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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이진 Sep 30. 2020

두 눈을 부릅뜨고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지나간 모습이 내가 아니고, 앞으로의 가능성이 내 현실이 아니라, 내가 살아있는 지금 모습이 나의 현실이다.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글을 쓰고. 그런 삶을 살고 싶었고 그것이 나와 어울리는 삶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만큼 행동하지 않는다. 나는 거의 읽지 않고, 글도 거의 쓰지 않고, 공부도 하지 않는다. 짬나는 시간에 리모컨을 붙들고 소파에 기대 있는 일이 더 많고, 맡은 강의가 있으면 그 준비로 겨우 공부하며, 쓰지 않아도 잘 산다.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 쓴다'는 누군가의 말을 내 것이라 여겼던, 그런 말을 지껄였던 과거가 너무 부끄럽다. 그것을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 됐었던 게 아니라 그렇게 보이는 모습을 동경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뭐 그럴 수 있다. 사람이 되고 싶은 모습을 꿈꾸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람은 이상이 있어야 행동을 한다. 이상과 다른 현실, 이상을 쫓아가지 못하는 모습. 그것은 나중 문제이고, 어찌 되었든 이상은 사람을 움직이게 만든다. 그런데 그 유효기간이 영원하지 않다. 이상은 내 발 앞에 무겁게 던져진 돌덩이 같은 '먹고사는 문제'를 만날 때마다 점점 그 힘을 잃어간다. 언젠가는. 이 순간만 지나면. 그렇게 유예했던 꿈들은 점점 색이 바래는 오래된 책 표지처럼, 안개 너머 뿌옇게 보이는 희미한 빛처럼 흐려지고 지워진다.



지워지는 일. 그 후에는 무엇이 남는가? 나의 현실. 지금의 나의 모습. 그것은 매 순간 변하지만 결국 존재하는 것은 오늘 이 순간이고 이곳의 나이다. 나는 그런 꿈을 꾸었지만, 지나온 나의 선택과 나의 행동들이 지금으로 나를 데리고 왔다. 꿈과 다른 현실을 맞았다면 지금까지 온 길에서 했던 선택들이 다 잘못된 것인가? 그러면 나의 지난 삶은 모두 잘못된 것인가? 다시 꿈을 꾸고 이상을 그려야 더 노력(?)하고 더 발전(?) 하지 않느냐고 누군가는 말할 수도 있다. 그러면 지금의 나는 수정되어야 하는, 오류가 있는, 보완되어야 하는 모습이라는 건가?



언젠가는 잘 될 거라는 말. 무의미한 인사 치례일 수도, ‘희망'을 줄 거라 생각해서 건네는 말일 수도 있는데, 질문이 자꾸 생긴다. 언젠가는 잘 된다는 말은 지금은 잘못되었다는 말인가요? 잘 된다는 말속에 당신은 어떤 구체적인 모습을 그리는 건가요?



스스로가 지금의 나를 보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이 불쌍해서. 그동안 내 삶의 궤적이 별 볼일 없어지는 게 억울해서. 두 눈을 부릅뜨고 내 현실을 정확히 보기로 한다. 언젠가는. 이 순간만 지나면. 변하는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전에 그랬었던. 그렇게 했던 이전의 나도 없다. 지금 이곳에, 이런 모습으로, 이런 생각으로, 이런 행동으로 살아가는 나뿐이다.




2019.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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