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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이진 Jan 20. 2021

사람이 되고 있구나

“이현이 방에서 놀자아~” 하루에 스무 번은 넘게 듣는 말이다. 심지어 방에서 놀고 있는 중에도  환청처럼 계속 들린다. (왜 놀고 있는데 또 놀자고 하는 거야...) 이미 커버린 우린, 자동차, 공룡, 블럭... 이 가득한 방에서 집중력을 유지하기 쉽지 않다. 아무리 애를 써도 자동차와 공룡의 세계로 몰입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놀다가 갑자기 자리에 드러눕거나 괜히 아이를 끌어안거나 하며 장난감 놀이의 흐름에 제동을 걸게된다. 


오늘도 w가 자동차 놀이를 하다가 갑자기 드러누워서 자는척을 했다. 그모습을 본 이현인 엄마에게 쪼르르와서, “엄마 아빠가 안놀아줘” 하며 일렀다. 이런 상황을 너무 무겁게 받으면 안된다. '왜 또 자는척 해. 노는 시간이 왜 그렇게 짧어, 일어나서 좀 재밌게 놀아줘라~’는 잔소리는 누구에게도 좋은 방법이 아니다. 잔소리는 아이와 함께 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앉아있었던 그 시간을 아무도 몰라준다는 서운한 감정을 불러낸다. 


대신, 실망하는 표정의 고자질쟁이를 향해 장난스러운 얼굴을 하고 두 손가락을 쭉 펴 보이며, “이현아 아빠 콧구멍 이렇게 쿡 찔러봐. 찔러서 깨워봐.” 했다. 그 말을 들은 이현의 얼굴이 갑자기 굉장히 신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우왓?! 콧구멍을 찌르는 놀이라니. 큭큭. 장난은 너무 신나는 일이지. 당장 해봐야지!’ 하는 속마음을 온 몸으로 풍기며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때부터 콧구멍 찌르는 놀이가 시작되었다. 


눈을 감고 누워있는 아빠의 양쪽 콧구멍을 두 손가락으로 찌르고 후다닥 침대 위로 올라갔다. 찌르지 않은 척. 그러면 아빠는 “뭐지? 누가 내 콧구멍을 찔렀지?” 하며 대체 누가 그런지 정말 모르겠다는 말로 받는다. 이현이는 더 신이난다. 내가 찔렀는데 ~ 크크큭. 다시 잠이 드는 아빠. 또 다시 내려가서 콧구멍을 찌르고 후다닥. “누구지?? 누가 자꾸 콧구멍을 찌르는거야~” 속아주는 자의 능청스러운 연기는 속이는 자의 텐션을 쭉쭉 끌어올렸다. 꺄르르 웃음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그러다 다시 놀이의 진행이 바뀌었다. 이현이가 괴물이 아빠 콧구멍을 찌르고 도망갔다는 주장을 한 것이다. (이건 뭔가 진화되는 흐름인데?) 이제 둘은, 이현이가 목격했다는 괴물을 찾기 시작했다. 생김새는 무려 ‘해골’처럼 보였다고 했다. 집게(젖병 열탕 소독을 하던 집게)를 들고 괴물을 잡겠다며 여기 저기 찾다가, 혹시 괴물을 봤냐며 두 남자가 나에게 접근을 했다. “어 나 콧구멍 찌르는 괴물 봤는데!? 괴물은... 음… 공룡들이 그려진 옷을 입었고, 키는 요만하고… (이현과 동일한 모습)”  


터지는 웃음을 참으며 설명을 하는데, 이현이가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아니야~ 이현이가 안했어~” 한다. 용의자를 특정 하지도 않았는데, 제 발 저리기! 그런데 뻔한 거짓말을 하는 그 표정이 너무 진지했다. 벌써? 거짓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줄 아는 나이가 되었다고? 자기가 한 일을 아니라고 말하고, 표정까지 동원해서 설득을 시킬 수 있게 되었다고?  


안그런 척 숨기, 괴물이라는 새로운 대상을 개입시켜서 추리를 혼란시킴, 지목을 당하면 포커페이스로 반박. 이 과정을 그럴듯하게 해내고 있다니. 너 정말 사람이 되고 있구나!  






202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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