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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박씨 May 28. 2024

모닝에서 카니발 운전 도전기

면허 딴 지는 어언 20년. 졸업하자마자 가장 먼저 도전한 게 운전면허 시험이었다. 

스무 살의 나는 가진 돈이 없었고, 부모님도 지원해 줄 여력이 없었다.

그 당시 합격할 때까지 가르쳐 주는 학원은 100만 원가량의 비용이 들었고, 단기속성 같은 학원은 30만 원가량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단기속성은 당연히 합격보장 같은 조건은 없었다. 

돈이 없던 나는 30만 원 단기속성으로 1종 면허 시험 준비를 했다. 

그리고는 기능시험에서 코스마다 떨어져, 응시원서에 불합격 딱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아빠는 시험을 치고 돌아오는 내 표정을 보고는 한껏 놀리는 표정과 동시에 격려와 응원을 해줬었다.

아빠도 엄마도 여섯 살 차이 나는 언니도 면허 소지자가 없었기 때문에, 아빠는 내심 대견해했던 것 같다.

비록 기능 11번, 주행 3번의 탈락의 고배를 마셨지만, 합격증을 따내지 않았던가!

어찌나 기뻤는지, 온 집안이 축제였었다.

그러나 운전면허 학원 등록비도 없는 집이었는데, 차는 말해 무엇하리. 결혼할 때까지 면허는 장롱 속에 고이 모셔 두고, 무사고 갱신까지 했더랬다.


결혼 후, 남편은 무옵션의 모닝 차량을 소지하고 있었다. 나는 그 차로 새롭게 운전인생을 시작했다. 

주차할 때 외제차며 국내차며 가리지 않고 긁고 박았지만, 다행히 좋은 차주들을 만나 그냥 넘어가 주기도 하시고, 정직한 사고처리로 마무리되는 경미한 사고들 뿐이었다. 

아이를 낳으면 바꾼다던 모닝은 첫 아이를 지나 둘째를 낳고, 셋째가 여섯 살이 될 때까지 우리 집 패밀리차였다. 주차며, 할인이며, 모닝처럼 편한 차가 없었지만, 외관이 폭삭 늙어 보내줘야 할 때가 됐음을 알리고 있었다. 보는 사람마다 "이게 패밀리카예요?" "바꾸긴 해야겠다~"라는 걱정어린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남편은 거의 모닝을 이용할 일이 없었고, 나 혼자 아이 셋을 데리고, 아이들이 커서는 아이들 친구들까지 모닝이 북적북적 잘도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도로에서 차가 멈추는 사건이 일어났다. 우리 아이 셋 포함 아들 친구까지 애들만 4명이 탔을 때였다. 에어컨도 고장난데다 날이 푹푹 쪄댔다. 아무리 시동을 걸어도 시동은 요지부동이었고, 아이들은 더워 죽을 것 같다고 아우성이었다. 뒤차는 빵빵대고, 쌍욕을 하며 모닝을 지나쳐갔다. 결국 우리들은 렉카에 실려가는 잊지못할 추억을 남겼다.


그 사건 이후, 남편도 나도 차를 바꿔야겠다고 결심했다. 무엇보다도 안전때문이었다.

우리 부부가 결혼한 지 때마침 10주년이 되는 해였다.

처음에는 중고를 검색하기 시작했다가 다시 신차를 봤다가 다시 중고로 다시 신차로.....

한 달 여 고민하다가 카니발 신차를 구매하게 되었다.


모닝은 그 자리에서 팔고 돌아왔다.

내가 몰 수 있는 차는 카니발뿐이었는데, 연습할 시간이 없었다.

내일 바로 서울대공원에 약속이 잡혀 있었다.

내가 운전하는 차는 안 탄다는 남편의 철칙으로, 남편은 차 밖에서, 나는 안에서 전화로 이야기하며 주차만 속성으로 배웠다. 그리고 바로 실전에 돌입했다.


그런데 웬걸, 모닝을 몰 때와 별 차이가 없었다!

물론 주차와 커브를 돌 때면 바짝 긴장하긴 했지만, 모닝으로 갈고닦은 10년이 헛되지 않았구나 싶었다.

생각보다 잘.했.다!


연수도 안 해주고, 운전 다 똑같다며 끌고 나가보라던 남편이 야속했건만,

서울대공원에 다녀오고 나니 자신감이 치솟았다.

다음 날 비운전도 해보고, 수영장 지하주차장도 가보고, 학교 출근도 하고,

내가 한 완벽 주차를 보고 또 보며 뿌듯함을 만끽했다.


그 옛날 돈도 없어 면허도 겨우 딴 나였는데,

20년 뒤 나는 이렇게 큰 차도 당당히 몰 수 있구나!

천천히, 내 속도대로 하면 된다.

언제든 해낸다는 믿음이 중요한 것이다.


아이들에게도 재촉하지 말아야지.

응원과 격려만 해줘야지.

할 수 있다는 믿음만 심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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