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까지 이어진 육아휴직

by 수박씨

조기 복직했던 첫째 때와는 달리, 두 번째 휴직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둘 째의 출산 후에는 집안에 하루 종일 있어도 전혀 답답하지 않았고, 내가 줄 수 있을 때까지 모유수유도 제법 했다. 첫째는 한 달 하고 포기했던 거에 비해, 9개월의 모유수유는 상당한 발전이었다. 동네 엄마들과도 친분이 생겼다. 둘째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어린이집에 애들을 보내고 엄마들끼리 수다의 장이 벌어졌다. 쇼핑을 하기도 하고, 누군가에 집에 둘러앉아 티타임을 즐겼다. 아이의 하원 시간은 참 빨리도 왔다.


운동선수에게는 루틴이 있다는데, 엄마들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들마다 차이가 있지만, 나의 경우 아이를 등원시키고 후다닥 집에 와서 청소하고 저녁거리 만들어 (혹은 생각해) 놓기, 그리고 엄마들과 상봉하기, 가 그 당시 루틴이었다. 해도 해도 끊이지 않는 수다는 힐링과 해방의 시간이었다. 남편의 귀가가 늦는다거나 하면 저녁까지 공동육아를 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성격도 직업도 살아온 환경도 다 다른 엄마들인데, 아이라는 공통점 하나로 자신의 깊은 이야기들까지 거리낌 없이 했다.


둘째가 태어나도 루틴은 계속되었다. 아이를 늘 데리고 다녔다는 것 외에는 다를 게 없었다. 둘째도 돌이 지나 첫째와 같은 어린이집에 들어갈 수 있어, 드디어 자유를 얻었다고 생각했을 때, 자유는 커녕 셋째가 입성했다. 아주 마음에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계획했던 것도 아니었고, 생각보다도 너무 빠르게 셋째의 소식을 마주한 터라 눈물이 났다. 두 아이의 육아와 살림만으로도 충분히 벅찼다. 앞으로 셋을 어떻게 키워야 하나, 부주의한 내 탓도 해보고, 생각 없는 남편 탓도 해봤으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가장 먼저 엄마에게 소식을 알렸더니, 정 안 되겠으면 병원에 빨리 가보라고 했다. 아이를 지우라는 얘기였다. 어떻게 생긴 생명을 나 스스로 지운단 말인가. 절대 안 될 일이었다. 일을 하고 있는 엄마가 도와줄 수 없기에 하는 얘기일 테지만, ‘할 수 있다, 도와주겠다’라는 응원을 듣고 싶었다. 이 모든 일의 원흉인 남편에게는 더욱 화가 났지만, 그래도 귀한 생명 주신 것에 감사하며, 마음을 추슬렀다.


막내는 뱃속에서 쑥쑥 자랐고, 불러오는 배를 부여잡고 아이 둘을 케어했다. 어느 때는 둘째의 예방접종을 제 때에 못 맞춰 몰아서 맞춰야 했는데, 남편이 접종하러 병원에 가니 의사가 그랬단다. ‘엄마는 뭐하시는 분이세요?’라고. 그냥 좀 바쁘고 정신없다, 정도로 했었는데, 누군가 ‘아휴~힘들죠?’라고 한 마디 위로해주거나, 등을 토닥여줄 때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 있었다.


드디어,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가족계획이 끝나고 완전체가 되었다. 남편의 동생 가족도 아이가 연연생으로 셋이어서, 두 집이 매년 번갈아가며 백일잔치, 돌잔치를 하며, 연이은 파티를 했다. 나의 삼십대는 딱 두 마디로 축약할 수 있었다. 결혼과 출산.


아이를 키우는 건 누구나 알듯 녹록지 않았다. 첫째 때는 예민한 엄마 모드로 오로지 육아책에 의존했다. 어른들 말도 잘 듣지 않고, 책에 목숨 걸었다. 책대로 되지 않으면 혼자 우울해하고 힘들어하길 반복했고, 책대로 따라주지 않는 식구들에게도 예민하게 굴었다. 그놈의 먹기-놀기-자기 패턴을 만든다거나, 누워서 재우기 등 엄마가 편해지는 육아법에 올인했는데, 이상하게 나만 더 피로해졌다.


둘째 때부터는 육아서를 거의 안본 것 같다. 볼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첫아이와 놀아야 하기 때문에 둘째는 배고프다고하면 젖을 꺼내고, 쉬나 똥을 쌌다고 울어제끼면 기저귀를 가는 식이었다. 셋째는 아예 어머님의 손에 의지했다.


그렇게 신생아의 시간을 정신없이 보내고 나니 복직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구원자, 어머님


아이가 셋이나 되는데 굳이 회사를 나가야 할까? 첫 아이 때도 고민하는 바였지만, 셋째에는 더 큰 고민이 되었다. 그래도 도와주실 분이 계시니, 사회생활을 이어가는 것이 맞다고 우리 부부는 의견을 모았다. 어머님은 첫째 복귀 때부터 지금까지 아이들의 등하원과 살림을 맡아주고 계신다. 어머님이 안계셨다면 연연년생의 세 아이를 둔 나는, 복직이라는 꿈을 꾸지 못했을 것이다. 막내가 돌이 될 무렵, 이번에도 어머님의 도움을 힘입어 회사로의 복귀를 희망했다. 첫째 때는 생전 처음 만나보는 육아의 세계에 놀라, 허둥지둥 복귀를 희망했지만, 셋째 때의 복귀는, 자라는 아이들의 교육비와 턱없이 오르는 집값으로 더이상 집에만 있을 수는 없어서였다.


문제는 어디로 복귀하는가 였다. 반은 퇴사하고 (그 중 내 동기도 포함이다. 복귀 시점에 자리가 매장밖에 없다는 소식에, 쌍둥이를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주말근무를 할 수 없어 퇴사하게 되었다.) 반은 일반직으로 전환되어 다른 팀으로 흡수되었고, 아직 전문직인 나는 일반직으로 바뀐 이전의 부서로는 갈 수 없었다. 선택지는 물류, 고객상담, 매장의 세 가지가 있었으나, 물류는 자리가 없었고, 매장은 주말근무가 있었다. 어린이집도 안 가는 주말에는 남편도 주말 근무를 하기 때문에, 어머님 혼자 아이 셋을 볼 수는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고객상담팀 밖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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