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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평화 Sep 18. 2019

오디션과 면접의 평행이론

면접을 보고 알았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고 불편했던 이유를

Pick me pick me pick me up~

벌써 4년 전이다. 프로듀스 101을 끝으로 오디션 프로그램을 챙겨본 적이 없다. 당시에도 챙겨봤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어제 봤어?"로 시작되는 대화에서 자꾸 소외되니 봐야 할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 들었다.


이후에도 히트 친 오디션 프로그램이 여럿 있었지만 왜 인지 잘 눈이 가지 않았다. 혹자는 성장 스토리가 매력적이라고 했지만 편치 않았다. "저 이렇게 매력이 철철 넘치는데 뽑아주세요"라고 온몸으로 말하는 참가자들을 보면 뭐랄까. 안쓰럽다고 해야 하나 측은하다고 해야 하나 짠하고 불편했다.


지인? 멘토?의 소개로 좋은 직장에서 인터뷰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다. 워낙 고스펙에 짱짱한 커리어를 가진 분들이 다니는 직장이어서 "넣어나 보라는 말"에 큰 기대 없이 지원서를 넣었다. 이전 같으면 며칠 동안 고심해서 이력서를 작성했겠지만 언감생심, 광탈할 이력서에 뭘 공들이냐 싶어서 후루룩 써 내려간 지원서를 제출하고 서류 발표날 따윈 메모해두지 않았다.


"아무개 씨죠? 00일 0시에 오세요. 일찍 오시지 마시고 정시에 오시면 됩니다"

"네? 어디요?"

"아무개 씨 아닌가요? 이력서 넣지 않으셨나요?"

"아... 죄송한데 시간 한 번만 더 말씀해주시겠어요?"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달아나지만 마음을 놓고 나니  어느새 곁에 있는 '나를 찬 구남친'이 생각났다. "자니?" "비가 오니 네가 생각나" 구질구질하고 질척대는 이불킥의 시간이 지나고, 질척질을 끝낸 뒤, 몇 달만에 연락 온 그처럼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나를 왜 보자고 하지?

20분으로 예정됐다는 면접은 40분간 이어졌다. 자기소개와 지원 이유 같은 난이도 하 질문부터 달랑 한 장인 졸업장(학사 졸업장)에 대해, 미천한 커리어임에도 불구하고 업무를 해낼 수 있는지 묻는 난이도 상 질문까지 이어졌다. 웃는 얼굴과 젠틀한 태도 속에 날이 잔뜩 서 있었다. 면접관들이 무례했다는 것은 아니고 약점을 귀신같이 끄집어내 물었다.


할 수 있는 것은 할 수 있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은 건 "노력하겠지만 잘 해내겠다고 단정하진 못하겠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업무"라고 했다. 말은 그랬지만 "나 쬐금 매력적인 면이 있어. 자세히 봐줘 봐. 나 쫌 예쁜데 뽑아주면 안 될까?"라며 온몸이 말하고 있었다.


면접장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알았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불편했던 이유를. 존재의 가치를 증명해 선택되어야 비로소 생존할 수 있는 처절함이 내 모습인 것 같아 안쓰럽고 측은했다는 것을.


존재만으로는 사랑받을 수 없고 스스로의 쓰임(오디션에서는 재능이라고 포장될지 모르나 결국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얼마나 잘 소비될 콘텐츠 또는 콘텐츠 크리에이터인가의 문제이기에)을 증명하고 선택받아야 사랑받는 것 같은 그 씁쓸한 기분을 오랜만에 느꼈다.


나이를 먹을수록 '인연'이라는 말을 곱씹게 된다. '스스로의 무능을 인연이라는 말로 뭉뚱그리고 싶어서가 아닌가'란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등바등해서 되는 일이 있고 아닌 일이 있는 것 같다.


인연이 닿으면 닿는 대로, 닿지 않으면 않은 대로 감사해야지. 예쁨받기 위해 애쓰느라 잔뜩 허기진 몸과 마음은 고기로 채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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