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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 앞에 선 아이, 산으로 간 마음

뿌리 깊은 수치심, 그 시작점에 대한 기억

by 스타티스

2025.5.22 목


“그때로 돌아가 봅니다.
대문은 무슨 색인가요?”


그렇게 시작되었어. 어릴 때 엄마가 동생이랑 싸웠다고, 옷을 벗겨서 대문 밖으로 쫓아낸 적 있거든?


갑자기 그때 장면이 떠오른 거야. 나의 상담 선생님은 우리 엄마의 스타일을 알고 계셨어. 초등학교 저학년, 그때 기억으로 확 끌고 들어가셨지.


그때의 나는 누가 지나갈까 봐 불안했고, 수치심이 온몸을 휘감고 있었어.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않을 거라고 낙담하고 있었지.


항상 눈치를 보며 살았던 것 같아. 아빠는 외벌이에 사 남매, 경제적으로 무능한 부모님에 일찍 돌아가신 큰아버지 가족까지 돌보느라 승진을 해야만 했어. 3시간만 자고 일하시고, 승진 공부하시고.
승진 뒤에는 지방 근무하시느라 주말에만 아빠를 볼 수 있었지. 엄마 성향상 주변 이웃들과 교류도 별로 없었고.


엄마는 나에게 절대적인 존재였어.
성취지향의 엄마는 ‘1등’만 의미 있다고 강조하셨지. 그래서인가 봐. 난 놀았던 기억이 거의 없어.


중학교 때 선명한 기억은 그거야. 예전에는 정식 성적표 나오기 전에 과목별 성적 확인하라고 ‘꼬리표’라고 나누어 주었거든? (한 페이지에 한 반 아이들 성적이 좌르르 프린트된 종이를 학생 이름별로 길게 자르다 보니, 꼬리처럼 생겨서 꼬리표)


집에 도착해서 엄마한테 보여주기 전에 엄마가 평균 소수점까지 알아맞혔어.

엄마는 내 시험 점수에 본인의 인생을 건 분이었어. 참 부담스럽고, 힘들었지.


학창 시절에는 엄마의 기대에 맞추느라 항상 힘겨웠어.

스파르타 학원에 다니면서 영어 단어 시험 하나 틀리면 엎드려뻗쳐서 틀린 개수만큼 맞았던 기억.

그 학원은 매달 시험을 쳤거든?
학원 지하 자습실에 1등부터 꼴찌까지 성적순대로 앉혀. 그리고 반 편성을 매달 다시 해. 1등부터 10등까지 한 반, 그다음 반…. 마지막까지 남아 있으면, 그 수치심이…


그러한 감정들의 시작점이었던 거야.
대문 앞에 발가벗겨진 채로 내쫓겼던 그날 말이야.

난 참 자연을 좋아하는 아이였는데, 엄마는 동생들만 산에 물 뜨러 데리고 가고 나만 집에 남아서 공부하라고 했어.


과거 기억 속으로 돌아간 나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어. 옷을 챙겨 입고 산으로 올라가더라.


그게 내가 원하는 거였어.
자유롭고 싶은 마음과 자연을 가까이하고 싶은 마음.


지금 그렇게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착각이라는 걸 알게 되었네.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더라고.

이걸 깨달으면서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


50분 상담인데 1시간 30분을 과거 그 장면에 머무르면서 울고 또 울었어.


5년 전 교육분석에서는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조차 모르는 감정 억압의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이런 작업까지도 가능하구나.


그때 그대로는 아니었나 봐.
다행이다.


집에 돌아오는 길은 지난주보다 가벼웠지.


선생님과 앞으로 7번의 만남이 더 남았어.



진짜 ‘내’ 모습과 마주하는 시간이 될 것 같아.
기대되기도 하고
무겁기도 하고.



‘진짜’를 만난다는 건
즐거운 일만은 아니라는 걸 알아가고 있으니 말이야.


이 이야길 왜 하냐고?
그냥 그랬다고.











미래의 나를 위해서
오늘의 내가 하는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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