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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에 대한 오늘 이 순간의 대답

by 스타티스

2025.6.10 화


오늘 아침, 함께하는 글쓰기 동료 톡방에 올라온 질문이었다.

(몹시 쓸모 있는 글쓰기: 운영자 알레작가님 : https://brunch.co.kr/@alejjandro)


“나는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가요?”


문득 어제 한 장면이 생각났다. 10회기 상담이 종료되었다. 대학교 4학년 휴학을 한 내담자였다. 그분을 만나면 내 마음속에 계속 품고 있는 질문이기도 했다. 물론 직접 묻지는 못했다. 당면한 어려움에 대해 상담실에서 다루지만, 상담자는 마음속으로 또 다른 질문을 품고 있기도 하다.


특히 마음이 쓰이는 내담자였다. 슈퍼바이저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상담자가 뭘 많이 해주고 싶네!"


선생님의 질문은 간결하지만 핵심을 찌른다. 내가 내담자에게 '기대'를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 삶은 누군가에게서 '기대'를 내려놓는 작업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늘은 그 질문은 내가 받았다. 다른 사람을 향한 마음속 질문이 나를 향하니, 순간 멍해졌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 사람일까.


엄마의 바람으로 성취하는 삶을 지향하며 살아왔다. 엄마가 진짜 바라는 건 무엇이었을까. 엄마가 대답해 줄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기대를 내려놓았다. 남편을 만나지 않았다면 내 삶은 계속 성취를 지향하며 살았을 것이다. 어쩌다 결혼을 하고, 두 딸을 만나게 되면서 삶의 방향이 조금 달라졌다. 그리고 상담을 공부하게 되면서 또 다른 세계를 알게 되었다. 이제는 또 다른 변화를 마주하게 될 거 같은 느낌이 든다.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그간 경험으로 평온함은 '유지'만 가능하지, 다른 지점으로 이동은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다. 교육분석을 다시 시작하면서 선생님은 나에게 질문을 많이 던지고 계신다. 어떤 날은 많이 울고 오기도 하고, 어떤 날은 웃으며 상담을 마무리하기도 한다. 내 마음을 솔직하게 바닥까지 꺼내 보일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있다는 건 축복이다.


어제 그 내담자분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여기에서는 잘 보일 필요 없잖아요. 그래서 처음으로 제 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어요!"


아직 부족하지만, 내가 선생님께 느꼈던 그 '안전함'을 누군가에게 전해줄 수 있다는 건 '감사함'을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더 이상 직업적인 고민은 없을 거 같다. 다행히도.


하지만 이제는 현실적인 고민과 마주하게 되었다.


내가 나를 어떻게 먹여 살릴 것인가.


누군가는 말하겠지. "취직하면 되잖아요?" 맞다. 그러면 된다. 하지만 내가 나를 어느 정도 알게 되면서 무언가 선택했을 때 함께 따라올 상황들이 예측되기 시작했다. 나는 사무실에 많은 사람들과 9시부터 6시까지 함께 있는 것을 매우 힘들어한다. HSP성향이 강해서 누군가 기침소리만 내도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 또한 성향상 호기심이 많아서 매일 같은 곳으로 출근하는 것도 힘든 상황이다. 다양한 공간을 방문하거나 새로운 영역을 공부하면서 호기심을 채우기 때문이다. 또한 둘째가 아직 초등학생인데, 어느 정도의 돌봄을 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석사 논문에 바쁜 회사를 다니면서 거의 방치했던 것이 가슴 아픔으로 시리게 남아있기 때문이다(현재 성조숙증 치료 중이다). 그래서 현재 프리랜서로 일한다. 강의도 하고 상담도 하지만, 아직은 나를 먹여 살릴 정도는 되지 않는다.


이제는 '무엇을 이루고 싶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지는 않는다. 예전에는 '자격증을 따야지!', '성적을 잘 받아야지!' 하는 생각들이 강하게 들었다. (엄마의 영향도 컸다. 사랑받기 위해 성취를 해야만 했다)


사십 대 중반이 된 지금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이 마음의 중심에 있다.

항상 생각하는 질문이다.


내가 바라는 삶은 화려하지 않다. 명함에 적히는 직함이 아니고, 타인이 박수 쳐주는 성취도 아니다.


나는 내가 나를 먹여살 릴 수 있는 사람이면 된다.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내 두 다리로 서서 내 몫을 감당해 낼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그리고 존재적으로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사람 말이다.


그리고 앞으로 원하는 거라면,

내가 원하는 순간에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어제 그 내담자분에게 더 몰입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렇다. 나도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말을 아끼거나 마음이 쪼그라들지 않고,

감정을 감추기보다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자유와 용기를 가진 사람.


흔들리는 순간에도

남의 기준에 휩쓸리지 않고

내 결정에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누군가에게 끌려가는 삶이 아니라

내가 고르고, 내가 선택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



주변 상황이 어떠하더라도

심리적으로는 평온한 사람이고 싶다.

자기 자신과 싸우느라 하루를 다 보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다독이며 단단한 중심을 지킬 줄 아는 사람.


그리고

소중한 이들과는 속 깊은 대화를 기꺼이 나누며

마음을 열 수 있는 사람


친밀함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랑을 밀어내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고 싶다.


이런 사람이 되는 데는

시간도 걸리고, 용기도 필요하겠지만


지금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는다.


내가 바라는 것은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더 온전히 존재하는 것이기에.












*이제 또 우리 선생님을 만나러 갈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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