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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쎄 Nov 06. 2023

문장이든 삶이든
다듬으면 좋아진다

은유 작가는 자신이 스케치한 표지 디자인을 출판사에서 SNS에 올린 뒤, 독자들의 평가를 받는 것을 싫어한다고 말한다(출판하는 마음). 표지를 다 완성하지도 않았는데, 어느 정도 그려진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일은 부끄럽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편집자가 교정을 보지 않은 원고, 즉 초고본을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셈이라고 했다. 이 글을 읽는데 며칠 전, 어느 책의 표지를 인스타그램에 올린 뒤 “사람들에게 어떤 표지가 좋은지 투표를 받아 봅시다!”, 하고 호기롭게 말하던 내 모습이 떠올라 부끄러워졌다. 생각해 보니 내가 교정한 어떤 문장을 게시해 놓고 독자들의 평가를 받는다거나 투표 이벤트를 진행한다면, 아마도 그 자리에서 편집자를 그만두고 싶을지도. 그 누구라도 다듬어지지 않은 글이나 디자인을 공개처형을 당하길 원하는 사람은 없다.


완성되지 않은 표지 디자인에 “글자 크기가 지금보다 더 컸으면 좋겠어요”, “제목의 위치를 왼쪽으로, 아니 오른쪽으로” 하는 등의 이야기는 듣고 싶지도 않고, 심지어 그런 의견들은 표지를 산으로 가게 만든다(고 한다). 하지만 가장 의견을 많이 듣고자 하는 때도 있는데 그건 바로 작업을 시작하기 전이다. 표지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담당 편집자의 의견을 통해 표지의 컨셉과 방향을 잡는다. 어떨 때는 편집자와 방향이 맞지 않아 그 편집자가 원하는 표지 하나, 자신이 생각하는 표지 하나를 선보인다. 결국은 출판사가 원하는 표지가 선택되지만, 그럼에도 그처럼 노력하는 건 디자이너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함이다.


책 한 권이 만들어질 때 아마도 가장 폭력적(?)인 사람은 편집자가 아닐까 싶다. 책의 기획부터 컨셉, 구성 등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소통하며 이끌고 가야 하는 위치에 바로 편집자가 있기 때문이다. “표지 컨셉은 이렇게.” “내지 여백은 이 정도로.” “제목 크기는...” 디자이너뿐 아니라 저자에게도 수없이 많은 요청과 요구, 때때로 협박과 동기부여를 한다. “이 부분은 좀 더 풀어서 써줬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지만 사실상 협박이 다름없다. “이건 이렇게 하면 책이 더 완성도 있게 만들어지겠네요”,라고 말하지만 이것도 사실상 ‘지금 내용에서 고치라’는 말로밖에 안 들릴 듯하다. 적어도 저자에게는.


이번 달에만 몇 개의 원고를 저자에게 돌려보내며, 내가 무엇이관대, 나보다 나이도 많은 이 어른들에게, 공부도 나보다 많이 하고, 심지어 외국어로 논문도 쓰고 온 이분들께, 편집자가 무엇이관대, 한글 파일에 코멘트를 꽉 채워 보내며 결론적으로 ‘다시 써서 보내 달라’고 하는지. 때때로 그런 부탁이 무례하고, 실제로 돌아오는 대답이 좋지 않을 때도 많고, 심지어 출간을 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분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미안하지만 좀 더 좋은 글로 책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눈앞을 가리고, 귀를 막는다. 내 이름으로 출간되는 책도 아닌데, 편집자는 그저 어느 순간 잊혀질 이름인데,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래도 조금만 더 손보면, 조금만 더 고치면, 조금만 더 살을 덧붙이면, 조금만 더 다듬으면, 지금보다 아무래도 더 좋아질 거 같아서.’ 나는 믿는다. 무엇이든 조금이라도 더 돌보고, 신경 쓰고, 한 번 더 다듬으면 문장은 좋아짐을. 문장뿐만이겠는가, 우리의 삶도, 사람도, 한 번이라도 더 다듬고 살펴보면 좋아진다, 좋아질 거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삶도 더 엉망이 될 거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아마도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대답하지 싶다. ‘그래서 믿는다’고. 


자, 이제 다듬지 않은 내 초고를 다듬어 줄 사람, 내 거친 인생을 살펴봐줄 사람 누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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