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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티스 Dec 02. 2024

아플 수 있는 여유

죽을 만큼은 아니어서 다행이다.

2024.12.2 월


 오전 6시 20분, 눈이 떠졌다. '이 시간에 일어나는 게 몇 주 만인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떠올랐다. 아팠다. 살면서 목소리가 안 나오긴 처음이었다. 나는 소리를 내는데, 바깥으로 전달되지 않았다. 새삼 목소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느껴졌다. 


사람을 만나는 직업이다. 내 목소리가 상대에게 가닿아야 하고, 상대의 목소리가 나에게 전달되어 그 의미를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 그걸 할 수 없었다. 11월 첫째 주부터 아프기 시작해서 둘째 주를 쉬면 나을 줄 알았다. 기침은 더 심해졌고, 약을 먹어도 어디에 효능이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기침을 많이 해서 배에 힘을 주다 보니, 복근이 생기지 않을까 고민될 정도였다. 자다가 기침이 시작되면 멈추지 않아서 기어코 앉아서 미지근한 물을 한잔 먹어야 다시 잠들 수 있었다. 그야말로 제대로 아팠다.


평일 주 5일을 상담 스케줄이 있다. 11월 둘째 주일정을 모두 뺐는데도 몸이 나아지지 않았다. 셋째 주는 다시 상담을 시작했다. 링거를 맞고 좀 나아지나 싶었는데, 평소 일정이 무리였다보다. 다시 급격하게 안 좋아졌다. 


'내가 평소에 무리를 하며 살고 있었구나!'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데만 열중했다. '이게 무리일까?' 생각한 적이 없다. '내가 할 수 있으면 하는 거지.' 주변 사람들이 "너는 맨날 바쁘잖아~."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음에 감사했는데, 그 무리가 축적되었나 보다. 아픈 게 낫지 않았다. 매일 해야 하는 일정들은 그대로 남아있는데, 내 몸이 그에 부합하지 않았다. 상담스케줄을 조정하고 또 조정했다. 그래도 해야 하는 상담들은 또 '무리'해서 진행하다가 금요일에 결국 토했다.


상담하다가 화장실로 토하려 뛰어갔다. 무리 of 무리였다. 내과에서 진료바다가 이비인후과에 갔다가 기침이 멈추지 않아 다시 내과로 갔다. CT, Xray, 피검사하고 나니 독감에 폐렴에 천식이라고 했다. 복합적 증상이라 하나로 명명할 수 없다고. 결국 매년 가는 단골한의원으로 갔다.


"삶의 배터리가 적은 용량인 사람인데, 또 무리하며 살고 있네요. 방전된 거예요."

2018년부터 나를 진료해 준 선생님이다. 


"이 병은 딱 일주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먹고 자고 해야 낫는 병잉예요. 그런데 그렇게 못하는 거 알고 있어요. 제발 뭘 더 많이 하지 말고 쉬어요."


금요일 오후 토하고 나서 선생님 말씀이 생각나서 나머지 일정은 취소하고 집으로 갔다. 토, 일을 집에서 바깥에 나가지 않고 쉬었다. 이제야 살 거 같다. 드라마도 봤다. 


왜 아팠을까.

누워 뒹굴 하며, 생각해 봤다. 2018년부터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이맘때쯤이면 기말고사 준비에 과제에 정신없이 보냈을 시간이다. 논문 심사기간에는 새벽 4시 30분부터 논문 쓰고 일하고, 주말에 단 1시간이라도 허투루 쓸 수 없었다. 그때 아픔은 사치였다. 당시 나는 안 아프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했다. 명상하고, 걷기 하고, 미리 감기약 먹고, 비타민도 꼬박꼬박 먹고, 아침저녁 체조도 했다. 대학원 '졸업'이라는 명확한 현실적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지금은?

작년 가을에도 아팠지만 이만큼은 아니었다. 아, 자격증 시험이 있었구나.

올해만큼 아픈 적이 없었다.

'기말고사가 없는 가을에는 내가 아프구나!' 싶었다. 


올해도 대학교 상담실 주 2일 근무에, 나머지 3일은 교육청 소속으로 초, 중학교로 학습상담을 다니며, 지난달에는 창업지원센터에 입주해서 나름 바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이만큼 아팠을까 생각했다.


'여유'였다.


아플 수 있는 여유, '해야만 하는' 일들에 짓눌려서 숨이 막힐 정도의 일상은 아니었다. 하는 일은 쌓여있지만 내가 조절 가능하다고 생각해서 마음속으로 여유롭다 느꼈나 보다.


새삼 아플 수 있음에 감사했다.


예전만큼 나를 채찍질하고 있지 않음에 감사했다. 

그 시절에는 간절히 나를 증명하려고 애썼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이제는 나 존재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있구나!' 

문득 나를 이만큼 키워온 나 자신에게 뭉클했다.


상담을 공부하길 잘했다.

나를 키울 수 있는 시간을 나에게 허락하길 잘했다.


그 모든 것이 잘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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