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담자의 말에 내 마음이 겹칠 때
2025.6.12 목
상담실이란 공간은 참 미묘하다.
내담자의 마음을 만나는 공간이지만, 불쑥 내 마음이 겹쳐 보일 때가 있다.
미처 준비되지 않은 채로 말이다.
내가 현재 교육분석(상담자가 받는 상담)을 받고 있어서 그런지, 날 것의 내 마음을 더 깊게 들여다보고 있어서 그런지 내담자의 말에 울컥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내 마음을 다스린다.
‘지금은 눈앞의 내담자의 말을 듣는 시간이야.
지금 떠오른 생각들이 네 것이라면, 넣어두자.’
상담자로 수련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듣는 것’이 편해졌다.
예전엔 참 말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더 나은 상담자가 되기 위한 몸부림 속에서 과거의 내 모습과 달라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아마도 수퍼비전에서 "말이 많은 상담자"라는 지적을 많이 받아서 그런 걸까.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내담자 분이 꺼내놓은 말과 마음에 내 마음이 겹쳐 보일 때는 일단 ‘멈춤’을 선택한다.
‘이건 내 것인가, 내담자의 것인가?’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마음속 서랍에 고이 넣어둔다.
그리고 지금 내 귀에 들리는 그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한다.
오늘도 그랬다.
자기 성찰을 많이 하고 온 내담자였다.
이렇게 정리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
책도 많이 읽고, 삶에 대해 깊이 고민하며 살아온 분이었다.
남들이 하는 공부를 열심히 안 했을 뿐,
자기 자신을 키우는 데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들인 분이었다.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좋은데, 다가가기 힘들어요.”
“정말 어울리고 싶은데, 소외감을 느껴요.”
마지막 문장을 듣는 순간, 눈물이 울컥 올라왔다.
이건 내 감정이었다.
눈앞까지 차오른 눈물을 끌어내리느라 많은 에너지를 써야 했다.
가끔 내담자분의 말을 듣다 보면, 내가 요즘 무엇 때문에 힘든지 되레 그 순간에 알아차릴 때도 있다.
왜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지, 화요일 교육분석에서 그 이유를 조금 알게 되었다.
이런 감정을 느낄 순간이 아니라고 머리는 말하는데, 마음은 건드려질 때가 있다.
그걸 알게 되었다.
마치 비행기 안에서 다른 사람들은 안전벨트를 하고 가는데,
나만 문 밖에 대롱대롱 매달려 가는 느낌.
언제 땅으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사실 일종의 '공포'였다.
우리는 당연히 살기를 원한다.
안전해지기를 원한다.
‘공포’를 느끼는 것이 두렵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걸 알고 있더라도,
그 영역에 가까이 가지 못할 때가 있다.
상처받는 것도 무섭기 때문이다.
다른 상담실로 이동하는 길,
운전대 앞에서 꾸벅 졸 뻔했다.
이 상담에 내가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들였는지 몸이 먼저 알아차렸다.
오늘 마지막 상담을 마치고 상담실 문을 나서는데, 동료 선생님이 그러셨다.
“선생님 퀭해요. 얼른 집에 가서 쉬어요!”
이곳저곳 상담실을 오가며 상담하느라 지친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내담자의 마음과 내 마음 사이의 경계선을 지키느라,
상담자로서의 역할을 버티느라,
‘상담자 스타티스’로 있고 싶다는 마음에
온몸에 힘이 들어갔던 하루였다.
이 글을 쓰고 나니
긴장했던 온몸의 힘이 풀리고,
낮에 흘리지 못했던 눈물이 흐른다.
이제는 온전히 ‘내 모습’으로 있어도 되는 시간이다.
‘상담자’의 옷을 벗을 수 있는 시간.
‘나’ 자신에게도 중요한 어떤 영역을 건드리는 문장이었다.
이제는 내 아픔에, 내가 공감해도 되는 시간이다.
앞으로 2회기, 그분을 더 만나게 될 예정이다.
상담자의 옷을 입고 그 공간에 들어가 그분의 이야기를 온전히 들어야지.
다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내 마음에
내가 깊이 공감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