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로 2년 넘게 일하면서 다양한 사건들을 접해보았다. 민사, 형사, 가사 그리고 행정사건까지 크고 작은 사건들을 다루면서 31년 인생 동안 겪어보지 못한 온갖 다양한 사건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해볼 수 있었다.
처음 변호사로 일하기 시작했을 때에는 이런 상황들이 당혹스러웠다. 나름 준법정신이 투철하다고 자부하며 살아왔고 사건 사고란 그저 교과서 안에 있는 글씨로 적힌 판례들로만 접하던 내가 팔딱팔딱 살아 숨 쉬는 온갖 사건들을 날것 그대로 맞닥뜨렸을 때의 충격이란.
드라마나 영화에서 많이 보았다고 하더라도 이 모든 사건을 눈앞에서 직접 기록을 접하고, 당사자들과 대면하고, 해당 사건의 서면을 써서 법원에 대리인 혹은 변호인으로 가는 일은 상상 이상으로 다이내믹했다.
심지어 고등학생 때 그 흔하다는 급식 줄 새치기 한 번 해보지 않았고, 건널목에서 길을 건널 때에도 화살표시가 있는 우측으로만 길을 건널 정도로 거의 강박증에 가깝게 법을 준수하며 살아왔는데, 처음 사건을 받았을 때에는 그 사건을 분석하고 서면을 써내려 가기 이전에 "이게 뭐지?" "이런 일이 진짜 있다고?" "왜 이렇게 살지?"라는 생각이 팝업창처럼 계속 튀어올라 일에 집중을 하기 어려웠다.
사실 이러한 충격은 2년이 지난 시기까지도 계속해서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고 좀처럼 쉽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아니 때로는 오히려 이러한 일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다행이라고 느껴졌다. 좀 더 유연하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싶었지만 그럼에도 세상의 어두운 부분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사건의 구체적인 내용들을 언급할 수는 없으나 (변호사법 제26조 비밀유지의무) 많은 사건들에 공통적으로 드러났던 점들 그리고 이를 접하며 느꼈던 내 생각들을 정리해두고 싶어서 오늘도 노트북을 켰다. 앞으로도 많은 사건을 다루다 보면 각 사건들을 다루며 내가 느꼈던 점들이 어느 순간 희미해질 것임을 알기에 내가 사건을 통해 바라본 인간관계, 사회 그리고 우리네 삶의 무섭을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다.
기록 너머에 인생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각 사건의 기록을 살펴보다 보면 하나하나의 사건마다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담겨있고, 그 사건들 하나하나에 우리의 삶의 모습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의미였으리라. 나 또한 2년이라는 짧은 시간만에도 그러한 점들을 느낄 수 있었다.
동업계약 사건을 통해 인간관계를 들여다보다
민사사건 중 동업계약 관련 사건을 많이 접할 수 있다. 가장 흔한 경우는 동업계약 체결 후 당사자들 중 한 명이 동업계약상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동업계약을 해지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 및 당사자 중 한 명이 다른 동업자에게 계약에 따른 수익금을 계약대로 지급하지 않았다며 미지급 수익금을 청구하는 경우 등이 있다.
보통 이런 사건에서 가장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은 "과연 동업계약이 해지가 되었는가?" "동업자 중 한 명은 계약상 의무를 다하지 않았는가?"이다. 그러니 소송을 제기하는 입장에서는 보통 동업계약을 한 상대방이 계약상 이러이러한 일을 하기로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거나, 수익금은 50%를 가져가기로 했지만 실질적으로 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등의 주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
즉, 한 때에는 분명 마음이 맞아서 함께 일을 하기로 약속하고 사업을 시작했을 텐데, 그 과정에서 서로 마음이 상하는 일이 생기고 결과적으로는 서로를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람으로 몰아가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런 사건을 다루다 보면 변호사들은 가정 먼저 '동업계약서'부터 살펴본다. 그나마 동업계약서가 문서로 잘 작성되어 있는 경우는 그나마 사건을 진행하기 수월하지만, 정말 친한 사이에 동업을 하는 경우에는 수익 분배 규정이나 투자금에 대해 구두로만 말했다고 하며 그러한 내용들이 문구로 계약서에 남아있지 않는 경우도 있다.
변호사들은 이 말을 들으면 '아... 이번 사건도 산으로 가겠구나'라며 한숨을 한 번 푹 내쉬고 어떻게든 서류나 음성 녹음파일이 있는지 재차 확인한다. 그러면 어김없이 "아니 우리가 지금이야 이렇지만 한 때는 형 동생 하면서 얼마나 서로 믿고 지냈는데 그런 걸 뭐 굳이 서류로 씁니까. 다 믿고 하는 거죠. 믿었죠 그때는."이라는 말이 돌아온다.
동업계약을 할 때에는 무조건 투자금 및 수익금 분배와 관련된 규정들을 세세히 계약서에 명시하여 두고 가능하면 계약서는 사전에 전문가로부터 검토를 받으라는 식상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물론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이런 사건들을 접할 때면 이 동업계약서를 작성할 당시 그들의 모습과 지금 법정에 나와서 서로 얼굴조차 마주치려 하지 않으며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해있는 그들의 모습을 동시에 떠올리게 된다. 분명 이 계약을 체결했을 때에는 둘도 없는 친구사이 형 동생 사이였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서로에 대한 신뢰가 깨지고 돈이라는 문제가 끼어들면서 그 사이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살면서 내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소중하고 가까운 이들과 하루아침에 멀어지고 남보가 못한 사이가 되기도 한다. 동업계약 사건뿐만 아니라 가사사건도 이와 비슷하다. 세상에서 둘도 없이 사랑했을 사람과 서로를 파렴치한으로 몰아가며 법적 다툼을 하기까지 얼마나 그 마음의 상처가 컸을까 의뢰인들의 마음을 헤아려보면 내 마음까지도 먹먹해져 온다.
어쩌면 의뢰인들은 단지 계약을 해지하고 정산금을 돌려받는 것만으로는 보상받을 수 없는 더 큰 마음의 상처를 입지는 않았을까. 그나마라도 소송에서 이겨서 돈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분명 그것만으로는 모든 상처가 다 치유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건을 보면서 처음에는 인간관계에 회의가 들었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들도 어느 순간 등을 돌려 나와 적이 될 수 있구나 라는 사실에 과연 누구를 믿고 마음을 주어야 할까 사람을 신뢰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변호사로서는 반드시 서면으로 계약서를 작성하라 통화를 할 경우 녹음을 하라고 조언을 하지만 입장을 바꾸어 내가 정말 친한 내 친구와 동업을 하더라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나라면 친구를 신뢰하고 당연히 약속을 지키리라 믿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한동안 인간관계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 들다가 시간이 지나자 어쩔 수 없지 라는 생각과 함께 내가 너무 인간관계를 집착적으로 바라본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 내가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또한 변함없이 '신뢰'이다. 하지만 그 신뢰는 지금 이 순간에 나와 상대방의 관계를 견고하게 이어주는 고리가 될 수는 있을지언정 '언제까지고 무한정 굳건한 관계'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님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즉, 지금 이 순간 나와 상대방 사이에 신뢰가 있기에 상대를 믿고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도 영원히 이 관계가 지속되리라도 믿거나 상대에게 그런 '무한한 신뢰'를 강요할 수는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상대가 혹여 지금의 신뢰를 저버린다 하더라도 이에 배신감을 느끼며 인간관계 자체에 회의를 느끼기보다는 그저 '아 우리 사이의 신뢰가 여기까지 였구나.'라며 씁쓸하지만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동시에 '우리의 관계는 언제까지고 이대로 완벽해야 한다'라며 관계에 집착하기보다는 서로를 신뢰하고 있는 현재의 매 순간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든다.
나 또한 쉽지는 않겠지만 '미래'에 대한 확답을 받으려고 하기보다 '현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상대가 나에게 어떻게 하든 나는 상대를 '신뢰'하기로 결정했다면 그저 이 관계에서 내 몫을 다 하는 것 그리고 만약 상대가 신뢰를 저버리는 행동을 한다면 이 관계의 수명은 여기까지였구나 라며 이 또한 받아들이고 흘려보내는 자세를 가지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쉽지는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