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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 탓 May 06. 2017

날 더 사랑하는 사람에게

널 사랑해, 너보다 더.

더 사랑해주는 사람을 언제나 내쫓는 사람이 있다. 그러고는 내가 더 사랑하는 누군가를 좇는다.


언제나 그랬던 것 같다.

널 사랑해, 너보다 더. 라는 말은.

관계에 기폭제가 아니었다.

감정이 뜨거운 물에 쪼그라드는 얼음처럼 사그러졌다. 그리고 난 홀가분한 마음이 되었다.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은 내 잘못일지 모르지만,

나는 누군가 나를 더 많이 사랑해주면

그 마음이 거짓되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보다 나를 더 좋게 봐주는 그가,

바보처럼 나에게 잘도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나를

그가 날 사랑하는 만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난 바보천치였다.

하지만 언제나 이성적이고 사랑스러운 사람인양 행동했다.


그래서 나는 나를 미워했고,

나를 잘 모르는 누군가는 날 사랑했다.

아니, 그렇다고 믿었다.


넌 멋져, 사랑해 보다

넌 바보지만 사랑해 라는 말이

더 매력적이고 솔직하게 들렸다.


그렇게 날 사랑하던 그는 항상 날 바보로 봤고,

난 바보가 되어

바보같은 연애를 하다가

바보같이 끝이 나는걸

바보처럼 지켜봤다.


시간이 지나고 난 하염없이 슬픈 사람이 되었다.

슬픔에 갇혀 혼자 생각하는 시간들과

나에 대해 들여다 보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가만히.

나를 사랑해주는 엄마를, 아빠를, 친구들을, 낯선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영화, 책, 여행, 노래, 빗소리, 시원한 기네스병, 집안의 따뜻한 기운, 내 옷의 청량한 냄새와.

조카와의 눈맞춤, 주고 받은 편지들, 오랜친구와의 침묵과.

모든 경험, 마음에 드는 생각들, 끄적이던 농담, 사랑하는 사람과의 속삭임, 술자리에서의 시끌벅적한 즐거움을 생각했다.


깊숙한 물음에, 나 자신과의 진지하고 솔직한 대면에 차츰 적응이 되자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큼 내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멋지게 느끼기 시작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멋진 사람들이라는 걸

깨달았다.


좋아하는 것들이 반짝거렸다.

마음이, 눈빛이, 내가, 반짝였다.


사람들을 속이는 게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누군가의 칭찬 그대로인 사람일 수도 있겠다, 바보 천치가 아닐 수도 있겠다,

정말, 사랑스러운 사람일 수도 있겠다.


더 사랑하는 사람들을 밀어내는게 머뭇거려졌다.

밀어내도 밀리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

그 사랑에 보답하려 난 더 나를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그 또한 그보다 더 사랑했다.


그때에도 내가 나를 더 많이 사랑했다면.


난 더 많은 사랑을 받고

그만큼 그 사랑을 베풀고

지금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어있지 않았을까.


조금만 더 일찍 나를 아껴줄걸.

조금만 더 일찍 나를 사랑해줄걸.


조금만 더 일찍.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반짝일 수 있게 해줄걸.


그때보다

정말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사실은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 하더라도

상관없다.


지금 난, 언제나 반짝이고,

그게 내가 원하던 전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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