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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이진 Jan 10. 2019

초조함

오픈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찾아온 감정은 초조함이었다. 이 감정은 한동안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손에 익지 않은 일로 정신없고, 매일 일어나는 충돌로 하루에 몇 번씩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의 기복이 있었지만, 초조함은 이 전체적인 상황을 감싸고 있는 감정이었다. 어두움 같은 존재랄까? 화기애애하기도 하고 말다툼을 하기도 하고 지쳐 쓰러져있기도 한 밤의 다양한 모습을 어두움이 감싸고 있는 것처럼, 일을 하며 어떤 상황을 겪든 간에 초조함의 아우라가 함께 했다. 


소위 '오픈 빨'이 먹히는 시기가 지나면 진짜 장사가 시작된다. '새로 문을 열었으니 한 번 먹어보자!'하고 찾아온 손님이 우르르 몰리는 시기는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세 달 정도가 아닐까? 그 후, 찾았던 손님이 재방문하고 또다시 재방문을 하며 가게가 자리를 잡는데, 만약 재방문하는 손님의 수가 적다면 가게가 잘 될 가능성이 현저히 줄어든다. 재방문이 지속되는지를 확인하는 기간, 말하자면 가게가 가능성이 있는지, 자리를 잡고 장사를 할 수 있는지 검증받는 기간 동안 그렇게 초조했던 것이다.


매일 아침, 오늘은 손님이 어느 정도 찾아올지 생각했다. 날이 너무 덥거나 춥거나, 흐리거나 비가 오면 걱정이 먼저 들었다. 방문하는 손님의 수는 날씨와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날씨 진짜 좋다"는 날은 손님 많을 확률이 80프로 이상이다. 비가 내리는 날은 손님의 수가 평균 이하로 줄어들 확률이 100프로다. 첫 손님이 12시가 지날 때까지 찾아오지 않으면 초조함이 더 커졌다. '오늘은 망한 걸까? 손님들이 다 어디로 갔지?', '저 건너에서 걸어오는 사람이 우리 집으로 오는 걸까?.. 아 아니네..' 합리화도 해본다. '우리 음식만 먹을 수는 없으니 다른 집도 가야지... 근데 하필 그 날이 여러 손님들이 겹쳤나 보다.' 위안도 해본다. '설마 우릴 버리지는 않았을 거야...'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말이 있다. 점심시간이었는데 손님이 몰리지 않았던 날, 어김없이 긴장하고 있었던 날이었다. 세 분의 아저씨가 가게로 들어왔고 그중 한 분이 자리에 앉으면서 말했다. "여긴 왜 이렇게 손님이 없어요? 다른 집 다 차서 우리 여기 온 거예요~"... 할 말이 없었다. 같이 온 맞은 편의 손님이 민망해했다. 조금 화가 나기도 했다. '손님이 없는 이유를 내가 어떻게 압니까. 우리 손님 많은 날도 있는데, 당신이 하필 한가한 날에 온 겁니다! 그렇다고 그런 말을 대놓고 하는 건 무슨 예의입니까. 못생긴 사람한테 너 왜 이렇게 못생겼냐고 면전에서 말합니까? 아니면 젊은 여자를 쉽게 봐서 한 말입니까?' 말하지 못한 속마음이다. 그 말을 한 아저씨에게는 더 이상의 서비스('뭐 필요한 것 있으세요'와 같은 말 한마디)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난 아마추어(?) 감정 노동자였다.


이런 걱정을 하는 시기를 빨리 지나 안정을 찾으면 참 좋을 것 같은데, 그것은 시간이 주는 선물이었다. 몇 년 지나고 보니 버티고 있으면(물론 열심히 해서) 날씨나 계절별 손님의 패턴을 파악하게 돼서 어느 정도 예상을 할 수 있게 됐다. 날씨가 너무 좋은 주말에는 나들이 가는 손님이 많아서 손님이 뜸하고, 갑자기 추워지는 환절기에도 빨리 집으로 가고 싶은 심리 덕에 손님이 많지 않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 단골손님도 생겨서 손님이 아예 안 와서 망하는 건 아닌지 하는 걱정도 사라진다.


비어있는 가게가 주는 감정.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고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 여름에 비해 손님의 수가 줄어들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우린 메뉴를 가장 큰 원인으로 보았다. 살얼음 육수와 함께 먹는 '냉모밀'은 확실히 여름에 주로 먹게 되는 음식이기 때문에 날이 추워지자 모밀을 찾는 손님이 확 줄어든 것이다. "따뜻한 거 없어요?"라는 문의도 종종 들어왔다. 초반에는 많은 음식을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으로 주메뉴를 돈가스와 모밀로 시작했지만, 일이 익숙해지고 자리가 잡히면 메뉴를 늘릴 계획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계절의 변화와 함께 우동 메뉴(어묵우동, 새우튀김우동)와 카레 메뉴(돈가스 카레, 새우튀김 카레, 돈가스 새우 카레)가 추가되었다. 


물론 메뉴가 늘었다고 초조함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이 메뉴가 외면당하지 않고 손님들에게 받아들여질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간 동안에는 더 긴장했다. 카레 판매 첫날, 처음으로 새우튀김 카레를 주문한 여자 손님의 옆모습이 기억난다. 주방에서 손님이 먹는 일을 지켜보는 일은 애가 타는 일이다. 나의 실력을 평가받을 때의 그 긴장감... 입으로 한 입 한 입 들어가는 속도가 원활한지, 음식을 씹을 때의 표정은 어떤지, 상대에게 뭐라고 이야기하는지, 다 먹고 난 후의 그릇의 상태는 어떤지... 모든 게 신경이 쓰인다. 손님에게 대놓고 맛이 어떠냐고 물어보기 힘들고 아주 자세한 답을 들을 수도 없다. 그러므로 가장 확실한 평가는 '재방문'이다. 맛있으면 다시 오고, 맛이 없으면 오지 않는 것은 진리다. 이토록 정확한 평가라니! 새 메뉴가 추가되며 초조함이 지배하는 기간도 길어졌다. 



내가 먹으면 맛있는 카레인데,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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