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출판을 꿈꾸었다. 조금씩 배운 인디자인으로 책의 표지와 내지를 만들고, 그곳에 내가 직접 한 해 동안 썼던 어느 주제에 관한 글을 담고, 인디고 인쇄를 통해 제작도 해보았다. 출판사를 등록한 뒤 책을 어떻게 유통하면 좋을까 총판과 배본사를 알아보았다. 온라인 서점과는 어떻게 거래를 하는지, 마진은 얼마가 남는지, 서점에 책을 입고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 모든 건 내가 모르는 새로운 영역이었다. 매일 전화해 몇 시간씩 묻고 물었다. 또한 작은 서점에 책이 유통되기 위해서는 직접 연락을 취해야 했는데, 그렇게 알아본 서점은 약 100곳이 넘었다.
책 하나를 만드는 것도 여간 쉬운 일이 아닌데 책을 유통하는 건 더 어려운 일이었다. 문제는 처음으로 만든 책에는 작은 오타가 몇몇 있었고, 고치고 싶은 내용도 생겼다. 서점에 책을 유통하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책을 새로이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인디자인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작은 일도 쉽지 않았다. 처음 1쇄를 찍고 2쇄를 찍으려면 ‘2쇄 발행‘ 날짜를 기입해야 하는데, 그 일이 내게는 그렇게 힘들게 느껴졌다. 그리고 막상 서점에 연락을 하려고 하니 그것도 자신이 없었다. 이 연락을 이어가면서 책을 택배로 보내고, 만약 책이 팔린다고 해도 또 책을 다시 만들어서 보낸다는 건 벌써부터 지치는 일이었다.
책이 좋아서 1인 출판을 꿈꾼 나였는데, 이상하게 책이 싫어졌다. 책이 싫어졌다는 건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책을 잘 만들어 주어야 잘 팔 수 있다고 말했던 영업팀장. 보도자료를 써서 각 서점에 보내주었던 영업팀 대리. 책이 만들어지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을 놓지 않았던 북디자이너. 그리고 어떤 부탁을 해도 다 수정해 주었던 디자인팀장. 미비한 부분은 없는지 크로스체크를 해주던 편집자. ISBN을 등록해 주던 제작부장. 고생했다고 밀크티를 사주었던 기획부장. 그리고 성질은 나빴지만 그래도 나름 친근했던(?) 대표까지. 아, 내 월급을 매번 챙겨주던 경리계 사람들까지. 어쩌면 내가 책을 만들며 즐겁다고 느낀 건 ‘책 한 권’에 담긴 사람들과의 노력, 한 팀을 이루어 헤쳐나갔던 그 과정이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책을 만드는 과정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 간에 소통이 필요하고, 서로를 위하는 마음을 필요로 한다. 내 것만 요구해서는 안 되고, 타인의 업무 방식과 흐름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서로의 언어를 알아야 하고, 각자의 다른 생각들이 하나로 모여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책은 부단한 협동을 통해 만들어진 하나의 물건이다. 모든 물건이 그렇겠지만, 적어도 책을 만드는 과정에는 여러 사람들과의 협동이 절실히 필요하다. 마치 어머니가 밥을 먹을 때마다 내게 했던 말처럼, 쌀에는 농부의 수고가 담겨 있다. 농부뿐만이 아니라 쌀에는 햇빛과 흙, 바람과 공기의 노력도 담겨 있다. 물론 그러니 결국 밥을 남기지 말고 꼭꼭 씹어 삼키라는 것이 어머니의 결론이었다. 하지만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밥을 먹을 때마다 밥에 담긴 모든 이들의 수고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 서로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동시에 자신의 위치에서 밥값 하는 정도의 삶을 살아낼 것이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오늘도 우리는 서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