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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이세이 Jan 25. 2022

게다가 마침 오늘.

 

가끔은 무너질 정도로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날이 있다. 무너져버릴까 몇 번을 무릎을 굽히고 자리에 멈춘다. 무너질 때 옆에 기댈 누군가가 없다는 사실에 허무해진 날, 일으켜 세워줄 사람은 결국 나라는 사실에 시린 바람이 가슴에 사무친다. 먹고 싶은 것은 없지만 허기짐이 온몸 구석구석을 채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무얼 해야 할까.


점점 풀리는 힘 빠지는 다리의 기운은 허리를 지나 가슴, 그리고 두 팔과 목으로 전해진다. 결국엔 머리끝까지. 길가에서 쓰러지지 않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면 그대로 침대 위에서 쓰러질 것이다. 씻고, 옷을 갈아입고, 하루를 정리하고, 내일을 계획하고, 멋진 날을 꿈꾸고, 그런 것은 사치다. 씻지 않고, 옷은 그대로고, 하루는 지나가고, 내일은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런 날이었다. 사실 나도 힘들다고 토로하고 싶었다. 하지만 차마 입 밖으로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다. 종일 쏟아지는 업무와 곤두선 신경 때문에 힘들었다고. 그런데 결국 실수를 해버렸다고. 시간은 없는데 책상 위에 놓아둔 물병엔 물이 가득 담겨 있었다고. 나는 파일을 꺼내다 그만 그 물병을 엎질러 버렸다고. 그런데 그때 마침 전화가 왔다고. 급하니까 얼른 해야 한다고. 멍한 상태로 정신없이 보내는 하루에서 멍하지 않을 여유는 없다고. 그렇게 뱉어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그렇게 내일을 맞을 것이다. 내 일을 맞이할 것이고, 내가 맞을 것이다. 한 방, 두 방, 세 방, 원투, 어퍼컷.


어쩌면 마침 오늘 한때 좋아했지만 이제는 연락할 수 없는 친구의 생일이라는 알람을 본 탓일 수도 있다. 마침 오늘 메신저로 후배 한 명이 선배도 얼른 연애하면서 리프레시하라는 말을 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게다가 마침 오늘, 게다가 마침 오늘, 게다가 마침 오늘, 마침 오늘. 오늘 마침. 오늘, 마침.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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