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by 수박씨

12년이 넘게 한 회사에서 일을 했고, 그 기간 동안 결혼도 하고 아이도 셋이나 낳았다. 회사는 내 젊음의 산 증인이었지만, 이렇다 할 업적은 없었다. 회사의 일개 직원일 뿐이었고, 내가 퇴사한들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고, 회사는 나 없이도 잘만 운영될 것이다.


아이를 셋 낳을 동안 퇴사해도 아무도 말리지 않았을 텐데, 그럼에도 나는 굴하지 않고 세 번의 육아휴직을 내었고, 마지막 아이의 휴직을 5개월 남겨두고 복직했다. 여전히 누구도 출근을 강요하지 않지만, 출근하는 것이 가정에 별 이득도 아니지만, 계속해서 출근을 강행하고 있다.


미혼의 시절, 아이 셋을 낳고 휴직하는 선배를 보며 너무하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TO는 그대로이나 팀원의 공백이 생기는 육아휴직은, 남아있는 직원들에겐 부담이었다. 나라에서 합법적으로 시행되는 제도이지만, 사무실 안의 환경은 많이 달랐다. 그랬던 내가 세 번의 육아휴직의 주인공이 되었다. 긴 휴직으로 내 업무를 누군가 감당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누군가의 눈에는 세 번의 육아휴직이 민폐일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나는 출근을 하기로 했다. 애를 낳았다고 회사로 돌아갈 수 없는 건, 너무 억울하니까.


돈을 잘 벌어야만 일을 할까? 대체 불가한 위치에 있어야만 회사를 다닐까? 나이 지긋한 엄마들은 무조건 출근을 멈추지 말라고 조언한다. (물론 아닌 엄마들도 있다.) 아이는 금방 크고, 클수록 필요한 건 돈이며, 그때가 되어서는 어디에서 일하려고 해도 일 할 곳이 없다는 뼈아픈 경험담이었다. 스무 살 이후 알바든, 일이든 육아휴직 외에는 쉬었던 적이 없는 나는, 살림보다는 회사에서 내 역할에 충실하는 것이 적성에 맞아, 계속해서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선배 엄마들의 조언에 힘입어 아직도 열심히 출근 중이다.


그렇지만 퇴사를 생각하지 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쥐꼬리만 한 월급에, 대체 가능하고 소모적인 이 일을 계속해야만 하나? 매번 마음속에 사직서가 있었다. 하지만 계속 오르기만 하는 집값과, 역시나 날이 갈수록 더 드는 교육비와 생활비는 나를 일터로 밀어 넣었다. 이렇다 할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다른 걸 할 수도 없었다. 별 수 없지 않은가. 부모님께 물려받은 재산도, 집도 없고, 남편이나 나나 고소득자가 아니니 부지런히 출근하는 수밖에.


복직할 당시 원래 일하던 자리로는 갈 수 없었을 때에는 더 많이 흔들렸다. 이미 동기들은 다 그만둔 후였다. 복직을 결심하고 일을 하면서부터는 생각보다 더 힘들었다. 매일같이 성난 고객을 상대하는 일은 심신이 피로했다. 그 가운데에 아빠를 천국으로 보내 드렸다. 큰 일을 겪고 다시 고객을 마주하자니 엄두가 안 났다. 새로운 파트로 이동을 신청했고, 지금의 자리에 만족한다. 어쨌든 버티니, 새로운 길이 생겼다.


버티고 버텨 지금껏 회사를 다니면서도, 언젠가는 해야지 해야지 했던 일이 ‘글쓰기’였다. 마음이 복닥일 때면 블로그에, 브런치에, 그냥 메모장 귀퉁이에 날 것의 일기를 적었다. 그리고 조금 더 용기를 내어 진짜 작가가 되고 싶었다. 공무원도 아니고 심리상담사도 아니고, 내가 진짜 가슴 깊이 원했던 일. 무얼 해도 ‘글쓰기’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았던 그 갈망을 내보이고 싶었다. 작가도 아닌 사람이 글을 쓴다고 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어서 쉬쉬하며 혼자 써 내렸던, 그 글들을 세상에 보이고 싶었고, 엄마도 세상에 용기를 내어 부딪히고 있음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잘해야 삼류 이상은 되지 못한다고 해봐요. 그걸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할 가치가 있겠습니까? 다른 분야에서는 별로 뛰어나지 않아도 문제 되지 않아요. 그저 보통만 되면 안락하게 살 수 있지요. 하지만 화가는 다릅니다."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 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 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달과 6펜스 본문 69쪽 중에서]


부모가 처음인지라 신생아는 신생아대로, 사춘기는 사춘기대로 매번 새로운 고비를 맞을 때, 육아서나 전문가의 의견에 의존하게 된다. ‘아이를 어떻게 키울까’에 대한 고민으로 ‘잘 키우고자’ 책을 보고, 전문가의 상담을 받는 것인데, 사실은 부모의 마음이 건강하면 아이는 문제가 없다. 내가 지시하고 훈육한 어떤 말들보다, 아이에게 했던 말, 했던 행동, 했던 눈빛까지도 아이들은 나를 따라 하고 있기에, 지금 나는 나를 성장시켜 보기로 결심한다.


살면서 치열한 적이 별로 없었다. 조금 해보고 안되면 그만두었고, 길이 열리는 곳으로 힘들이지 않고 가는 것을 선택해 왔다. 이제는 되는대로 살기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해보고 싶다. 마음껏, 눈치 보지 않고. 글을 쓰는 것도 권태기가 있고, 매너리즘이 없을 리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일을, 내 생각보다 잘하지는 못하더라도, 용기를 내어 첫걸음을 내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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