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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변호사 Jun 09. 2019

변호사로 일하면서 현타 왔던 순간들

'나는 누구인가' '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왜 이러고 있는가'

여느 직업이든 그렇겠지만 변호사로 바쁘게 일을 하다가 문득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라며 현타가 오는 순간들이 있다.

오늘은 변호사로 일하면서 겪었던 현타 왔던 순간들 Top 3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1. 변호사가 한 게 뭐가 있어?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겨주시는 의뢰인 분들은 대체적으로 변호사에게 예의를 지켜 잘 대해 주시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내가 지금까지 감사하게도 그런 분들만 만나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실제 주위 동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벌써 의뢰인들의 무례함으로 인해 마음에 큰 상처를 받은 경우도 많이 볼 수 있었다.


동기 중에는 의뢰인이 변호사의 학벌을 문제 삼으면서 컴플레인을 걸어온 경우가 있다고 한다. 동기는 워낙 어려운 사건이었기에 그 사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했는데, 그렇게 열심히 사건을 준비하고 있던 어느 날 의뢰인으로부터 사무실로 전화가 걸려 왔다고 한다.


우연히 그 전화를 듣게 된 동기는 수화기 넘어 의뢰인이 "## 대학 나온 X 한테 내가 이 사건 맡긴 줄 알아!??" 라며 난리를 쳤다고 하는데, 정말이지 그런 일을 직접 겪는다면 그 사건을 위해 내가 들인 노력들이 허무하게 느껴지는 것은 물론 당장이라도 일을 그만두고 싶었을 것 같다. 사실 어쏘 변호사 입장에서는 그런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내 사건, 내 클라이언트가 아니기 때문에 무어라 반박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었을 텐데, 그 이야기를 한참이 지난 후 담담하게 하는 동기를 보며 '과연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일까?'라는 회의감이 밀려오곤 했다.


나 또한 비슷한 일을 겪기도 했다. 공을 들여 서면을 쓰고 열심히 노력했던 사건이 있었다. 유난히 마음이 가는 사건이어서 꽤 많은 시간을 들여 서면을 쓰고, 순서를 바꿔보고, 수정을 하기를 수 차례. 그러나 의사소통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고 나에게 컴플레인을 하던 의뢰인은 갑자기 "변호사가 한 게 뭐가 있냐?"는 말을 해버렸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말이지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모든 것을 다 놓아버리고 싶었다.


다행히도 지금은 제법 마음 근육이 단단해져서 지금 저런 말을 듣는다면 '마음에 여유가 없는 사람이네'라며 훌훌 털어버릴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매우 화는 나겠지만) 그런데 저 말을 들었던 순간 나는 그런 단단한 근육이 없던 시기였던지라 (그리고 어디 저 말 한마디만 했겠는가) '내 존재가치는 무엇인가'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런 소리를 들으면서 일을 해야 하나' '내가 이러려고 그 고생하면서 피땀 흘려 공부했나'라는 오만가지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그 날 비가 주룩주룩 오던 밤. 나는 너무 혼란스러워 그 비를 다 맞으면 멍하니 길을 걸었다.


2.  이게 지금 변호사가 쓴 글이에요? 변호사 자질이 없네.


물론 내가 부족한 점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말을 하는 사람도 바쁘고 정신이 없다 보면 필터링을 거치지 않은 채로 아무 말이나 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유독 그 말을 한 사람은 기억을 하든 하지 못 하든 듣는 이의 마음에 깊이 남는 말들이 있다.


유독 깊이 마음에 남는 말들을 들은 날이면, 3년 동안 로스쿨에서 공부하며 울고 또 울었던 힘들었던 시간들. 시험에 붙거나 죽거나 까무러치기다 라는 생각으로 봤던 변호사시험. 그리고 항상 무얼 하든 잘하다는 말만 들었던 지난 시간들. 남 부러울 것 없이 높은 성적만 받아왔던 학부생 시절. 그 모든 것이 정말이지 슬로모션으로 머릿속에 영화처럼 지나간다.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나는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며, 들이받고 반박할 기운조차 없어지는 그런 날들이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는 순간에 저런 말들을 계속해서 들으면 어느 순간에는 '아 그래 이건 나의 길이 아닌가 보다'라는 생각이 확신이 되어 점점 커지기도 한다.


한동안 마음이 많이 힘들었을 때에는 심리상담을 받기도 했다. 상담 선생님은 한참 상담이 진행되던 중 내 마음의 상처들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내가 평소에 잘하는 일'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도전해 보라고 권유해주셨고, 그래서 나는 아나운서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필라테스 지도자 과정을 시작했다.


그렇게 내가 잘한다는 평가를 받던 일, 내가 하면서 나 스스로 잘하는 것이 느껴지고 행복한 일을 취미로나마 조금씩 하다 보니 바닥까지 내려갔던 자신감이 조금씩 살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외부에서 자신감과 자존감 그리고 에너지를 한가득 채워와 일을 계속해나갈 수 있었다.


3. 소리 지르고 욕하는 수사기관


수사기관이 피의자를 조사할 때 지켜야 하는 규칙들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러한 규칙들이 잘 지켜지지 않기도 하고, 이러한 점을 막기 위해 변호사가 조사에 배석을 하게 된다.


실제 대부분의 수사기관은 점잖게 조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혹여 아주 약간 도를 넘으려고 할 때 눈에 힘을 빡 주고 담당 조사관을 정색하며 쳐다보면 그 후로는 조심해주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변호사 즉 변호인에게는 더욱이 예의를 갖춰주시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유독 그러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나에게 직접 욕을 하거나 피의자에게 직접 욕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규정에 위반된 행동이라며 제재를 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조사관들은 서로 피의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계속했고, 그 사람들이 정작 피의자를 조사하고 있는 담당자가 아니었기에 주의를 해달라고 말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밀폐된 공간. 많은 수의 조사관들과 피의자를 위해 배석하고 있는 변호인은 나 한 명.


그렇게 불편한 의자에 앉아서 위압감이 느껴지는 분위기 속에 피의자를 추궁하는 조사관 건너편에 앉아, 혹여 의뢰인에게 심한 대우를 하지는 않는지 의뢰인이 대답을 잘하는지 정신을 차려 조사 내용을 받아 적기를 몇 시간째. 그렇게 시간이 흘로 약 10시간에 다다를 때 즈음에는 정말이지 '내가 누구인가' '여기는 어디인가'를 넘어서 '이렇게 살아서 무엇하나'라는 생각까지 들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옆에 있던 조사관이 완전히 도를 넘어 극심한 욕을 하며 소리를 지른 날이 있었다. 평소 크게 소리를 지르거나 욕설을 크게 내뱉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공포심을 느끼는 나는 심장이 빠르게  뛰면서 다리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변호인이 이런 모습을 보일 수는 없기 때문에 언행을 조심해 줄 것을 요청하고 제재를 한 후 잠시 화장실로 자리를 피했다. 화장실에 들어서는 순간 멈출 수 없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 다리에 힘이 풀려 타일 바닥에 주저앉아서도 혹여 울음소리가 새어나갈까 숨이 꺽꺽 넘어가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그렇게 잠시 호흡을 가다듬어보는데 정말이지 '나는 무엇을 위해 이러고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온갖 질문들이 머릿속을 뒤덮기 시작했다. 정말 억울한 의뢰인, 그리고 꼭 변호를 해주고 싶은 의지가 생기는 의뢰인의 경우였다면 전투의지를 가지고 더 강력하게 대응했겠지만, 이때에 나는 그저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외에도 일을 하다 보면 힘들고 소위 말하는 현타 오는 순간들이 많다. 마음 근육이 약할 때에는 그런 순간들을 부딪힐 때마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물론 지금이라고 해서 모든 상황을 허허 웃어넘길 여유를 갖춘 것은 아직 아니지만.


이 일 뿐만 아니라 모든 일을 하는 사람들이 다들 그럴 것이다. 정말이지 그럴 때면 내 마음을 이해해주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털어놓고 나를 진심으로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 그리고 내가 즐길 수 있고 행복한 취미생활을 하는 것, 또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로부터 따뜻한 말들을 듣는 것. 이 힘으로 오늘까지 버텨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이든 분명 현타가 오는 힘든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아는 사람이든 혹은 이렇게 글을 통해 접하게 되는 사람들이든 그저 잘 버텨내고 있다고 여기까지 그동안 수고했다고 꼭 말해주고 싶다. 나조차도 힘들어서 더는 못 견디겠다 싶은 순간에 스매싱으로 내려치며 자질을 운운하는 말은 한 귀로 흘려버리고. 부디 나의 곁에서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의 따뜻한 말들로 마음을 가득 채울 수 있기를 바란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분명 힘든 순간들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해낸 여러분들이 스스로 얼마나 대단한지 아셨으면 좋겠어요. 누가 뭐라고 하고 나를 아무리 인정해주지 않아도 나 스스로 나에게 잘 버텼다 잘했다 라고 말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흘려버릴 수 있는 말들은 흘려버리는 단단한 마음을 가지게 되길 바라며 오늘도 여러분을 온 마음으로 응원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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