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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허튼 상념

정호승

by OTXP

고래를 위하여


정호승


푸른 바다에 고래가 없으면

푸른 바다가 아니지

마음속에 푸른 바다의

고래 한 마리 키우지 않으면

청년이 아니지


푸른 바다가 고래를 위하여

푸르다는 걸 아직 모르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모르지


고래도 가끔 수평선 위로 치솟아올라

별을 바라본다

나도 가끔 내 마음속의 고래를 위하여

밤하늘 별들을 바라본다




* * * * *



정호승 시인이 우리 경희대학교 출신이라는 것을 오늘 알았다. 그와 내가 서로 다른 모습과 이유라 하더라도, 서로 다른 시간이었다 하더라도, 같은 공간을 거닐었다는 사실에 마음의 끈이 닿는 것을 느낀다.


시인이 한 자 한 자 적어 놓은 글이 아무런 음률 없이도 그 자체로 노래가 되는구나, 정호승의 시를 통해 오랜만에 다시금 느껴본다. 급히 그의 시집을 한 권 찾아내서 몇 편의 시를 읽으니, 그가 글로 부른 노래에 내 마음이 함께 울린다. 좋다. 이런 느낌 얼마만인가. 정호승의 시에 담긴 정서가 내 삶이고, 죽어 있던 내 영혼 바로 그것을 그대로 그려내는 것이 아닌가 싶어 놀랍다. 기쁜 동시에 슬픈 이 묘한 영혼의 감각을 얼마 만에 느껴 보는가.


지쳐서 더는 한 발짝도 걷기가 어렵고, 한 걸음 내디딜 때, 발바닥부터 무릎과 고관절까지 타고 올라오는 고통으로 영혼이 깨지는 것 같은 그 순간에도, 누가 그 고통을 노래로 불러주기에 통증을 잊는다. 죽을 것 같아도 아직 죽지 않았기에 살아야겠다는 삶의 의지를 한 조각 더 찾아낸다. 그리고 그 힘으로 10분이라도 더 살아야겠다 다짐한다.


외롭기에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외로움을 알기에 영혼을 가진 사람임을 알게 되고, 내가 그저 고깃덩어리가 아니라 영혼을 가지고 지금까지 살아왔음을 잠시라도 감사한다. 영혼이 나를 만들었기에, 나는 영혼을 포기하지 않아야 함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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