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멋대로의 복직

by 수박씨

1년 3개월을 예정하고 들어갔던 나는 산후 휴가 3개월, 육아휴직 2개월을 쓰고 복직을 신청했다. 당시에 나는 그게 뭐가 문제인지 잘 몰랐다. 모자란 인력이 빨리 들어간다면 좋은 일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누구도 명확하게 얘기해 주는 이도 없었고, 물어볼 이도 없었다. 물어본다 한들 솔직하게 말해줄 이도 없다는 게 낭패였다. 사실 물어볼 생각도 못했다. 내가 있던 부서에서는 내가 가장 선배였고, 첫 육아휴직자였고, 첫 복직자였다.


회사에는 일반직과 전문직과 계약직이 있다. 일반직은 말 그대로 일반적인 직원으로 사원-대리-차장-부장 등의 순을 밟아 올라간다. 전문직은 상담직, CP 직(Contents provider), 물류직이 있고, 나머지는 계약직이다. 그중 나는 전문직인 CP직에 속하는데, 일반직과는 승진체계도 다르고, 승진을 해도 급여는 소소하게 오를 뿐이었다.


연차는 더해지고 선배들도 출산으로 떠나고, 동료도 떠나고, 남은 동기와 내가 최고참이 되었다. 이 정도 연차에 최고참?이라고 할 테지만, 애초에 직군 자체가 오래 일할 사람을 뽑는 자리는 아니었다. ‘전문적인 일’을 해서 전문직이기보다는 ‘전문대 이상 졸업자’라는 타이틀이 맞았고, 급여 테이블의 호봉 자체가 낮았다. 우리 일을 하던 선배들도 결혼을 하고 대부분 퇴사했고, 바로 위의 선배들도 출산과 동시에 퇴사했다. 파트장이나 팀장조차도 3년 정도 일하고 다른 일을 찾아보는 게 좋다고 말할 정도였다. ‘전문직군’의 다른 부서는 오래 일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우리 부서는 12년째 다니고 있는 내가 유일하다.


복직을 하기로 결심했을 때, 회사 제도나 분위기에 무지한 나는 인사팀에 통보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인사팀에서는 팀장님과 협의 후에 말해주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는 팀장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당황한 듯 황당한 듯 물으셨다.


“복직한다고? 네 자리가 있다니?”


일침을 놓으시고는 긴 말은 안 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팀원이 들어온다는데 뭐 어쩌겠는가. 부서 사람들에게 ‘개념 없는 직원’으로 낙인찍혔는지도 몰랐다. 복직 후 팀에 돌아왔을 때 팀장님은 긴 휴가 중이었고, 나는 아무 일도 받지 못한 채 팀장님의 복귀 만을 기다려야 했다. 아무 일 없이 책상을 지키고 있는 일이란, 초조하고 민망하고, 집에 두고 온 젖먹이 아이만 생각나게 했다. 그리고 할머니가 보내주는 아이의 동영상을 보며 눈물을 삼켰다.


아이를 출산한 엄마 동료들을 보면 왠지 동질감이 생겨 먼저 말을 걸었던 때가 있었다. 둘째를 임신한 대리님을 출근길에 만나 인사를 건네었는데, 아뿔싸, 그 말이 가슴을 후벼 판다.


“다시 봐서 반갑긴 한데, 너무 일찍 나온 거 아니야? 아직 너무 애기잖아~”


모유수유를 한 달밖에 못했다는 나에게 이런 말도 했다.

“좀 더 해보지 그랬어~”


나의 상황을 알지도 못하는데 너무 쉽게 말하는 게 아닌가, 괜히 말은 걸어가지고 이런 봉변을 당하나, 얼굴이 후끈후끈했다. 복직하고 난 일상은 상처투성이였다. “젖먹이 아이를 떼놓고, 너 나오고 싶을 때 나오는 그런 곳이 회사는 아니야, 도대체 어쩌려고 복직을 한 거니?”라는 나 스스로의 자책 어린 말이 귓가에 위윙거렸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 건 가능하다. 후회하지 않고 내가 저질러놓은 일들에 무엇을 하고 무엇을 말아야 할 것인가만 생각하는 게 후회 없는 삶을 사는 비법일 것이다. (중략)
결국, 태도의 문제이며, 과거보다는 현재에 관심을 두는 것이 삶의 질을 높인다는 것은 지금부터라도 다시 복습해 평생을 해야 할 일이다.

-다시 태어나면 당신과 결혼하지 않겠어 중에서-



결국, 다시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휴직


복직하도고 일주일 여의 대기 후 받은 업무는 CP 직 총괄, 북로그 관리와 더불어 홈페이지 개편에 따른 상황별 도서 추천 목록 및 맘에 닿는 글귀를 찾고, 카피 글을 작성하고, 검색 키워드를 입력하는 일이었다. 방대한 분량의 책을 실제로 봐야 하기에 혼자서는 할 수 없었고, 당연히 팀원의 협조가 필요했다. 내 일의 거의 대부분은 팀원의 협조가 있어야 했고, 팀원들은 도서 등록, 책 소개, 데이터 클렌징, 키워드 입력 등 본인의 업무는 그대로 인 채, MD의 일이자 내 일에 협조해야 한다니 불만이 머리끝까지 솟아 있었다. 같은 소속이라는 이유로 마케팅의 이곳저곳에서 팀원들의 협조를 요구했지만, 일만 쌓여가는 후배들은 함께 밥을 먹을 때마다, 회의를 할 때마다, 힘들다고 호소했다. 특히나 적은 급여이기에, 그에 합당한 일을 요구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는 출근하기가 겁이 났고, 외로웠다. 후배들과는 점점 감정의 골이 깊어졌고, 나는 어디에 자문을 구할 곳도, 동료도 없어 노동조합에 메일을 보내고 상담을 하기도 했다. 함께 동고동락하던 동기는 쌍둥이를 낳고 육아휴직 중이었고, 나는 혼자 땀을 뻘뻘 흘렸다. 최고참이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이 외롭고 괴로웠다.


5월에 복직했던 나는, 결국 11월에 재 휴직에 들어갔다. 얄팍하게도 지금의 어려움을 이직으로 피하려고 했다. 9월 즈음 국립중앙도서관의 모집 공고가 떴고, 느닷없이 이곳을 가야겠다며 공부를 시작했다. (누구나 가려는 곳은 싫다고 할 땐 언제고...뒷북이다-_-) 오랜만에 다시 하는 전공 공부가 꽤나 재미있었다. 그래서 시험 한 달 전, 공부에만 전념해야겠다며 다시 휴직했다. 물론, 회사에 욕먹을 각오는 백 번, 천 번 했고, 안 좋은 이미지는 차곡차곡 쌓였을 거다. 그 당시엔 휴직만이 내 도피처였다. 하여간에 휴직에 성공하여, 아침 9시부터 밤 9시-10시까지 3개월간 재미있게 공부했다. 남편도 어머님도 열심히 하는 나를 적극 지원해 주었고, 혹시나 3개월 만에 붙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지만, 역시나 3개월의 공부 가지고는 턱도 없는 일이었다. 맥없이 떨어졌고, 때마침 둘째도 덜컥 생겨버려, 산전휴직과 육아휴직을 이어갔다.


정말로 재취업을 하고 싶었다면, 3개월만 공부했으랴. 몇 년을 준비해서 가는 곳인데, 나는 겨우 3개월 공부하고 포기해 버린 건, 나의 미래가 불투명해서였다. 남편의 직업상 나는 언제 그만둬야 할 상황이 올지 몰랐다. 내가 1-2년 혹은 2-3년 공부해서 입사한들, 얼마나 더 일할 수 있으며, 급여도 대단하게 차이가 날 것 같지도 않았다. 또, 공부한다고 아이들과 가족들과 함께할 시간을 줄이는 것도 마땅치 않았다. 여러 이유로, 공부는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했다. 내가 결심을 했다기보다는, 선택지가 없었다. 대체로 나의 의지로 어떤 것으로 이루고 나아가기보다는, 상황에 맡긴 채로 자연스러운 선택을 하는, 내가 여태껏 고수해 온 삶의 태도에 따른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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