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8.13 수
2023년, 2024년은 한 달에 한 번 서울을 오가며 심학원 수업을 들었다. 심학원은 대안대학원으로, ‘문요한’ 학장님이 운영하고 있다. 나는 통합치유과정 3기를 거쳐 창작과정 1기를 수료했다. 작년 여름, 심학원 수업이 끝났다. 현재는 1월부터 매달 한 명씩 학우님들이 자신의 책 또는 앞으로의 삶의 계획에 대해 발표를 한다. 이번 달은 내 차례다. 총 9명 중 여덟 번째다.
그동안 매달 발표 수업으로 진행됐는데, 나는 예전에 어떻게 발표했었는지 자료를 찾아보고 있다. 그 시절 나는 어땠나. 참 치열하게 삶과 내 책의 주제를 고민하며 살았었구나.
나의 특징은 이렇다. 한창 치열함을 지나가는 중에는 글로 기록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나는 ‘진짜’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고, ‘정답’을 찾아 헤매기도 했다. 고민 중일 때는 글을 쓰기가 참 어렵다. 그래서 핵심을 제외한 언저리의 글감으로 주로 글을 썼다. ‘보여지는 것’도 참 중요한 사람이었다.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심학원은 그래서 좋았다. 고민 중인 것들을 학우님들과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매달 발표하면서 ‘나’라는 사람을 온전히 드러내고 안전하게 보여줄 수 있었다. 우리 안의 관계에서도 역동이 있었다. 투사하기도 하고 상처받기도 했지만, 신기하게도 다 풀어냈다. 매달 진하게 만났으니 자주 연락을 하지 않아도 심리적으로 연결된 느낌이 든다. 지금도 그렇다.
이번 ‘블루밍 선데이’는 사실 1월부터 어떻게 진행할지 고민했다. 6월부터는 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한동안은 내가 친하다고 생각하는 최대한 많은 사람을 초대할까 했고, 해보고 싶었던 ‘살아있는 장례식’을 해볼까도 심각하게 생각했다. 예전에 TV 프로그램에서 본 적이 있는데, 실제 주인공이 살아있지만 마치 세상을 떠난 것처럼 지인들이 모여 추억을 나누고 애도하는 방식이었다.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다.
지인들에게 초대장을 보낼까, 참여 방법을 적은 프로그램 표를 미리 우편으로 발송할까, 온라인 참여 방법을 안내할까 등 온갖 고민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게 중요한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학원 학장님이 ‘블루밍 선데이’를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생각해 보았다.
심학원 창작과정은 ‘사람의 마음에 기반을 둔 창의적 전문가’로 피어나기 위함이었다.
나는 지금, 어떻게 가고 있나.
7월이 넘어가면서 ‘나는 어떤 마음 전문가가 되고 있나?’라는 질문을 계속했다.
지인들에게 보여지는 것이 중요한가? 스스로에게 ‘아니다’라는 답을 얻었다.
그래서 초대하려고 했던 지인들에게 온라인 약속이 취소되었다고 알렸다.
나는 내 모습으로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되고 싶은 나' 와 '되어지고 있는 나'
‘되고 싶은 나’와 ‘되어지고 있는 나’는 다르다고 느껴졌다. 그동안 나는 ‘이상적인 내 모습’을 끝없이 추구했다. 버거웠다. 어떤 순간에는 발표 자료에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다.
그 시간들을 지나서, 지금 내가 있구나...
이렇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내 삶을 레이어 형식으로 발표한 적도 있었다.
나에게 ‘친밀감’, ‘사랑’, ‘유기불안’은 중요한 단어였다. 모른 채로 나는 ‘성취’를 추구하는 삶을 살았다. 어쩌면 중요한 것들을 외면하는 길이기도 했다. 깊게 느꼈던 우울감은 내가 내 삶을 살지 않았기에, 나 스스로에게 보내는 무언의 메시지였다.
지금의 나는 최소한 무엇을 추구하는 사람인지는 안다. 무엇을 원하고, 무엇이 내 삶에서 중요한지 알아차리게 되었다. 40+@년의 긴 세월을 돌아온 셈이다.
어떤 이들은 어릴 때부터 자신을 잘 알아차리더라. 심리적 안정감, 자신의 중심을 느끼며 살아가는 그 감각이 참 좋다. 내 20대에도 그걸 느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후회는 하지 않지만 안타까움은 있다.
지금 나는 ‘즐거움’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보다 ‘심리적 안정감’을 더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안정감 위에 피어나는 즐거움이 더 크다. 불안감 위의 즐거움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번 주는 논문계획서를 쓰면서 블루밍 선데이 발표를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애정하는 친구들과의 여행도 앞두고 있다.
이 모든 걸 즐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완벽하지 않으면 어떠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