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복직 부서는 ‘고객센터’입니다.

by 수박씨

고객상담팀에도 지원부서와 상담부서가 있다. 설마 고객센터에서 진짜로 상담을 하라고 하겠어,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인사팀에 직접 상담을 하지 않는 ‘지원부서’의 공석을 물으니, 당연히 없고 앞으로도 지원부서의 자리가 나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래, 얼마간 상담부서에 있으면 다시 다른 부서로 보내 주겠지. 설마 여기에 계속 있게 하진 않겠지, 라는 나 혼자의 ‘설마 기대감’으로 고객센터 인바운드 상담팀으로 복귀했다.


입사 후 한 달은 신입 교육이었다. 2주간은 이론교육이고 2주는 동석 청취와 실제 전화를 받아보는 것으로 진행된다. 일단은 엄청난 프린트로 기가 죽었다. 결제 관련, 회사 구석구석의 부서에서 벌어지는 이벤트들, 사업들이 프린트 안에 다 있었다. 나 외에 신입은 두 명이었는데, 정규직 직장으로는 거의 처음인 20대 친구들이었다.


교육받을 때는 분량이 많아도 즐겁기만 했다. 끝까지 함께 할 것처럼, 한 명의 이탈자 없이 성실하게 교육을 받았다. 특히 나는 몇 년 만에 첫 출근하여 받는 교육시간이 힐링이었다. 출근하기 위해 나를 들여다보고 가꾸는 시간도 좋았고, 점심시간에 20대의 친구들과 맛집을 탐방하며, 진짜 신입이 된 듯 신이 났다. 하지만 그 친구들과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안타깝게도 교육 후 실무에 투입된 건 나 혼자다.


한 명은 교육 때도 가장 먼저 오고, 복습까지 해오는 모범생 스타일이었는데, 교육 중 퇴사를 두 번 번복했다. 실제로 전화를 받아보니 업무 숙지가 덜 된 상태에서 전화를 받는 게 부담스럽다고 했다. 나머지 한 명은 교육이 끝날 때까지는 무리 없이 잘 해내고 있었으나, 실무 투입 첫날 퇴사 의사를 밝혔다. 앞으로도 계속 전화만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자기가 할 일은 아닌 거 같다는 이유였다. 한 달간 같이 교육받은 동기고, 복직하고 첫 동료라 맘을 많이 준 탓인지 아쉬움이 많았다.


나는 의외로 적성에 맞는 걸까 싶었다. 회사에 그래도 10년여 있었기에 알고 있는 서비스가 얼추 반 이상은 됐고, 프로그램도 많이 쓰진 않았지만 익숙한 화면이기에 어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나 혼자 일하던걸 고객한테 알려줄 수 있다는 '희열'같은 것도 든 것 같다. 학과에서 배웠던 도서 상담서비스, 검색 따위의 것들을 드디어 써먹어 보는구나 싶었다.


8명의 소수집단의 최고참으로 있던 때에 비해, 60명의 집단의 말단으로 다시 시작하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내가 실수하더라도 누군가가 해결해줄 수 있는 방패가 있다는 것이 안도가 되었다. 그 나름의 체계와 질서가 뚜렷하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정시 퇴근한다는 것, 잘만하면 최고 30만 원의 인센티브가 있다는 건 최고의 장점이었다.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


이전 부서에서의 흑역사 때문인지, 신입으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것에 설레었다. 신입직원은 열정만 있어도 충분하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면 되고, 모르면 물어볼 곳이 있으니까. 부모에게 책임이 뒤따르는 것처럼, 회사에서의 관리자는 그에 따른 책임 또한 당연한 것이다. 회사의 어른이 되는 거니까.


이전 부서에는 준비가 되지 않은 때에 덜컥 관리자가 되어버려 갈팡질팡 했었다. 결정해야 할 때 어영부영하고, 책임을 져야 할 때 적절히 이끌지 못했던 것에 대해 자책도 많이 했다. 그것이 내 깜냥이라고. 조직생활은 나와 맞지 않는다고. 나의 선배들, 우리 팀에 불시착했다 사라져 버린 조직장들이 생각났다. 우리 조직장은 왜 저렇게밖에 못할까, 무심코 내뱉었던 말들이 나에게 다시 돌아오는 날들이었다.


이제, 다시 신입이 되었으니, 고객센터의 선배들에게, 관리자에게 아낌없는 응원의 박수를 보낼 차례다.


충분히 잘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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