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노광과 상실의 마음에 대하여
2025.7.8 화
카메라를 들고 숲길을 걸었다.
햇빛이 유난히 잘 드는 길이었고
바람은 사진처럼 부드럽게 나뭇잎을 흔들었다.
나는 오늘을 담고 있었다. 아니,
오늘을 기억하고 싶어서 셔터를 눌렀다.
그날의 걸었던 그 길, 길의 감촉
그림자의 느낌까지도
필름 속에 고이 담겨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현상소에서 돌아온 필름은
아무것도 품고 있지 않았다.
빛이 닿지 않은 필름은
마치 내가 그곳에 없었던 듯,
그 순간들을 텅 비워 놓았다.
그때 처음 알았다.
‘미노광’이라는 말을.
사진을 찍었는데, 아무것도 찍히지 않은 상태.
내가 필름을 잘못 감았을 수도 있고,
그저 운이 나빴을 수도 있다.
원인은 중요하지 않았다.
상실이 먼저 찾아왔으니까.
처음엔 그냥 허무했다.
그러다 슬펐다.
시간과 감정과 마음이 함께 사라진 기분이었다.
그때의 따스한 햇살, 초록 바람과 푸른 하늘까지
그 모든 게 ‘증명되지 않는 기억’이 되어버렸다.
운전하며 눈물을 한바탕 흘리고 나서야 알았다.
사라진 줄 알았던 그 순간들이
오히려 더 선명하게 내 안에 남아 있었다는 것.
그 장면들을 더 떠올리러 애쓰고 있었다.
사진이 있었더라면
나는 기억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진이 없으니
그때의 온도와 냄새, 마음까지
통째로 떠올리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라짐은 때때로
더 깊은 기억을 만들어준다.
우리는 살아가며
셀 수 없이 많은 ‘미노광’을 겪는다.
어떤 말은 전하지 못한 채 끝나고,
어떤 얼굴은 보지 못하고,
어떤 마음은 기록되지 않은 채 스쳐 간다.
하지만 그런 상실 앞에서도
나는 조금 더 믿게 된다.
기억은, 마음은, 존재는
꼭 사진처럼 남아야만
진짜였던 것은 아니라고.
빛이 닿지 않았어도,
그 순간은 분명히 있었으니까.
내가 사랑했고,
내가 살아 있었으니까.
나는 앞으로도 필름을 넣고 카메라를 들어볼까 한다.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시, 또, 담아보려 한다.
사진은 남지 않아도,
그때 그 마음은 남는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다.
미노광 덕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