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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주 Apr 22. 2024

나의 토마토 스파게티

작가 지망생으로 자취시절을 보내던 때, 내가 가장 자주 하던 요리는 토마토 스파게티였다.

스파게티 면 한 봉지와 토마토소스 한 병을 사놓으면 언제든 나를 위한 근사한 한 끼를 마련할 수 있었고, 가끔 좁은 자취방에 놀러 오는 친구에게도 괜찮은 한 끼를 대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별다른 채소도 넣지 않고, 그저 면과 소스만으로 스파게티를 만들었다. 그래도 그게 너무 맛있어서 며칠을 연달아 먹은 적도 있다.


20대 중반, 다니던 IT 회사를 그만두고 무작정 상경해 버틴 7년 되던 해. 내게는 빚과 무직이라는 결과만이 남아있었다. 준비하던 공모전은 모두 본선의 문턱 앞에서 보기 좋게 미끄러졌고, 어느덧 30대되었는데도 글쓰기 외에 별다른 기술이 없어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월급 때문에 버티던 보조작가 생활은 내게 아무런 경력도 남기지 못했다. 다시 알바라도 구해볼까 했지만, 그간 분명 일을 해왔음에도 이력서에 적을 것이 없었다. 어느새 나는 사회에서 경력단절인이 되어 있었다. 막막했다.


냉장고는 텅 비어있고, 고향에 안부전화를 하는 것도 점점 줄었다. 친구들을 만나면 신세한탄이나 하며 취하도록 술을 마셨다. 그렇게 스스로를 학대하던 겨울, 자다가 문득 머리 위로 천둥이 내리쳤다. 헉, 놀라 깨어나 보자 머리맡에 쌓여있던 책무덤이 무르르 무너져 내려있었다. 단 1cm 차이로 머리 위에 책이 떨어질 뻔한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던 걸 알게 되자 나도 모르게 후- 한숨이 새어 나왔다. 천장을 올려다보자 직사각형으로 길게 생긴 반지하 단칸방이 문득 관처럼 느껴졌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생활고로 가랑비 젖듯 불어난 빚도 갚고, 다시 내가 있는 글도 쓰고, 어둠 속에서 스스로 탈출해야 한다는 의지가 조금 솟아났다.


든든한 패딩 점퍼조차 없어 입을 수 있는 옷은 모두 껴입고 밖으로 나갔다. 미친 듯이 추운 날이었지만, 걷고 걸어 지하철 3~4 정거장 정도의 거리를 왕복했다. 차가운 바람 속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오는 길에 슈퍼마켓에 들러 스파게티면과 파스타 소스 한 병도 샀다. 허기 때문이었다. 일단 이걸로 이번 주를 버텨보자. 그래도 답이 없으면, 다시 고향으로 내려간다는 결론을 내렸다.


예상대로 면과 소스는 일주일도 채 안되어 바닥이 났다. 그러나 그렇게 나를 위해 음식을 해 먹는 과정에서 다시 용기가 생겨났다. 마침, 중단되었던 보조작가 일도 다시 재개될 거라는 메인 작가님의 연락을 받았다. 다음 날 나는 이사를 다짐하고, 부동산으로 향했다. 열 곳 남짓한 여러 집을 탐색한 끝에 운 좋게 지상 원룸을 얻어 이사를 할 수 있었다. 아침에 햇빛이 들어오는 방이라니. 꿈만 같았다. 일도 다시 시작했다. 물론 그것으로 어둠을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1차 시도로 삶의 질은 조금 올라갔다. 이사 후 처음 먹은 끼니는 역시 자장면이 아닌 토마토 스파게티였다.


요즘도 스파게티면을 삶을 때면 그때를 종종 생각한다. 아니 저절로 생각이 난다. 당시 머리 위로 무너진 책 무덤이 아니었다면, 그 좁은 관 같은 집에 살지 않았더라면 나는 변화를 생각할 수 있었을까. 토마토 스파게티가 아니었다면 나는 뭘로 연명하며 글을 쓸 수 있었을까. 싫증도 잘 내고 변덕도 심한 내가 어쩌다 이렇게 마흔이 넘도록 토마토 스파게티를 먹고, 글을 쓰고 있다. 문득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여기에 연재할 것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내 글쓰기에 대한 경험담이자 고백이 될 것이다.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지만, 질리지 않는 토마토 스파게티 같은 글을 여전히 쓰고 싶은 만년 신인 작가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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