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말고 내 이야기.
며칠 전 집에 미니빔이라는 물건을 하나 사놨기에 영화관 가는 일이 적어졌다.
그래도 영화관에서 봐야하는 영화들, 바로 여기 저기서 들려오는 스포일러를 막을 수 없는 영화들이다.
몇 달 전부터 보고 싶었던 곡성이라는 영화를 개봉 첫 날 가서 보자고 다짐했기에 퇴근 시간만 기다리다가 친구와 약속을 하고 결국 보게됐다.
워낙 난 무서운 장면이 나와도 눈을 감지 않는 편이라 주먹을 꽉 쥐고 두시간 반을 부릅뜨고 있었고, 그래서인지 크레딧이 올라갈 쯤엔 기운이 다 빠져 영화관을 나올 땐 두 눈이 퀭해져있었다.
문제는 그렇게 열심히 본 영화인데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는 거다. 정말로 무슨 내용인지 몰랐다. 집에 돌아오면서 첫번 째 든 생각은 돈주고 본 영화를 이해를 못하다니 자존심이 상한다, 였고 두번 째 든 생각은 후기를 찾아서 결말을 이해하자, 였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친구에게 이곳저곳의 블로그에 담긴 후기들과 감독의 인터뷰 등을 들려주며
이런 내용인가봐 그 장면은
설명하다가도,
아 근데 그럼 그 뒤에 이야기가 말이 안되는데..
하면서 다른 평론가들을 다시 검색하기 시작했다.
묵묵히 그래? 그런거야? 그럴 수도 있겠다, 하면서 내 추측과 억측이 뒤섞인 설명을 들어주던 친구가 가만히 날 쳐다보더니 말을 꺼냈다.
꼭 그게 무슨 결말인지 알아야겠어?
빨리 알아내고 말겠다며 애꿎은 와이파이한테까지 화를 내고 있었는데.
나는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멍한 기분이 들어, 한 시간만에 핸드폰에서 눈을 떼고 친구를 쳐다봤다.
나는 그냥 무슨 말을 하는 지 알 것 같아. 그리고 재밌게 봤어. 그거면 된 거 아니야?
핸드폰 화면이 검정색으로 변하는 게 눈동자 아래로 느껴졌다. 친구의 말이, 방금의 심오한 영화의 결말보다도 더 깊게, 뇌에 가슴에 꽂혔다. 창피함과 당황스러움에 핸드폰을 주머니에 순식간에 넣어버렸다.
언제나 나는 확실한 걸 좋아했다. 결론이 없는 모든
것들을,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에게 그런 것들은, 그럴 수도 있는 것이 아니라 애매모호한 것. 이었다.
감독의 인터뷰가 생각났다.
ㅡ 글 한 줄 한 줄을 쓰면서 관객이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고 저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다, 하며 썼다.
천우희의 인터뷰 또한.
ㅡ 대본을 보면서도 본인의 역할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그리고, 어느 평론가의 일침.
ㅡ 당신은 이 영화에 낚였는가?
분명 여러가지의 의미가 있겠지만 말이다. 나는 인간의 보편적 특성에 의해 낚인 것뿐만 아니라 영화 주제를 넘어 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나만의 성격으로 인해서 또 한번 낚였다.
내가 영화를 본 이유는 그 영화의 결말을 알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두시간 반 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다음 줄거리를 궁금해하며 영화에 빠져있고 싶어서였다는 것.
분에 못이겨 결말에 목을 맨 게 부끄러웠다.
애초에 열린 결말이었고 여러 함축적인 내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나 자신이 마치 엄청난 지식인인양 영화를 보고 이해가 안되다니 바보 아니야? 했던 내 오만에 몸이 떨렸다.
맞다. 내가 가장 잘 쓰는 말.
그래서, 결론이 뭐야?
모든 것에 결론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닌데.
왜 바보같이 이런 게 가장 잘 쓰는 말이었을까,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