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타티스 Jun 06. 2024

나무가 죽었다.

생명의 끝맺음

2023.6.6 목


나무가 많은 길을 산책하다 보면, 보인다. 뿌리에서 물을 빨아들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 버티고만 서 있는 나무들 말이다. 나무가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다. 그중 물은 참 중요하다. 베란다에서 키우는 식물들이 잘 죽는 이유가 그렇다. 사람이 주는 물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강변의 나무들은 좀 다르다. 살기 위해서 땅 밑에서 뿌리는 뻗어나가는 노력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을 다한 나무들이 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 작년 태풍에 이미 한번 쓰러졌을 수도 있고, 병을 얻어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을 수도 있다. 이유가 어쨌든, 생명을 다한 나무들은 그 자리에서 빠싹 말라간다.


그 자리에서 말라버린 나무들

 나무 아래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조금 떨어지면 보인다. 소나무처럼 늘 푸른 나무들은 초록잎이 말라서 사진 속 나무처럼 눈에 띈다. 가을에 잎이 지는 활엽수들은 봄에 잎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줄기가 말라서 벌레들이 들어가기 쉬운 환경으로 바뀐다. 그 단단했던 줄기에 구멍이 숭숭 뚫린다. 사실 이런 나무들이 길가에 있으면 사람들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 어느 순간 줄기가 툭 부러지면서 사람들 머리 위로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공원에서는 이런 나무들이 보이면 안전사고가 나기 전에 즉시 제거한다. 하지만 이렇게 관리가 느슨한 강가는 시민제보가 있기 전까지는 자연 속에서 버티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누가 안다 치면 다행이고, 어쩌면 태풍이 와서 싹 정리하게 될 수도 있다. 사람이 아니라면 자연의 순리에 따라 될 것이다.


어쩌면 사람과 사람 사이 끝난 관계도 그렇수 있겠다 싶었다. 특히 밀접하게 있던 친밀한 관계에 거리가 생기면 그 공간만큼 슬픔이 차오른다. 나무는 죽으면 수분이 말라버리는데,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가 죽으면 수분이 찬다. 눈물이다.


 꼭 눈에서 물이 또르르 흘러야 눈물일까. 목이 메일만큼 슬픔이 차올랐지만 눈꺼풀 아래에서 꿀꺽 삼켜버린 눈물도 있다. 꾹꾹 눌러 담은 슬픔의 통조림이다.


 태풍에 죽은 나무가 자연스럽게 사라지길 바라듯이, 그 눌러 담은 슬픔도 시간 속에 떠나보낼 수 있길 바래어 본다.


소나무 무덤들(검은 비닐로 씌워진 무더기)

소나무 재선충에 걸린 나무들은 이렇게 무덤을 만든다. 소나무 에이즈라 불릴 만큼  걸리면 죽고, 빠르게 번져서 사후 처리를 이렇게 한다고 들었다. 강변산책로에 소나무 무덤들이 보이는 구간이 되면 마음이 무겁다. 내 안에 슬픔통조림들도 흔들리는 기분이 된다.


오늘이 현충일이라 더 마음이 무거웠을지도 모르겠다.

이 땅을 위해서 목숨을 다한 분들에 대한 마음도 포개어져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