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선하 Nov 01. 2024

외우고싶은그러나외우지못한시한편

혼독함공독서일지

#혼독함공독서일지14601pages
#우리가키스할때눈을감는건
#고명재
#외우고싶은그러나외우지못한시한편 #미련남아읽다가쓰다가

 
우리는 기온이 낮을수록 용감해진다
- 고명재

핀란드에서는 서로의 증기를 나누어 마시며
편백에 가까운 공동체를 상상한다고
예전에는 사우나에서 아이도 낳고
가까운 사람의 시신을 닦기도 했어
그런 옛날이야기와 타오르는 장작 소리에
겨울 언덕처럼 젖은 몸은 번들거리고
마주앉아 성실하게 땀 홀리는 것
잘 익은 감자를 가르면 별이 으깨져 있고
영양가란 이렇게 총명하구나!
더 견딜 수 없을 때 문을 박차고
얼음 호수 속으로 풍덩 뛰어든다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증기로 찐다 네 입김이 내 쪽으로
구부러지네? 그렇다면 썰매를 목줄을 풀자
눈보라가 치기 전에 입 맞추자고

스웨터가 발달한 나라에서는 깍지를 끼는 과정도 섬세하다
1. 나란히 걷는다 웃음을 누른다
2. 주머니 속의 순록을 살살 흔든다
3. 허벅지와 순면 사이의 보풀을 느낀다
4. 손톱 밑이 가렵도록 손을 데운 뒤
6. 눈 녹는 것처럼
∞. 손가락에 손가락을 섞는다
햇빛과 햇빛이 교차하듯이
측백이 편백으로 거듭나듯이
영하(零下)에도 북소리를 알아듣는 것
서로의 판막에 귀를 대고 눈을 감으면
살얼음 밑의 물고기들이 쿵쾅댄다고
가끔은 연인들이 벌거벗은 채
전나무 숲을 함부로 쏘다니다가
가지에 쌓인 눈을 퍽 맞기도 한다
그건 백설, 하면 설탕!처럼 뻔하고 달지만
매번의 눈폭탄은 환하고 시리고
그렇게 우리는 안개 속에서 땀을 섞는다
눈보라가 온 세상을 덮어버릴 때
우리는 어떻게 외로움에 맞서나
흰 뱀으로 엉킨 뇌를 하나씩 풀어서
설원을 가르며 누군가 여기로 오고 있다고
 
 
 .

작가의 이전글 뒤늦은사과, 세상에는공짜가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