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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mgom Mar 14. 2023

오늘도 아쿠아로빅을 합니다

은빛 물살을 가르며



은빛 물살을 가르며,
오늘도 아쿠아로빅을 합니다


‘스트레스는 수용성’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엄마는 초등학교 4~5학년 여름방학에 YMCA수영장을 보냈고, 거기서 늘 나는 자유형-배영까지만 배워야 했다. 배영 이상을 배우려고만 하면, 여름방학은 끝나곤 했다. 평영, 접영에 대한 갈망을 줄곧 지니고 있다가 바쁜 대학생활 짬 내어 6시 새벽 수영을 등록하면 기부천사가 되곤 했다. 반을 등록하면 항상 평영이 아닌, 자유형과 배영부터 가르치기 시작했다. 늘 나는 출발점에 다시 서서, 잘하는 걸 하다 돌아오는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한 달마다 돌아오는, 그리고 열흘 남짓으로 긴 생리기간이 늘 수영에 대한 열망을 꺾곤 했다. 비로소 평영을 배운 것은 첫째를 임신했을 때였다. 임신을 하면 생리를 안하니 배움도 끊김이 없었다. 평영을 배우자마자, 임신 때는 임산부에게 좋지 않아 맛보기만 했던 접영의 세계를 알았고, 아이를 낳고 몸을 풀은 후에는 접영과 스타트를 배웠다. 입덧을 심하게 했어도 매일 퇴근 후 7시 수영을 하면서 체력이 있어 임신성 당뇨 없이 임신 기간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다.
수영은 한 단계 한 단계 쌓아가는 재미가 있었고, 나는 그런 수영을 하는 것을 좋아했다. 수영의 세계는 나와 잘 맞았지만, 스타트를 잘 뛰기 시작하면서부터 자유형을 아무리 돌아도 숨이 덜 차기 시작할 때부터 빠르게 시드는 꽃 마냥 흥미가 뚝 떨어졌다. 수영을 그만뒀고, 살이 10kg 이상 급속도로 불어났으며, 체력은 하루가 다르게 떨어졌다.

병이 찾아왔다.

170cm, 85kg. 임신했을 때만 해도 애 낳기 직전이 83kg였는데, 몸무게는 급속도로 상승하더니 결국 만삭의 몸무게를 넘었다. 아이가 나간 자리 그대로 지방이 들어찬 것이다. 직장생활과 스트레스가 만든 결과였다. 그 당시 직장에서는 인간관계에 환멸을 느낄 정도로 시달리고 있었다. 아이를 낳은 이후로 만 4년이 지났고, 둘째를 임신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유산했다. 건강하지 않은 몸에는 유산 이후 이상한 병이 곧이어 찾아왔다.

‘만성 육아종성 유선염’

대학병원에서는 이 병이 희귀하지만, 유방외과에서는 자주 보는 그런 병이라고 했다. 원인을 특정할 순 없으나 주로 30대 여성, 모유수유 경험이 있는 사람들 중에 체내에 남아있는 모유를 자신의 몸이 공격하면서 생기는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했다. 물론 수유 없이도 이 병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었다. 내 경우에는 첫째에게 25개월의 모유수유를 했고, 2년 내내 ‘젖을 잘 돌게 하기 위해’라는 핑계 삼아 과식을 주로 했으며 운동도 하지 않았다. 이 병의 특이점은 가슴 안으로 고름이 차오르지만, 관련 약도 없으며 증상 완화를 위해서는 스테로이드를 먹거나 주사 맞는 것뿐이다. 약 대신 국소 주사를 택했고, 당장 식단을 바꿔야 했다. 병원에서는 흔해도 밖에서는 흔한 병이 아니라 네이버 밴드에 알음알음 모두가 정보를 모아다가 둥지 쌓듯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당장 낫는 방법은 없었다. ‘만성’이라는 말이 참 미운 순간이었다. 느릿느릿 다가와서 느릿느릿 가는 병. 병의 원인도 느릿느릿 쌓아갔으니 당연한 업보이건만, 언제 낫는 줄 알 수 없고 계속 투병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밴드 안의 사람들은 이 병을 뭘 해서 낫는 것이 아니라, 안 해야 낫는다고 의견을 모았다. 유제품을 먹지 않고, 고기를 먹지 않고, 밀가루를 먹지 않고, 과식을 하지 않고.
‘그럼 뭘 먹으라는 거지?’
피자와 닭갈비, 마라탕을 사랑하는 내게 날벼락같은 일이었다. 한심한 나는 덜하기보단 쉬운 더하기를 택했다 흰민들레즙도 먹어보고 느릅나무도 달여 먹어보고. 정작 의사 선생님은 식단을 하라고 하기보다는 ‘알코올’만 먹지 말라고 했는데, 내 소심한 반항은 한심했다.
‘맥주 한 잔도 안 되나요?’
‘맥주엔 알코올이 없나요?’
‘네...’
한 달에 한번 주기로 가는 병원은 고름이 차오른 가슴이 너무 아파서 3주 간격으로 가야 할 정도였고, 살만해졌다 싶으면 약간의 충격만 받아도 도로아미타불로 고름이 차오르곤 했다. 만삭 때 엎드려 자는 것이 소망이었던 것처럼, 가슴이 너무 아파 엎드려 잘 수가 없었다. 기나긴 싸움을 언제 끝낼 수 있을까. 막막하고 화가 났다. 퇴사 후 둘째 아이를 계획했는데 내 몸은 아직 때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심각하게 아플 때는 걷기나 뛰기마저도 할 수 없었다. 가슴이 흔들리는 것조차 고름이 유발되기 때문이었다. 수영도 참으라고 했다. 그저 차와 물을 잔뜩 마시며 허기를 줄이고 식사량을 줄이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때 딱 한번 체험 수업을 해봤던 아쿠아로빅이 떠올랐다. 물속에서 하는 웨이트.


수영하는 거북이는 빠르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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