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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 그리고 변화

끝이 아니라 변화의 순간

by 스타티스

2025.9.8 월


원래는 좋아했던 자리, 좋아했던 사람, 좋아했던 공간이었는데, 그 사이에 ‘틈’이 생기니까 마치 멀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처음에는 그 감정이 낯설다.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서 머뭇거리다가 머물러 느껴보기로 결정했다.


'이 마음이 무엇일까?'

'이 틈에서 내가 느끼는 건 뭘까?'


3년 동안 몸담았던 대학 상담센터가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곳은 나에게 단순한 ‘상담수련의 자리’가 아니었다. 처음 시작했던 그날이 떠오른다. 그때의 나는 '내가 개인상담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일까?' 스스로에게 계속 물었다. 상담자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던 중이었다.


석사 졸업할 무렵, '내가 상담에 적합할 사람일까?' 싶어서, 대학교 내 행정직으로 근무했다. 그 또한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남은 생 동안은 상담을 하기로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


처음엔 사람들도 좋아 보였고, 공간도 아늑했고,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은 듯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곳에서 내 마음의 일부를 놓아두고 살아가는 듯했다. 이 느슨한 공동체 속에서 끈끈한 연결감을 찾으러 애쓰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반겨주기도 했다. 덕분에 함께 일하는 사람들 속에서 '따뜻한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온도 속에서 자랐다. 나를 받아주고 인정해 주었던 이들, 그리고 내 안의 가능성을 확인시켜 준 이들이 있었다. 그 속에서 나는 “나는 상담할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중요한 자기 인정을 했다. 상담 수련의 시간이 힘들고 지칠 때도 많았지만, 결국 그 시절은 나 자신을 발견한 시간이었다.


특히 동료 A 선생님은 내게 큰 의미로 남아 있다. A 선생님은 단순한 동료가 아니라,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친구였다. 수련은 외롭고,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봐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었지만, 그 속에서 서로 의지할 수 있다는 경험은 내게 엄청난 위로가 되었다. A 선생님이 있었기에 나는 버틸 수 있었고, 덕분에 한 사람으로서, 상담자로서의 나를 더욱 단단히 세울 수 있었다. 내가 어떤 모습이든 괜찮다는 위로를 행동으로 보여준 동료이다. 올해 3월 선생님은 고등학교라는 공간에서 '상담교사'로 일하기 위해서 이곳을 떠났다.


그 이후에도 계속 수련을 이어갔다. 동료 선생님들과 따뜻한 연대감을 이어가면서 말이다.


하지만 최근 '틈'이 느껴졌다.

누군가 만든 줄 알았더니 실은 내 마음속에서 생겨난 것이다.


묘하게 멀게만 느껴진다. 예전처럼 따뜻하지 않다거나, 의미가 퇴색한 것은 아니다. 다만 나라는 사람이 변했고, 더 이상 같은 자리에서 머물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 느껴진다. 이 거리감은 아쉽기도 했지만, 동시에 “이제는 내가 자연스럽게 떠날 때가 되었구나” 하는 깨달음을 주었다. 억지로 끌어안는 게 아니라, 퇴장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한 것으로 해석해보려고 한다.


틈에서 바람처럼 느껴지는 이 마음이 뭔가 싶어,

머물면서 들여다봤더니 이러한 생각 구슬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내년 1월까지 근무이다.

이 남은 5개월 동안 '잘' 마무리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려고 한다.


아마 지난 3년은 단순한 상담수련의 시간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형성해 준 인생의 중요한 챕터였을 것이다. 그곳을 가장 크게 남은 것은 ‘사람’, 그리고 ‘나는 상담할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믿음이다.


아쉬움은 있지만, 멀어짐이 단절은 아니다.

그 기억들은 내 삶 속에서 여전히 이어지고 있고, 나는 그 기반 위에서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상담자로, 또 한 사람으로 살아가며 묻는다.



'지난 3년 상담센터에서 만난 사람들과 경험이 내 안에 여전히 숨 쉬고 있다면,

나는 지금 어떤 이야기를 써 내려가야 할까?'















사진출처 : Pixabay로부터 입수된 Izabella Jasper님의 이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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