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휴가를 나온 어느 날이었다. 홀로 서울로 올라와 북촌의 한 독립서점으로 향했다. 가수인 주인장이 운영하는 서점이었다. 주성치를 좋아해서 주성치를 주제로 곡을 쓰기도 한 가수였다. 그렇다고 서점에 주성치를 주제로 한 음악이 흐른다거나 주성치 포스터가 걸려있진 않았다. 단지 넓지 않은 공간의 책장에 주인장의 취향이 담긴 책들이 가득할 뿐이었다. 대형서점은 종종 방문했어도 독립서점은 처음인 어리벙벙한 짧은 머리 군바리는 멀뚱히 서서 책 표지들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주인장은 말없이 지켜보았다. 그러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떠올린 듯 다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할 뿐이었다.
어떤 책을 집어야 할지 고민만 하다가 시간이 흘렀다. 그러는 사이 책방에는 주인장과 친분이 있는 듯한 손님이 몇 명 다녀갔다. 잠시 대화를 나누는가 하면 커피를 마시는 것 같기도 했다. 그들과 섞이지 못하는 나는 얼른 책을 하나 집고 나서야 할 것 같았다. 그 누구도 압박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때 눈에 들어온 책 한 권이 있었다. 초록색 표지에 '삼십'이라는 이름을 하고 있는 책이었다. 한 손으로도 책 전체를 움켜쥘 수 있는 작은 사이즈의 책이었다.
[서른에 이르는 사소한 이야기들...]이라는 부제를 가진 책을 스물 하나의 청년이 눈독 들이는 모습 때문인지 주인장은 다소 놀라는 눈치였다. 아니, 실은 주인장이 놀란 건 그 책은 주인장이 읽고 있던 책이었기 때문이다. 주인장은 손님이 없는 동안 <삼십>을 읽다가 잠시 책장에 책을 꽂아두었다. 손님 중 누군가가 그 책을 집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잠시 잊고 있었던 모양이다.
책을 계산대로 들고 갔다. 중간중간 책의 귀퉁이가 접혀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독립서점을 처음 간 스물 하나의 청년은 독립서점이 헌책방처럼 다른 사람들이 보던 헌책을 파는 곳이라 여겼던 모양이었다. 그 모습에 주인장이 말했다.
이 책이 제가 읽던 책이라 새 책이 아니라서요...
말 끝을 흐리는 주인장에게 말했다.
아... 저는 괜찮아요!
나는 괜찮았지만 주인장은 처음 겪는 일인 듯 당황스러워했다. 하지만 해맑은 손님의 대답을 쉽사리 뿌리칠 수 없는 표정이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럼 책값을 다 받을 순 없으니 할인해드릴게요!"
책값을 할인받고 보니 계산대 옆에 뽑기 기계가 보였다. 무슨 뽑기냐고 묻자, 주인장은 주성치 뱃지 뽑기라고 했다. 드디어 찾았다, 주성치! 할인도 받았으니 남는 동전으로 뽑기를 돌렸다. 그리고 주성치 뱃지를 얻었다. 주인장은 세 번째로 뱃지 뽑기에 성공한 사람이라며 기뻐했다. 나는 주인장의 주성치 뱃지를 뽑아 들고, 주인장이 읽던 책을 뽑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