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청탁이 들어왔다.
고마운 일이지만 즐거운 일은 아니다.
담당자의 의도대로 써줘야 하는데 대체로 그의 의도는 내게 잘 전달되지 않는다. 그래서 완성본을 한 번 더 뒤집는 수정을 해야했다.
푼돈에 이 정도 공력을 들이고 나면 더듬이가 간절해진다. 어차피 그대의 말은 내게 전달되지 않으니 말하지 말고 더듬이로 텔레파시를 보내라.
그러나 더듬이를 맞대고 있는 상상을 하니 다시 없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코와 코를 맞대는 것만큼 어색하고 징그러울 것이다.
결국, 이렇게 뒤집어서 또 쓰는 것밖에 방법이 없는 것인가?
...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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