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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쎄 Oct 25. 2023

내 노동의 가치는 얼마인가

요즘 난 약 2천 페이지 정도 되는 책을 편집하고 있다. 글을 한 번 쭉 읽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문제는 내용이 많다 보니 글을 볼 때마다 놓친 부분들, 고치고 싶은 부분들이 많다는 점이다. 수정자를 표기하다 보니 어느덧 4천 개가 넘었다. 담당 디자이너는 “수정자가 꽤 많아서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간이 걸리면 마감이 늦어지고, 마감이 늦어지면, 마감이 늦어지면, 마감이 늦어지면… 마감이 늦어지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다른 디자이너에게 급히 연락을 해 혹시 단순 수정 작업을 부탁했다. 한 권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맡아서 하는 게 아니라 가격을 어떻게 측정해야 하는지부터 문제였다. 그래서 나는 “혹시 무례한 질문일 수 있지만,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작업료를 드려야 할까요”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우선 거절이었다. “죄송하지만 그 작업을 할 여력이 없습니다. 그 대신 다른 작업자 한 명을 소개해 줄 수는 있습니다. 작업료는 디자이너마다 각자 자신의 노동 가치를 다르게 생각하기 때문에 대화를 나누어 보는 게 좋겠습니다.”

‘각자 자신의 노동 가치를 다르게 생각’한다는 그 말이, 오래 여운에 남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 말이 떠올랐고, 이 말은 나로 하여금 지금 이렇게 의자에 앉아 글을 쓰게 만들고 있다. 이전에 작업했던 어느 출판사가 떠오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내가 생각했던 나 스스로의 노동 가치는 ‘주는 대로’였다. 출판사가 측정하는 만큼 받는 것이 내 노동 가치였다. 신입이었고, 아무것도 몰랐고, 그냥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고마웠고 그 당시에는 그것 자체로도 감사하다고 몇 번을 말했는지 모른다.

그다음 어느 출판사에 일하게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출판사는 내게 최저시급으로 따져 3개월 계약을 연장하는 형태를 제시했다. 나는 그것마저도 좋았다. 시급을 올려준다고 하고 올려주지 않아도 좋았다. 누구보다 마음을 다해 열심히 일했지만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말 한마디를 했다며 대표는 내게 ‘그만두라’고 했다. 3개월씩 연장되는 계약직이니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다. ‘그만두라’는 말을 듣고 그 남은 계약 시간 동안에 일하는 것도 좋았다. 그 당시 나는 내 노동의 가치를 그 정도라고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노동의 가치를 겨우 돈으로 제한해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노동하는 시간에 얼마를 받을 것인가, 하는 점은 현실적으로 생각할 문제다. 어릴 때는 입혀주는 옷을 입고 먹여주는 음식을 받아먹기만 해도 되었지만, 어른이 된다는 건 내가 먹을 음식과 입을 옷을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각자의 노동 가치는 각자가 정한다,는 그의 말이 오래 기억에 남는 건 아마도 나는 내 노동의 가치를 스스로 정해본 적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물론 ‘노동의 가치’가 ‘존재의 가치’가 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 노동의 가치가 얼마인지를 생각해 보는 건 적어도 인생의 어느 지점마다 꼭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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