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글이 술술 읽힐 때가 있는데, 간혹 그런 글은 한 호흡에 쓴 글일 수도 있다. 마치 모차르트가 단숨에 어느 곡을 써내려 간 것처럼, 영감을 받은 작가가 글감을 따라 글을 한 획에 써 내려간다면, 그 글은 문법이나 문장의 앞뒤가 조금 맞지 않을지 몰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한 흐름으로 읽히기도 한다. 때때로 그런 글을 보고 작가에게 ‘글 한 편’ 써달라 부탁하면(거기에 부담을 가득 담아 원고를 부탁하면), 처음에 기대했던 글이 돌아오지 않기도 한다. 그때마다 “가볍게 초고를 쓴다고 생각하고 써 주세요” 하며 다시금 글을 부탁한다.
때때로 무슨 일을 할 때 가벼운 마음으로 하면 오히려 좋을 때가 있다. 괜히 무거운 마음을 가지거나 긴장을 하거나 부담을 느끼면 되는 일도 되지 않는다. 문제가 커 보일 때는 조금은 과감하게 가볍게 문제를 대하면, 문제가 작게 느껴지기도 하고, 생각보다 쉽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사적인 이야기지만, 최근 삶이 무겁게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내가 맡은 원고는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고, 그 시간이 약 2년이 걸렸다. 약 2000페이지 정도 되는 원고를 담당하다 보니 그 부담감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곧(?) 출간을 앞둔 이 책은 기대하는 매출만 억 소리 나는 단위다. 이 책 한 권으로 나 스스로에 관한 평가가 이루어지니, 그러니 부담이 크지 않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다른 사람의 평가도 평가지만, 나 스스로 2년이라는 시간을 평가하는 것이니, 마음이 무거워질 수밖에.
마음이 무거워지니 모든 문장이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고치고, 또 고치다 보니 시간은 흐르고, 진도는 나가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가볍게 하자‘ 하며 스스로 다독이고, 그러다 또 부담감이 어깨를 짓누르면 잠시 바깥을 바라보거나 귀에 에어팟을 꼽고 ’가을이 다가왔음을 알려주는 팝송‘을 듣거나 당차게 회사 밖을 나가 산책을 하며 크게 숨을 쉬기도 한다. 그러면 마음이 조금 가라앉아 다시 평정심을 유지하며 원고를 볼 수 있는 태도가 생긴다. 지겨울 수 있지만 인생은 어쩌면 무거운 마음과 가벼운 마음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마치 양쪽에 아무 일도, 아무 물건도, 아무 사건도 없어야 평정심을 유지하는 시소처럼, 숨만 쉬어도 갈등이 난무한 우리 인생은 언제나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삐딱한 자세를 취하곤 한다.
늦은 밤에도, 이른 아침에도 해결해야 하는 원고를 마음 한편에 담아 둔 채,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낸다. 일부러 취미생활도 가져보고, 게임도 하고, 웃고 떠들 수 있는 일들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잊으려고. 그래, 흔히 말하는 그 워라밸을 지켜보려고. 이 노력이 사라지면 어느덧 마음은 무거워지고, 마음이 무거워진 만큼 또 일에 몰입하게 된다. 새벽 일찍 일어나 일을 생각하고, 그리고 나도 모르게 씻고 회사로 가 아무도 없는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이건 열심히 하고, 열심히 하지 않는 문제가 아니다. 인생을 가볍게 대하지 못하는 문제다. 물론 가볍게 산다는 말이 실없이 살라는 말이 아님을, 알 것이다. 무겁지 않게, 하루하루 여유를 가지고 살 수 있다면, 하는 마음이다.
마음이 무거워지면 주변을 바라볼 수 있는 힘과 마음이 사라지고, 눈앞에 급급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너무 당연해 보이는 이 말이, 막상 그런 상황이 닥치면 사치스러운 말로 느껴진다. 하지만 인생은 때때로 사치를 부릴 때 고개가 뻣뻣해지고,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삶을 누리고 살아가고 싶어 하는지를 경험하지 않는가. 물론 반복되는 사치는 오히려 자신을 깎아내리겠지만, 사치를 부릴 수 없는 우리 인생에는 그런 사치가 조금은 필요해 보인다. 늦은 밤, 책의 두께만큼 무겁게 느껴지는 내 삶에, 가볍게 생각하자는 작은 다짐을 고이 담아 잠시나마 사치스러운 시간을 부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