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일ㅡ정체성 재정립하기
발주의뢰서 하나가 마케팅 팀 팩스로 들어왔다. 마케팅 팀장님이자 동시에 재정부, 인사부, 제작부, 총무, 기타 등등을 맡고 있는 마케팅 팀장님은 책 100부 주문이 들어왔다고 알려주었다. 발주의뢰서에는 주문한 독자의 메일이 적혀 있었는데, 팀장님은 “혹시 우리가 보내는 뉴스레터에서 글을 보고 사준 게 아닐까?” 했고, 나는 “에이, 그럴 리가요” 했다. 하지만 팀장님은 뉴스레터 주소록에서 그 메일을 찾아냈다.(와우) 팀장님은 이겼고 나는 졌다. 팀장님은 짜릿했고 나는 찌릿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와, 이게 되네.’
편집자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출판사에서 책을 만드는 사람을 뜻했지만, 이제는 그보다 더 넓은 의미를 가진다(김담유). 종이책 기반의 출판업은 많이 축소되었을지 몰라도, 콘텐츠 플랫폼으로서 퍼블리싱과 그 주체인 편집자는 절대 약해지거나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비록 웹툰이나 눈에 확 들어오는 영상 매체들, 유튜브나 틱톡이 오늘날 사람들의 뇌를 마치 팝콘 튀기듯 자극하지만, 그럼에도 영화나 예능에서는 책을 기반으로 한 콘텐츠들이 여전히 있고 우리 삶 가운데 존재하며, 사람들은 그 콘텐츠를 소비한다.
이슬아 작가는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그리고 글을 써서 돈을 벌기 위해 아주 사적인 이야기들을 메일을 통해 사람들에게 연재했고, 그것은 하나의 플랫폼이 되어 이제는 책으로 만들어지고, 그 책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출판사로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슬아 작가의 출판사는 기존 출판사들이 했던 방식, 그러니까 책을 만들고 그 책을 홍보하는 차원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를 선택했다. 글이 먼저 나오고, 저자와 독자가 먼저 교감을 나눈 뒤, 그리고 그 뒤에 비로소 한 권의 책이 나왔다. 이슬아 작가 뒤로 수많은 작가들이 너도나도 연재를 시작했지만, 이슬아 작가만큼 이슈를 만들진 못했다. 아무래도 따라 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일까.
소위 책 만드는 일이 편집자의 일이라고 단정지으면, 편집자는 ‘책 만드는 사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된다. 텍스트의 컨디션을 최상으로 이끄는 사람, 그것이 편집자의 소양이라면 축소하는 종이책 기반의 출판업에서 어느덧 유유히 사라질지도 모른다. 편집자가 책을 기획하고 만들 때 수없이 생각하고 고민해야 하는 것은 이 책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계속해서 묻는 것이다. 이 질문이 사라지는 순간 책이라는 물체만 남고, 의미 없는 텍스트만 허공에 떠다닐 것이며, 아무도 찾지 않아 창고에 쌓여 가다가 결국 폐지가 될 것이다.
산업사회가 막 시작될 때, 그때는 지금처럼 핸드폰이나 알람 기능을 해줄 어떤 물건이 없었다. 기계가 돌아가듯 아침 9시에 모여 일을 시작해야 하지만, 늦잠 자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때 필요한 사람은 ‘알람 기능을 해줄 누군가’였다. 그때 생긴 직업이 ‘인간 알람 시계‘였다. 직원이 직장에 가서 일을 할 수 있도록 정확한 시간에 그 직원을 깨우는 일, 이것이 하나의 직업으로 자리 잡았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이 직업이 있고, 이 직업에 맞는 상황이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점이다. 어떤 상황이 발생했고, 그 상황에 맞는 직업이 생긴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시대에서 직업이나 일은 상황에 따라 일의 모양이 수없이 변화될 것처럼 보여지고 느껴진다. 반대로 생각하면,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일이 무엇인지,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판단하지 않으면 언제라도 도태될 수 있다는 점이다. 알람 시계가 생길지 누가 알았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