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브런치에서 글로 다루었으면 좋겠다는 주제를 추천받았다. 생각보다 어려운 주제들을 접하며 감사한 마음과 당혹스러움도 함께 찾아왔는데 그중 눈에 띄었던 주제는 바로 "변호사로서의 꿈과 사랑"이었다.
이 질문을 받아 들고 멍하니 앉아, 한 참을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나는 왜 변호사가 되었는가. 나는 변호사로서 무엇을 하고 싶었는가. 그렇다면 나는 그러한 길로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이었다.
시간을 거스르고 거슬러 필자가 로스쿨 진학을 결심한 계기 그리고 '변호사'라는 명사로 된 직업을 넘어 동사로 내 꿈은 무엇을 하는 것이었는지 되돌아보려고 한다.
대학교 4학년. 모두가 취업준비를 위해 올인하던 시기에 나는 훌쩍 교환학생을 떠났다. 그래 이때부터 나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기질은 싹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미국 한가운데에서 다른 사람들은 자유로운 미국 생활을 즐길 때 나는 새벽까지 도서관 구석에 박혀서 나의 미래 인생 계획을 노트에 하염없이 적어 내려갔다.
도저히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자 "그래 브레인스토밍을 해보자!"라며 내가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 할 수 있는 일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일: 아나운서, 외교관
좋아하는 일: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일
할 수 있는 일: 공부
도무지 세 가지의 접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때 떠오른 것은 그래 "하고 싶은 일"을 '명사'로 된 직업으로 적는 것이 아니라 '동사'로 적어보면 어떨까?라는 것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꿈이 무엇인가요? 무엇을 하고 싶은가요?"라고 물어보면 '변호사, 선생님, 의사' 등의 직업으로 대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렇게 명사로 된 직업을 꿈으로 삼으면 그때부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명사로 떠올린 나의 목표 직업을 가지지 못하게 될 경우, 내 목표는 이루지 못하는 것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즉 그 순간부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통해서 충분히 원하는 것을 이루고 달성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만족과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나는 내가 원하던 직업을 갖지 못한 실패자'라고 스스로를 규정해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종이를 꺼내어 다시 하고 싶은 일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막상 동사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내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 적으려고 해 보니 생각보다 막연했다. 한참을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였다.
이렇게 동사로 문장을 적고 나니 갑자기 나의 선택지가 넓어졌다. 사회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 비단 한 가지뿐만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좀 더 나은 사회가 되도록 기여할 수 있는 수많은 일들 중 내가 잘하는 것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 그리고 "공부"와 연결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면 되었다.
(여기서 '공부'를 언급한다는 것이 우스운 일일 수 있으나, 실제로 필자는 다른 굉장한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그나마 살면서 성공을 해보았고 스스로 하면 된다고 느끼는 것이 바로 공부이다.)
그렇게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경험해보며 시행착오를 겪다가 '로스쿨'을 알게 되었다. 변호사가 된다면 분명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고, 단순히 법정에 서서 변론을 하는 것뿐만이 아니더라도 사회 각지의 다양한 분야로 진출해서 사회의 발전을 위해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변호사가 된다면 다른 직업에 비하여 말을 하는 일도 많이 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러니 지금 당장 변호사가 되어 무엇을 하고 말 것이다라는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앞으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손에 쥐게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로스쿨에 진학하겠다는 나의 결정을 부모님에게 말씀드리며 했던 이야기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제가 변호사가 될 때에는 변호사의 위상이란 것이 예전과 같지는 않을 것입니다. 분명 변호사의 숫자도 많아질 것이고 이제는 변호사 자격증 하나만 믿고 평생을 고액의 소득을 벌어들이며 쉽게 살 수 있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쉽게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평생직업을 가지기 위해 변호사가 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변호사가 되어 제가 가고 싶은 어떤 곳으로든 뻗어나갈 것이며, 변호사 자격증은 제 이러한 목표를 이루는데 분명 날개가 되어줄 것입니다."
물론 아직은 이렇게 큰 포부와 목표로 삼았던 일들을 이루지는 못 했다. 하지만 필자는 아직 저 연차 변호사에 불과하고 지금은 조금 더 기본기를 다진 후에 어느 정도 변호사로서 기본이 갖춰진 상태에서 그다음 스텝을 밟아나가고 싶다. 내가 로스쿨에 진학하기로 결정했을 때 품었던 꿈들을 마음속에 품고 그 문장으로 이루어진 목표를 잊지만 않는다면, 그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현실에 안주하여 주저앉아버리지만 않는다면 나는 반드시 언젠가 내가 원하던 길로 가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아니 어쩌면 지금 당장은 굉장하고 멋있는 일들을 해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목표로 하는 길을 가기 위해 차근차근 내면을 다져 힘을 모으고 있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작은 경험들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한 자산이 되어 내 내면에 쌓일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친구들과 이야기하던 중 필자가 한 이야기가 있다. "나는 준비가 되었는데. 기회라는 놈이 내 앞만 지나가면 낚아챌 준비가 되어있는데 이놈이 참 내 앞을 지나가질 않는단 말이지. 뭐 그런데 계속 이렇게 내 방향만 잘 잡고 있다 보면 분명 기회란 놈은 내 앞을 지나갈 거야. 그때만 오면 쏜살같이 지나가더라도 혹여나 스스로 내 준비가 부족하게 느껴지더라도 나는 반드시 그놈을 잡고 말 거야."라고.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필자가 변호사로서 앞으로 또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잘 모르겠다. 어찌 보면 불투명한 미래이고 불안한 미래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그만큼 내가 갈 수 있는 길이 다양하고 선택지가 많다는 의미가 아닐까. 오히려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었다면 미래가 불투명하게 느껴지지도 않고 이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아 이 지독한 진로 고민은 평생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나 라고 불평을 하게 되면서도, 그래도 이렇게 고민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자고 생각을 돌이켜보곤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분명 중도의 미학이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자 하고 내가 가야 할 길을 끊임없이 고민하며 탐색하는 작업과 동시에 무언가 한 가지를 결정했다면 그곳에 정착하여 뿌리를 내려 깊게 파고 내려가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고 그곳에서 능력을 키워야 하되 다만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것이 맞는 방향인지 잘 가고 있는 것인지 그 방향은 한 번씩 체크해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주어진 것이 있다면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 하되 다른 길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거나 지금의 자리에 확신이 없다면 '지금까지 온 게 어딘데 아까워서 어떡해'라는 생각만으로 주저앉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온 길이 아깝다 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길을 계속 가기에는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너무 많지 않은가. 그러니 나는 변호사로서 어떤 길을 가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내가 원래 목표했던 것은 무엇이며 지금 잘 가고 있는지 끊임없이 스스로를 돌아보려고 한다.
이 글을 쓰며 내가 처음에 변호사가 되기 위해 결정했던 이유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잠시나마 잊고 있던 생각들을 다시 떠올려 정리할 수 있었다. 이런 고민과 생각들은 비단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 뿐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안고 있는 고민일 것이다. 분명 대학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이나 취준생들 뿐만 아니라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직장인들도 이미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도 문득문득 필자와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될 것 같다.
그럴 때면 본인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동사로 떠올려보는 것은 어떨까. 거창한 꿈이 아니어도 괜찮다. 그저 돈을 벌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도 혹은 내 가족을 위해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것도 너무나 소중하고 귀한 목표니까. 그렇게 살면서 한 번 즈음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려본다면 지금의 힘든 상황을 이겨낼 힘이 생겨나고 혹여 내가 조금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잠시 멈춰 설 용기 그리고 다시 방향을 재점검할 용기가 생겨날 것이다.
꿈이나 목표 따위가 사치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먹고살기 힘든 현실에 그런 이상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국가원수가 되겠다는 그런 원대한 꿈이 아니더라도 소소하게나마 내가 어떠한 삶을 살고 싶은지를 한 번 즈음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힘들 때 나를 붙잡아 줄 수 있는 큰 힘이 될 것이다.
부디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일들을 조금씩이나마 이루어갈 수 있기를. 목표의 크기를 떠나서 각자가 원하는 것을 조금씩이나마 이루어가는 삶을 살 수 있기를. 혹은 현재의 삶 속에서 내가 이미 원하는 삶의 모습을 향해 잘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만족과 감사함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