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의 초반, 마흔이 된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젊디 젊은 나이지만, 그때에는 늦디 늦은 나이라 초조해하며 일주일에 두 건씩 소개팅을 전전했다. 소개팅도 더 이상은 지겹고 의미 없어지던 찰나, 지인의 강력한 권유로, 만난 지 3개월 만에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고, 다행히 8년째 별 탈 없이 잘 살고 있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결혼할 수 있냐, 첫눈에 반했냐 등 많은 질문을 받았었는데, 글쎄, 타이밍의 운명이 아니었나 싶다. 나는 더 이상의 연애는 원치 않았고, 남편 역시 결혼을 향해 돌진 중이었다. 같이 있던 시간과 대화가 좋아, 그저 흐름에 맡겼더니 부부가 되어 있었다.
결혼 후 1년 만에 아이가 찾아왔고, 8개월여 더 일하다 휴직을 했다. 휴직자가 생기면 회사에서 가장 중요해지는 게 TO, 즉 인력배치가 아닐까 싶다. 1년을 넘게 쉬게 되면 부서에서는 업무 분담을 새로 짜야한다. 휴직에 들어갈 당시 인력배치의 문제로 출산휴가만 하고 돌아오기를 권유받았었다. 하지만 1년 3개월을 다 쓰고 오겠다고 했고, 부서장도 그에 맞춰 업무분담을 마쳤다.
드디어 나의 첫 생명이 탄생했다. 기쁘고 오묘한 경험이었다. 이렇게 못생긴 아이가 내 아이라고? 예쁘기만 할 줄 알았는데, 아이를 보기만 해도 모성애가 철철 흐를 줄 알았는데, 그냥 다 끝났구나 하는 해방감이 들어도 괜찮은 걸까. 그런 감정도 잠시 잠깐, 다음날 새벽부터 인터폰의 콜이 울려댔다. 수유하라는 전화였다. 제대로 앉지도 못하는 엉덩이를 겨우 일으켜 수유실로 향했다. 피곤한 마음과는 달리 수유실의 음악은 평온하기 짝이 없었다. 아이를 다시 만나 수유를 하려는데, 이런, 아이에게 줄 꼭지가 너무 짧고, 모유도 전혀 나오지 않아, 아이는 잠만 잤다. 데면데면 아이와 껴안고 앉아 있다가 오늘은 그만 하시고 가보라는 말에 방으로 올라갔고, 퇴원할 때까지 상황은 같았다.
출산을 하기 전, 조리원은 천국이라고 들었다. 널찍한 방에 쾌적한 침대와 소파, 싱크대, 화장실, TV, 젖병소독기까지 아이와 엄마를 위한 모든 게 다 갖춰져 있었다. 천국에 입성한 줄 알았지만 잠시 스쳐간 꿈이었다. 요가, 모빌 만들기 따위의 빡빡한 스케줄과 2시간에 한 번씩 부르는 수유 콜로 나는 기진맥진해졌다. 더구나 아이를 수유하는 일이 이렇게 고단하기만 한 일인지는 상상도 못 했다. 모유양도 터무니없이 적었고, 아이는 먹고 싶은 우유가 나오지 않으니 짜증 내며 쩌렁쩌렁 울어댔다. 모유수유가 끝나면 또 젖을 유축해야 했다. 젖양이 많아지게 하기 위한 방법이란다. 또 젖이 많은 사람은 짜내지 않으면 젖몸살을 앓으니, 이래저래 쉴 틈이 없었다. 이쯤 되니 수유 지옥이었다.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조리원 안이, 햇빛 하나 들지 않는 조리원이, 점점 답답해졌다.
드디어 조리원 탈출! 이후의 산후조리는 어머님 댁에서 하기로 했다. 어머님과 남편, 그리고 나는 서로 번갈아 아이를 맡으며 행복하게 잘 살고 싶었다. 하지만 수유 전쟁은 계속되었고, 울어재끼는 아이를 감당할 수 없어 한 달여 만에 모유수유는 포기했다. 모유를 끊으면 남아있는 젖량 때문에 가슴이 아파온다는데, 내 가슴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첫 모유수유 경험기는 흑역사만 남기고, 분유 수유로 깔끔히 갈아탔다. 가족 모두의 평화가 찾아왔다.
어머님의 도움도 끝나 진짜 우리의 신혼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출근을 했고 아이와 나만 남았다. 말 못 하는 아이는 울고, 울고, 또 울기만 했고, 나는 어쩔 줄 몰라하며 24시간 대기조로 고군분투했다. 며칠째 씻지도 못하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일상은, 이전의 ‘나’를 위주로 돌아가던 삶과는 240도 달라져 있었다. 의지할 곳이라곤 남편밖에 없었고, ‘언제 들어오냐’라는 질문을 매일 주문처럼 카카오톡 메신저에 쏟아냈다.
입덧이나 임신중독증처럼 임신기간이 너무 힘든 사람이 있는 반면, 나처럼 아무거나 잘 먹고 잘 자던 임신 체질은 아이를 낳고 보니 임신일 때가 천국이었다. 다이어트 걱정 없이 아이가 먹고 싶은 거라며 마음껏 먹을 수 있었고, 하루 종일 누워있어도 누가 뭐라 할 사람이 없었다. 천국일 때는 천국인 줄 몰랐고, 아이를 낳고 진정한 육아의 세계에 발을 들이고 보니, 그 시절에 더 잘 쉬고 먹고 놀아둘 걸,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처녀 시절을 더 잘 즐길걸 하는 유부녀의 마음, 신혼 때에 둘이 알콩달콩 할 수 있는 걸 다 해 볼 걸 하는 임산부의 마음, 대학시절, 학창 시절이 좋았다는 직장인의 마음이었다. 어째서 지나야만 아는 것일까, ‘지금’이 앞으로의 날들 중 가장 어리고, 좋은 때라는 걸.
힘들어하던 나를 보며 남편은 ‘복직’을 권유했다. 말도 안 된다고, 3년은 애착형성이 중요하다던데 1년도 안돼서 어떻게 나가느냐고 단칼에 거절했다. 그러면서도 고민이 되었다. 어머님도 도와주신다고 하고, 모유수유를 하는 것도 아닌데 출근해도 되지 않을까. 그런데 다시 드는 생각은, 내가 무슨 전문직종도 아니고, 고소득도 아니고, 일에 큰 의지가 있는 것도 아닌데, 회사로 바득바득 출근하는 게 맞는 걸까? 출근하면서 버는 돈과, 출근으로 인해 지출되는 육아로 인한 고용비, 식비, 차비, 의류비, 미용비 등을 비교해 볼 때 수지도 안 맞는 일인데 말이다. 한마디로 나가는 게 손해였다. 휴직도 창창하게 남아있었고, 아이의 정서적인 면을 생각해서라도 육아에 전념해야 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나는 출근하기로 했다. 이유는 단 하나, 나의 정신건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