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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티스 Apr 23. 2024

찍고, 찍힘에 대하여

사진과 친밀감

2024.4.23 화


"저는 찍지 마세요."

자주 하는 말이었다. 심학원(문요한 학장님이 운영하는 대안대학원)에 입학하자마자 한 분이 사진을 많이 찍으셨다. 그 후 동의 없이 단톡방에 그 사진을 주르륵 올렸다. 난 불쾌했다. 내가 언제 그 시선의 '대상'이 되었는지 모르고, 나의 동의 없이 그 기록물에 담겨 있다는 사실이 불편했다. 그래서 말했다.


나는 찍지 말아 달라고 말이다.


또 새로운 모임이 있다. 나는 찍지 말아 달라고 했다. 불편한데 그 깊은 마음에는 뭐가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지난달 이후로 틈틈이 생각하는 중이다.


'나는 왜 찍히기 싫은 걸까?'


시몬 드 보부아르 '제2의 성'에서 시선과 권력 관련된 내용을 읽은 적 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여성은 그 시선의 대상이 종종 되는 것이다. 한동안은 권력의 불평등으로 인해 내가 시선이 불편한가 또 생각했다.


그거였나? 명확하게는 아닌 거 같았다. 20대, 30대에는 그 시선이 불편에서 난 치마를 입고 다니지 않았다. 몸에 붙는 옷도 거부했다. 항상 카라 있는 목 끝까지 가리는 옷을 선호했고, 헐렁한 옷 속에 몸을 숨기고 다녔다. 어쩌면 여성이길 거부한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최근 들어 그 불편함에 대해서 키워드를 찾았다.

'친밀감'과 '여성성'이었다.


그때 까칠하게 내가 말했던 심학원 동기와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친해졌다. 처음에 나는 고슴도치 같았다. 다른 데서는 불편해도 불편하다고 말하지 않고 지나간다. 그런데 심학원은 나에게 생활 속 집단상담처럼 안전한 관계와 대상들이라 느껴졌다. 평소 안 해보던 시도들을 많이 했다. 그중 그 분과 관계도 그랬다. 나보다 아마 6~8살 많으실 텐데, 어떤 때는 지켜보는 이가 무례하다고 느낄 정도로 까칠하게 했으니 말이다. 자기표현이 중요하다고 느껴서 상대의 감정까지 헤아리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때의 나는 '자기표현'이 중요했다. 그 분과는 심학원 수업 끝나고 밤늦게까지 통화하면서 서로의 입장을 조율한 적도 있다. 그러다 함께 여행도 가고, 그 시간들을 관통하며 알게 되었다. 그분이 나쁜 분은 아니라는 것, 다만 나의 과거의 어떤 경험을 건드리는 그 분만의 특징적 기질이 있었다는 걸 말이다.


지난주 일요일 심학원 수업이 있어서 서울에 다녀왔다. 수업을 마치고 덕수궁 나들이는 갔는데, 이번에도 자연스럽게 그분이 영상을 찍는 게 아닌가? 1년 넘게 한 달에 오프라인으로 한 번(6시간 이상), 온라인으로 두 번 정도 만나고 글쓰기를 통해서 서로의 내면을 알게 되니까 내적 친밀감이 생겼다. 함께 하지 않았던 서로의 과거까지 보듬게 된 느낌이랄까.


우리는 종종 서로를 생각하곤 한다. (몰랐는데, 이번에 대화하면서 알게 됨. 서로 연락을 하지는 않지만 종종 떠올린다고.) 떨어져 살아도 삶을 함께하는 이들이 하는 행위가 아닐까 생각한다.


서로에 대해서 연민, 친밀감을 갖게 되었다. 그런 대상한테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사진을 찍히는 행위에 대해서 말이다. 더 적극적으로 내가 어떻게 찍히면 예쁘게 나올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즐거웠다.

영상 속, 사진 속 나는 행복해 보였다.


사진을 찍는 건 좋아했지만, 찍히는 건 싫어했었다. 모든 사람에게 그런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학우님의 핸드폰 사진기에는 담기고 싶었다.


나에게 '찍힌다'는 행위는 심리적으로 안전한 대상과 함께 할 때는 즐거움이 배가 되는 '놀이'였다.


나에게 심리적으로 안전하다는 말은 '그 대상에게 평가당할 일이 없다는 안전감'이었다. 그분은 그때 그 분위기를 담으려고 했던 걸 알기 때문이다. 대상인 내가 무엇을 입고, 어떤 포즈를 취하는지가 상관없었다. 그때 즐거움을 남기길 원하는 마음이었다.


사진에 담을 수 있는 아름다움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사진 찍히는 대상의 신체적 아름다움,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나누는 시간의 아름다움.


나는 전자라고 느껴질 때 불편했고,

후자를 만날 때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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