작이 나와야 마땅하다.




  두번째 동력은 등장인물들의 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저는 이 부분이 다소 불안하게 느껴졌어요. 등장인물들의 성격이나 캐릭터가 형성되는 극의 초반부에, 꿈과 지향에 관한 얘기들이 제법 큰 질량으로 소개됩니다. 하지만 이 부분의 시퀀스들은 심하게 표현하자면 작위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는데, 예컨대 일종의 타협으로 인해 존 레전드와 밴드를 만드는 모습들이 그렇습니다. (영화가 워낙 좋다보니, 다른 영화들이었다면 장점이 됐을 법한 부분이 예민하게 다가온 부분도 있습니다.) 꿈과 포기에 관한 이 대목은 홀로 라라랜드의 마법에서 벗어나 차갑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각 배우들의 성격이나 상황들이 묘사되고 나면 자연스레 엠마 스톤과 라이언 고슬링의 이중무가 펼쳐지는데 이때부터 레드썬-







"그럼, 내 역할은 끝이네."



▲ 엠마 스톤이 입는 옷마다 예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후에 플래시백으로 합쳐지면서는 정말이지, 우아하다.



▲ 연애고자도 연애하고 싶게 만들어지는 장면들.





  보라빛 야경이 별처럼 수놓인 산복도로의 한 벤치에서 라라랜드의 마법은 시작됩니다. 상당히 판타지스러운 이 작법이 사..사랑의 시작을 굉장히 간질간질하게 표현해 보이는데요. 혼자 영화관을 찾으신 분들은 심쿵주의하셔야 될 겁니다. 이제부터 옆구리가 충치처럼 시려올 테니까요. 그리고 이것이 마지막으로 소개드릴 세번째 동력축, 주인공들의 멜로입니다. 


  사실, 멜로라고 표현하자니 괜스레 신
파스러운 느낌이 들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 있어 라라랜드의 멜로는 거의 마법같달까요. 재즈를 싫어하던 한 여자가 재즈를 이해하게 되기까지. 미래에 대한 확고한 설계와 신념이 있던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위해 가게의 이름을 정하게 되기까지. 이 우아한 멜로는 주인공들의 꿈과 사랑을 짊어지고 끝내 2016년, 가장 황홀한 에필로그를 응축해 선보입니다. 







▲ 실제로 LA의 유명한 재즈카페. 라이트 하우스.









3. 라라-랜드의 복선


  사랑은 갈등을 수반하죠. 환난 사이에서야 평강이 있듯이, 사랑의 깊이와 부피는 갈등이라는 세로축으로 완성되나 봅니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장면인기도 한데요. 미아가 늦은 저녁, 집으로 가는 길에 세바스찬에게 전화를 걸어요. 밴드의 성공으로 한창 바쁜 세바스찬의 전화기는 미아의 전화를 소리샘(?)으로 돌리게 되고, 이에 미아는 서운한 표정으로 보고싶다는 말을 남기죠. 그렇게 터벅터벅 도착해서 대문을 여는데 웬 걸. 특별한 날도 아닌데 세바스찬이 앞치마를 두르고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 겁니다. 사랑스러운 건 세바스찬 뿐만이 아니에요. 이런 남자친구를 마주한 여자친구의 표정이 어땠겠어요. 완전히 무장해제가 된 채 서로 부둥켜 안고 사..사랑을 합니다. (얼마 안가 첫 번째 갈등이 생기게 되긴 합니다만.) 


  연애에 있어서 이러한 의외성은 상당한 활력을 주죠. 여자친구가 엠마 스톤이 아니어도, 내가 라이언 고슬링이 아니어도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때에 맞춰 누군가가 있어준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마법이겠지요. 저 역시 재빨리 추억의 영사기를 돌려 몇몇 기억들을 호출해 보게 되는데 잠깐. 라라랜드의 마법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에 몇몇 장면들을 복기해보니 사실 꽤 많은 암시가 있었어요. 예컨대, 그리피스 천문대에서의 그 멋진 장면들 이후, 이 연인들이 이번엔 백주대낮에 공원을 찾게 됩니다. 그런데 낮에 보니 그 아름다웠던 풍광이 뭐랄까, 형편이 없는 거예요. 현실 자체가 아름다웠던 게 아니었던 겁니다. 당신과 내가 함께 만들어 낸 호흡과, 대화와, 판타지가 아름다웠던 거지요. 그게 예술의 영역이고 사랑이라는 필터였던 거지요. 미아가 스스로 각본을 쓰고, 1인극을 해내겠다고 다짐했을 때 세바스찬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제, 내 역할은 끝이네." 이것은 그대로 강력한 예고이자 선언이 되어 결국 둘은 각자의 길을 걷게 되고, 그 길의 끝에서 서로가 원하는 서로의 모습을 이룬 채, 사실상 상당한 해피엔딩을 맞습니다. 그런데...





▲ 세바스찬과 미아의 판타지.





▲ 엠마 스톤

▲ 사랑스러운 엠마 스톤과 라이언 고슬링.





4. 하나였어야 할 해피엔드


  '꿈'에 있어선 해피엔딩이지만 이들의 '멜로'는 새드엔딩을 맞게 됩니다. 하나였어야 할 해피엔딩이 두 주인공의 꿈이 모두 이뤄지면서, 두 개의 해피엔딩이 되고 만 겁니다.  네 번의 계절을 함께 보낸 두 연인은 그렇게 서로를 흐르게 두고 맙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영화에서는 장면의 전환에서 계절의 추이를 소제목으로 활용하는데 영화의 막바지에 이르면 계절 대신 '5년 후'라는 소제목이 준비되지요. 그리곤 관객들에게 미아의 남편과 아이들을 소개합니다. 저는 사실 이 부분이 반전인 줄 알았어요. 저 남편은 미아가 작품 속에서 함께 연기하는 상대배우다, 라고 믿은 거죠. 성공한 여배우의 새 촬영인가 싶었다구요.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거슨 액자식 구성이 아니여. 현실이여. 곳곳에서 관객들의 탄식이 들려옵니다. 


  그렇게 미아는 세바스찬이 아닌 남편과 함께 야간 데이트를 즐기다 꼭 그때처럼, 홀린 듯 어느 재즈까페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게 뭐예요. 간판 이름이 Seb's입니다. 세바스찬은 재즈카페를 여는 게 꿈이었고, 거기서 연주할 곡들과 상호명을 이미 다 정해두었지요. 고집있는 세바스찬에게 여자친구는 Seb's라는 상호명을 추천합니다. (어퍼스트로피를 음표로 표현해 둔 센스 역시 기특했지요.) 하지만 당시에 세바스찬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세바스찬은 흘러간 인연이 지어준 그 이름을 선택했던 거지요.

  
  5년이 지나 각자의 자리에서 성공한 모습으로, 두 연인은 재회합니다. 하고픈 말이 많았을 거예요. 5년이잖아요. 하지만 객석에서 미아를 발견한 세바스찬은 결국 단 한마디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Welcome to Seb's"



  이 묵직한 한마디를 시작으로 라라랜드의 플래시백 장면이 시작됩니다. 두 시간 가량의 러닝타임 동안 짤막하게 소개되었던 모든 곡들과 장면들이 이 부분에서 한 데 연결됩니다. 그렇게 테잎을 되감듯, 현실과 판타지가 맹렬히 뒤섞이며 5년간 전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데미언 채즐의 감각으로 승화됩니다. 


  화보촬영 때문에 미아의 연극에 가지 못했던 기억은, 화보촬영을 포기하고 미아의 공연에서 기립박수를 보내는 장면이 되구요. 미아를 차갑게 스쳐갔던 그 날은 미아를 붙잡는 장면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내 연주는 잦아들고 세바스찬은 다시 세바스찬의 자리에서, 미아는 미아의 자리에 있습니다. 마법은 끝났습니다. 미아의 남편이 물어요. "다음 곡도 듣고 갈까?" 하지만 미아는 아니라고 얘기합니다. 이 즈음의 장면들과 대사들은 이처럼 하나같이 끝내줍니다. 



  한 곡이었던 거예요.  언젠가 함께 연주했던 그 한 곡을 들은 것으로 충분했던 거지요. 미아도, 세바스찬도 이미 저마다의 다음 곡을 저마다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사람들과 연주하고 있던 겁니다. 이 황홀한 에필로그에 누구의 가슴이라고 무너지지 않을 수 있을까요. 엔딩 크레딧이 오른 후에도 한참을 영화관에서 무너져 있었습니다. 언젠가 저와 함께 연주해 주었던 모든 이들에게도 저마다의 해피엔딩 있기를. 우리의 영사기 속 장면들이 어쩌면 다르게 기록됐을지라도, 재회의 그 장면에 이르러는 서로를 스쳐가기보단 서로를 안아낼 수 있기를. 




2016년, 가장 우아한 플래시백을 되새기며 글을 마칩니다. 
더불어 탈 많았던 올 한해도 아듀! 프리 메리 크리스마스 앤 해피뉴이어!






p.s)
참고로 이 영화는 솔플이 좋습니다. 
생각해 봐요. 헤어지고 이 영화 생각하면 얼마나 슬프겠어.
그..그래서 전 솔플을 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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