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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킨 건, 풀면 되니까요

수두 덕분에 쉬게 된 어느 일주일의 기록

by 스타티스

2025.7.25 금


월요일 오후, 둘째가 수두 판정을 받았다. 금요일이 방학식인데, 덕분에 우리는 조금 이른 여름방학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번 주에는 일정이 빼곡하게 들어 있었지만, 모두 취소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뿐했다.

아이를 온전히 돌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는 게, 생각보다 더 기쁘고 다행스러웠다.


둘째는 평소엔 혼자서도 잘 지내다가, 어느 순간 몰아서 엄마의 관심을 요구하는 아이였다. 신기하게도, 종종 유행하는 병을 따라가기도 했다. 이번 수두도 그랬다.



아이 덕분에 쉬었다.

미뤄두었던 드라마도 몰아보고, 집밥도 차려먹고, 민생지원금 덕분에 배달음식으로 한 끼를 퉁치기도 했다. 화요일, 수요일을 푹 쉬고 나니 목요일 즈음엔 책을 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공서를 펼쳤는데, 유난히 재밌게 느껴졌다. 오늘은 아이를 두고 잠깐 외출도 다녀왔다.


충분히 혼자 씻고 머리를 말릴 수 있는 나이지만, 아플 땐 왠지 내가 도와주고 싶어진다.

“엄마가 머리 말려줄까?”

아이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수두약을 발라야 해서, 머리를 최대한 잘 말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드라이기를 오래 대고 있다 보니, 머리카락이 엉키기 시작했다. 처음엔 한 군데만 그러더니, 점점 많은 머리카락이 한데 붙어버렸다. 손가락도 들어가지 않았다.


“엄마, 이거 어떡해요?”

“응, 풀면 되지.”


엉킨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마치 한 가닥처럼 단단히 뭉쳐 있었다. 아이는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나는 그 부분만 살짝 잡고, 한 올씩 한 올씩 천천히 빼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지만, 그만큼 풀리는 손맛이 있었다.


“안 풀릴 줄 알았는데, 풀리네?”

아이도 머리카락을 매만져보며 안도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 전용 빗으로 전체 머리를 빗어줄 때의 그 시원한 감각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속이 다 후련했다.


그러게.

엉킨 건, 풀면 되는 거였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 아닐까.

너무 엉켜서 잘라버릴까 하는 순간이 있었다.

다시 풀어볼 용기를 내어 보련다.


시간이 좀 걸려도, 한 올씩 천천히, 마음을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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