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혹했던 한국사를, 가볍게 눙치고 넘어가기엔....
1.
오랜만에 영화평으로 찾아뵙습니다. 12월 19일 개봉작, <스윙키즈>를 보고 왔어요. <써니>로 빅히트를 쳤던 강형철 감독의 신작입니다. 영화 곳곳에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배어있습니다. 그것보단 연말연시를 아예 노리고 나온 영화같달까요. 배경은 1950년대 한국전쟁. 수많은 한국영화가 이미 뽑을대로 뽑아먹은 시기지요. 뼈만 앙상할 이 시기를 두고, 감독은 어떤 살을 붙일 것인가.
2.
바로 탭댄스입니다. 좀 더 넓게는 '재즈'를 들여와요. 그렇습니다. <라라랜드>의 영향을 받은 듯한 시퀀스들이 빈번하게 나오고요. 극 중 '양판래' 역의 박혜수 분의 음색이, 한 번에 관중들을 사로잡는 대목이 있는데, 굉장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영화를 사랑하지 않기도 어려워요. 대놓고 시선을 강탈하는 '샤오팡' 역의 김민호 분이랄지, '광국' 역의 이다윗 분이랄지, 출연진들의 연기력도 돋보입니다. 강형철 감독은 상당히 수려한 연출과 구도를 꾸준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불세출의 연출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프랜차이즈 같은 느낌으로, 배우들의 장점을 늘 끌어올리는 웰-메이드 연출이랄까요. 배우들이 예쁘고 귀엽게 그려져요.
3.
전체적으로 재밌습니다. 하지만 <써니> 수준의 파급력을 가져올 것 같진 않은데요. 아무래도 많은 관객들이 결말을 아쉬워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까지 잔혹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강형철 감독의 가장 큰 장점은 유머가 있을 법하지 않은 곳에서, 도리어 유머를 보여주는 데 있었거든요. 이를 테면 '로기진' 역의 김동건 씨의 캐릭터가 그럴 겁니다. 보통 인민영웅같은 캐릭터를 그리라고 한다면 역시 엄청난 위압감을 풍겨야 할 것인데요. '로기진'은 알고보니 바보예요. 인민영웅과 바보라는 모순된 설정. 그 뒤틀림에서 유머가 발생하고, 그렇게 발생한 유머가 차가운 역사 틈에 스며들어 관객들을 이완시키는 것인데요. 역시 이번 <스윙키즈>에서도 그런 유머들이 스며들어 있지만 이상하게 결말부는 엄혹합니다. 그렇다면 감독은 왜 이런 선택을 한 것일까.
4.
아무래도 감독은 엄혹했던 한국사를, 가볍게 눙치고 넘어가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오늘 포스팅을 작성한 이유이기도 한데요. 무작정 재미로 밀어붙이자면 강형철 감독, 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본인의 윤리의식이 발목을 잡은 겁니다. 분명히 잔혹하고, 냉혹했던 현대사를 두고, 우리끼리 깔깔대도 되는지 수천번을 더 물었을 겁니다.
그렇게 감독은 이 엄혹했던 시기를 직시하고, 음습하게 그려낼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우리끼리 미사여구를 붙이고, 웃고, 떠들기에는 한국의 근현대사가 너무도 처참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결말을 아쉬워하는 많은 분들에게, 이런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봅니다.
p.s) 스윙키즈는 탭댄스 팀이에요. 구성이 특이합니다. 쉽게 환원하자면 흑인, 중공군, 아시아인, 여자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팀에 들어가 있어요. 다시 말해 무한도전. 온갖 소수자들과 약자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 대척점에 백인이 있는데 그렇다고 백인을 위악스럽게 그려내지도 않습니다. 역시 감독의 사려가 돋보이는 대목이고요. 얼마간 페미니즘을 염두에 둔 시퀀스가 있는데, '잭슨' 역의 자레드 그라임스 분과 '양판래'의 대화가 그것입니다.
전쟁이라는 상황에 놓인 여자와, 차별을 받아온 흑인, 누가 더 힘든 것인지 서로 겨루는 대목인데요. 페미니즘은 이처럼 이야기의 형태로 퍼져나갈 때 오히려 호소력을 내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현재 극장가에서 볼만한 영화가 '마약왕'정도 있는 것 같은데 굳이 한 편을 추천드리자면 역시 <스윙키즈>를 추천드립니다. 영화관에서 보는 게 좋은 영화예요. 이런 영화를 사랑하지 않기도 힘들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