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게 속다.....
헤어질 때쯤 오히려 넌 내게 상냥했었다.
나에게 지은 잘못이 많아 미안하단 듯한
너의 태도에 문득 난
내 미래는 한동안 막막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헤어진 후에도 넌 술 취한 밤이면 내게
거리낌 없이 전화해
'잘 있어?
괜찮아?
미안해....' 란 말로 울먹였지만
난 한 번도 대꾸한 적이 없었다.
그렇게 오 년쯤 지난 어느 날 밤
넌 몇 개월 만에 내게 뜬금없이 술 취한 목소리로 전화해
한참을 말없이 있다
'미안해....'라고 말했다.
나도 모르게
'그 사람하고 이제 결혼해...'라고 말했고,
넌 그만 울음을 터트렸다.
그냥 막연한 느낌이었다.
너와 함께한 시간이 7년... 그냥 난 너에 대해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헤어지던 날 막연히 내가 감당해야 할 이별의 크기가 너와 함께한 시간보다 작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눈물도 안 났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사실 그랬다.
그 마지막 날 다짐했다.
적어도 너와 함께한 시간이 더 흐를 만큼 동안은 너에게 미련을 보이지 않겠다고,
절대로 너를 뒤돌아보는 짓은 하지 않겠다고,
가슴이 모두 조각나
다른 사람을 품지 못한다 해도
네게 다시 울음을 토해내지는 않겠다고.
너와는 추억이 많았다.
하루에 한 가지씩 생각나 담담히 지워버려도
웃다가 문득 저 너머로 생각 나는 너를 쉽게 떨쳐버리는 건 쉽지 않았다.
내 마음에 네가 너무 깊이 박혀있어
잊히기란 쉽지가 않았다.
너와 나만 나누던 언어들이 머릿속에 맴돌아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온몸으로 먹어야 했다.
그래서 모두 도려내기로 했다.
네가 있던 자리가 뻥 뚫여 바람이 싸했다.
그래서 내 모든 게 차가워졌다.
내 주위의 모든 이들이 독하다 고개를 저었어도
난 꿈쩍도 안 했다...
살아야 했으므로....
그래도 어째 뜬 숨셔야 했으므로....
스스로 감정을 얼려버렸다.
가슴이 뻥뚤려 무엇으로도 막아 보려 했지만
너로 인한 것이므로 네가 아닌 것은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온전치 않은 채로 그냥 받아들였다
이제 겨우 십 년이 흘렀다.
난 비로소
눈물을 목안으로 흘리며 웃는 법을 깨달았다.
차가워진 가슴으로도 따뜻하게 웃을 수 있는 방법을 깨달았다.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말할 수 있게 됐다.
네가 아닌 다른 것으로
네 자리를 채웠어도
만족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조용히 떠올린다.
너를 사랑한 내 모습과
나를 바라보던 네 눈빛과 추억만으로도 만족한다고
이제 진심으로 네게 말할 수 있다.
'행복하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