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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 탓 Oct 14. 2019

하마터면 열심히 살지 않을 뻔했다.

열심히 사는 줄 착각했던 지난날에 대한 반성

운전을 하다 톨게이트를 지난다.

하이패스가 성실히 돈을 썼다고 백한다.

몇 달 전 달았던 저 하이패스.

위아래 거꾸로 달고 한참 바보 소리를 들었지만

시각에 적응하고 신경도 안 쓰던 저 하이패스.

저걸 저기에 거꾸로 달 때쯤엔

이 정도로 기분이 내리막은 아니었는데.

갑자기 난 뭐가 문제인지 알고 싶어 졌다.


직업을 가진 후부터 그냥 살아오고 있었다.

초중고 12년을 시험에 스트레스받았지만

 나잇대에 할 수 있는 건 다 해가며 살던 시간들과

밥벌이를 위해 공무원 공부를 했던 그 열정적이던 순간들을, 힘들었던 시간들 

모조리 술잔에 담아 마고 필름을 끊었다.

 

사실 취업 후에도 '그냥'이라는 단어처럼 단순하고 조용한 느낌의 인생은 아니었지만

'그냥'이라는 말만큼 살았다.

사람들의 충고에 허덕일 만큼  살지 않았

그렇다고 하나하나 따져가며 나를 통제하지도 았다.

법이라도 공동의 규칙을 어기고 싶진 않았 작지만 달콤한 유혹에 곧잘 넘어가며 살고 있었던 거다.


그런 내가 그냥 생각하지 않 딱 한 가지가 바로 ''이었다.

처음엔 처음이니까 당연히 열심히 했고

나중엔 믿음에 배신하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지금은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잘한다고 하잘해야만 할 것 같아서.


그 과정에서 내 기분은

땅굴을 파고 내려가다 못해 관련 없는 자존감까지도 갉아먹고 있었다.


열심히 하는 것과

진짜 잘하는 것에서 오는 괴리감

그리고 그 괴리감이 주는 열등감과 스트레스


할수록 일이 생기는 마법

들어가는 나이와 늘어가는 위시리스트

그와 반비례하는 시간

일에 투자한 것에 비해 보잘것없는 보람과 뿌듯함


바쁘다는 핑계 멀어지고 잊히는 친구와 가족들

비워지는 관계를 대신해 차오르는 외로

잊고 싶어 마시는 술과

마셨던 기억을 잊고 싶은 다음날


괜한 심술에 차곡히 쌓이는 오해로 인한 미움들

작아지는 마음 

그래서인지 작은 일에도 쉽게 무거워지는 마음


바보라는 호칭을 중간중간 섞어가

누군가 열심히 살지 말라고 했던 게 떠오른다.

위에선 열심히 하는 만큼 더 시키고

내가 열심히 하는 만큼 다른 이들은 그만큼 본인의 일을 넘겨버린다고.

그렇기 때문에 세상은 어제와  똑같이 돌아간다고.

본인도'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라고.


과연 이런 내 마이너스의 기분들이

열심히 살지 않으면 해결이 될까 싶었다.


 모든 일을 남들보다 더 잘하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일에 중독된 사람은 아니다.

그러다 보하기 싫을 때가 많았고

내 잣대로 별일 아닌 일은 귀찮아하기 일쑤였다.


잘하고 싶은 마음보다 덜 노력했 게

그 이유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다시 말해

난 열심히 살기 때문 아니라

열심히 살지 않았기 때문에 작아지고 있었 다.


대학교 과제 근거자료 수집이 귀찮아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구절을 대충 붙여 넣기 하는 불성실함

내 실수에 대해 생각하다가도 나 자신이 미워질까 하지 않아 버리는 반성

슬픈 일이 닥치면 상처 받을까 무서워 상황을 제대로 직시하지 않는 습관

사과를 하다가도 상대의 풀릴 것 같지 않은 기미에 쉽게 돌아서 버리는 가벼움

콤플렉스에 허우적대지만 극복할 생각보다 감추고 완벽한 척을 하고 싶은 가식


이 모든 단점들이 내가 하는 일에 녹아들고 있었다. 

시간만 축내는 '열심히' 였던 지난 날들.

딱 90%만 해버리고 찝찝함도 후련함도 아닌 기분을 맛보며 불안해하는 어리석음.


하지 않은 10%의 불완전성이 토대가 되어 발생하는 실수 

떠오르지 않는 해결방법에 뒤처지는 발걸음.


같은 일을 한 번에 끝내지 못해 오래 걸리는, 그래서 줄어드는 나만의 시간.

사라지는 여유에 정신없는 하루하루들.


또다시 누군가의 탓도 아닌 내 탓.

바쁘다 힘들다 투정해도 그 이유는 다 나였다.


나무 잘하려고하지 말고

내 기준의 '열심히'만 생각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진짜 열심히' 살아보 어떨까 싶었다.


'내가 왜 이러지'만 하고 있었지

사실은 흐릿하게 알면서도

슬픔의 이유를 정확히 찾지 않고 있던 내가

더 큰 상실감의 원인이었을 수도 있다.

내 감정의 근원을 찾는 100%의 노력이 없던

대충의 습관.


귀찮고 하기 싫은 일에

합리화를 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

불완전한 10%를 알면서도 모르는척하지 않는 것까지.


어떤 힘듦이 와도 포기하지 말자.

모든 슬픔엔 이렇듯 항상 이유가 있고

난 그 이유를 찾아 슬프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까.


아니 래도 나 앞으로도 은 이렇게 슬프자.

더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슬플 필요는

얼마든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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