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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주 Apr 23. 2024

8분 간, 삶기와 쓰기

긴 호흡을 위한 짧게 쓰기

스파게티 면을 내 입맛에 맞게 끓이려면 7-8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미리 손질해 둔 채소나 소스를 붓고 8분 정도 삶은 스파게티면을 함께 볶으면 푹 익은 면을 좋아하지 않는 내 입맛에는 딱 맞다.


8분은 생각보다 긴 시간이다. 냉장고 속 채소 중 2가지 정도는 충분히 다듬어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고, 잠시 유튜브 쇼츠나 인스타그램 릴스를 여러 개 볼 수도 있는 시간이다. 물론 잠시 멍 때리는 것도 가능하다. 휴대폰 알람을 맞춰두면 8분 간 자유롭게 무엇이든 할 수 있다.


5분도 아닌 8분.

문득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딱 8분 간 짧은 글을 써보는 것이다. 아무렇게나 머릿속에서 나오는 대로 써도 되고, 맞춤법을 틀려도 상관없다. 생각해 보면 나는 예전에도 이런 시간형 글쓰기를 시도해 본 적이 있는데, 바로 식탁 앞에서 쓴 짧은 글 모음집 <아침의 토스트>가 그것이다. 물론 그 책에는 냅킨 1장 분량의 짧은 글이라는 의미로 '냅킨 에세이'라는 나만의 부제를 붙여두었지만 말이다.



꼭 8분이 아니더라도 짧은 시간 동안 몰입해서 쓰는 글쓰기는 때로 정체된 작업에 활력을 준다.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에게도 글쓰기 습관을 만들기에 적당한 시간이다. 문득 남동생에게서 헬스를 처음 배울 때, 들었던 조언이 생각났다. 그것은 처음부터 무게를 늘리기보다 서서히 횟수를 늘리라는 말이었다.


그 말은 글쓰기에도 적용되는 말이었다. 처음부터 장편을 쓰려면 누구나 엄두가 나지 않는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나 러프한 줄거리로 시작은 할 수 있어도 글 전체의 맥락을 만들고 지속해서 장편 분량을 채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타고난 1%의 사람들에게는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쪽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 훈련과 시간이 필요하다.


책 한 권 분량의 글을 쓰기로 계획했다면, 반복적인 짧은 글쓰기를 통해 나만의 호흡과 리듬을 만들 수 있고, 알아갈 수도 있다. 이는 내가 직접 체험해 본 바이기도 하다.


밑줄서가의 두 번째 책 <아침의 토스트>를 쓸 당시, 나는 매일 단 한 편의 글을 쓰는 것을 목표로 삼았었다. 시 한 편 분량의 글이었지만 시는 아니었다. 말 그대로 '단상'이었다. 처음에는 아침, 식사, 운동 등의 키워드를 정해놓고 쓰다가 나중에는 그저 생각나는 것을 썼다. 어떤 규칙을 정해버리면 어딘가 끼워 맞춘 듯한 글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물론 기획물이라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지겠지만 <아침의 토스트>를 쓰던 당시에는 그저 뭔가 쓰고는 싶은데 마땅히 쓸 것은 없던 시기를 채워나가는 의미로 매일 운동하듯 글을 썼던 것 같다. 결과 120편의 짧은 글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글들은 오디오클립, 독립출판을 거쳐 전자책으로 거듭났다. 중간 수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진화해 콘텐츠인 셈이다. 이후에도 나는 2권 이상의 장편 소설도 수 있었다. 이러한 짧은 글쓰기 훈련이 아니었더라면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오늘도 나는 새로운 1권의 책을 쓰기 위한 구상에 골몰 중이다. 그러다 문득 이런 훈련이 최근에는 조금 해이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참 잘하던 운동도 그만두고 쉬어가면 다시 체력이 원상 복귀되듯 글쓰기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길게 쓰기 위해, 짧게 쓰기. 스파게티면이 맛있게 익어가는 8분 정도의 시간. 마음만 먹는다면 하루 중 언제든 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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