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니지노마츠바라의 역사와 이모저모
이제 일본으로 돌아갈 차례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사이에는 좁은 바다 대한해협이 가로놓여있다. 지도를 펼쳐놓고 부산에서 5시 방향으로 일직선을 주욱 그으면, 니지노마츠바라가 있는 가라츠에 닿는다. 가라츠 앞에 놓인 바다의 이름은 현해탄(玄海灘), ‘검은색을 띠는 얕은 바다’다. ‘검은 조류’라는 뜻의 쿠로시오(黑潮) 해류가 흐르는 바다이므로 바다의 이름에 ‘검을 현’ 자가 붙었다.
현해탄 바닷가에는 제주도처럼 검은 현무암이 많다. 이래저래 현해탄이라는 이름은 잘 들어맞는 셈이다. 현무암질 지형 덕택에 제주와 상당히 유사한 자연경관을 종종 찾아볼 수 있는데, 그중에는 나나츠가마(七ツ釜)라고 하는 해식동굴도 있다. 7개의 동굴이 제주에서도 볼 수 있는 오각지고 육각진 주상절리 옆으로 늘어서 있다. 해식, 즉 바다의 침식작용으로 생긴 이 동굴 중에는 안길이가 110m나 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이런 깊은 동굴을 여러 개 뚫을 정도로 현해탄의 힘은 강하다. 특히 겨울에는 북서풍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사납고 거센 파도가 휘몰아친다.
이런 강한 바다를 앞둔 사람들의 삶은 어땠을까. 니지노마츠바라가 무려 400년 전에 만들어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곳뿐만이 아니다. 규슈의 북쪽 해안에는 산리마츠바라, 고가노마츠바라, 이키노마츠바라 등 오랜 역사를 지닌 수많은 마츠바라(송원)가 있어, 현해탄의 위력을 실감하게 한다. 현해국정공원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이 솔밭들은 지난 오랜 세월 동안 바닷바람으로부터 민생을 보호해 왔다.
니지노마츠바라는 일본의 많은 송원 중에서도 유일하게 특별 명승지로 지정됐을 정도로 그 위상이 높다. 아름다운 무지개 형상의 백사청송을 자랑하는 이곳의 역사는 에도시대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가라츠 번(藩)의 번주였던 데라자와 히로타카(寺沢広高)가 논을 개간하기 위해 솔밭을 조성하라 명한 것이 시초다. 바닷바람과 모래, 해일 등으로부터 논을 보호할 장치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 솔밭은 번의 비호 아래 벌목이 엄격히 제한되었다. 땔감으로 쓸 낙엽조차도 주워가지 못하게 했으니, 얼마나 각별히 관리했는지를 알 수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데라자와 히로타카는 이곳을 지키기 위해 헛소문을 퍼뜨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솔밭 안에 자신이 각별히 아끼는 7그루의 금솔이 있다고 하면서, 그게 어떤 나무인지는 지목하지 않은 것이다. 주민들이 소나무들을 함부로 다루지 못하게 하기 위한 계책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니지노마츠바라가 보유한 타이틀은 화려하다. 일본 3대 송림이자 일본의 자연 100선 중 하나이고, 명승 100선에도 이름을 올렸다. 2001년이 되고 20세기가 저물면서, NHK에서는 21세기에 남기고 싶은 일본의 풍경을 100위까지 선정해 발표한 바 있다. 니지노마츠바라는 후지산, 벳부 온천 등 일본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장소들의 뒤를 이어 5위를 차지했다. 일본인들이 자랑스러워하고 아끼는 풍경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오른 것이다.
숲 안에서는 숲이 보이지 않는다. 나무만 보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니지노마츠바라의 아름다운 풍경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싶다면, 니지노마츠바라로 가면 안 된다. 답은 니지노마츠바라의 남쪽 배후에 있다. 무지개 솔밭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멋진 전망대, 바로 카가미산(鏡山)이다.
빙글빙글 돌아 오르는 도로를 따라 차를 달리다 보면, 해발 284m 카가미산 정상에 도달한다. 봄이면 벚꽃이 만발한 길이다. 주차장에서 전망대까지 가는 도보 산책로에는 초록빛의 호수와 철쭉 동산, 넓은 잔디밭이 있어 소풍 나온 듯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그렇게 십여 분 걷다 보면 탁 트인 시야의 전망대가 눈앞에 등장한다.
땅 위에 펼쳐진 길이 4.5km의 초록빛 무지개를 그대로 내려다볼 수 있도록, 전망대의 난간은 투명한 유리로 되어있다. 거대한 나무 바닥으로 이루어진 데크는 앞으로 전진하듯 튀어나와있어 니지노마츠바라와의 거리를 좁혀준다. 데크 위에 서면 비로소 현해탄의 위력적인 칼바람을 실감할 수 있다. 거기에 산바람도 더해져 무섭기까지 하다. 심지어 발아래가 낭떠러지이기 때문에 유리 난간 가까이 다가가려면 발이 후들거릴 정도로 떨려온다. 무서움을 극복하고(?) 내려다보는 니지노마츠바라는 과연 장관이다.
카가미산을 내려와 이제는 솔숲 안으로 직접 들어가 본다. 일본의 길 100선에 뽑힌 아름다운 도로를 달려보기 위해서다. 국도 202호선은 니지노마츠바라를 동서로 관통한다. 양옆으로 우거진 소나무들이 길 위로 가지를 뻗어 자연의 터널을 만들었다. 사계절 청량한 푸른빛의 솔잎들이 도로를 초록빛으로 감싼다.
이 길을 달리는 건 눈만 즐거운 일이 아니다. 입도 심심치 않다. 숲 속의 햄버거 트럭, 가라츠 버거가 있기 때문이다. 숲길 중간쯤에 위치한 이 조그마한 트럭은 사실 꽤나 이름이 높다. 가라츠를 찾는 관광객들이 빼놓지 않고 찾는 명소이자, 니지노마츠바라가 품고 있는 숨은 재밋거리이기도 하다.
고토치구루메(ご当地グルメ)라는 말이 있다. 본고장이라는 뜻의 고토치에, 미식을 뜻하는 구루메를 합친 말이다. 이는 관광객을 유치하고자 향토성을 가미해 고안한 지역 명물 요리를 뜻하는데, 가라츠 버거는 이런 고토치구루메 중 성공적인 케이스에 속한다. 일본 전국 고토치구루메 대회에서 상위권에 들며 이름을 알린 게 주효했다.
가라츠 버거 트럭 옆에는 주차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여기에 주차를 한 뒤, 버거 트럭으로 가서 주문을 한다. 다시 차 안으로 돌아가 기다리고 있으면, 직원이 주문한 음식을 차로 직접 가져다준다. 한국에도 옛날 돈가스, 옛날 짜장면 등을 찾는 손님들이 있듯, 가라츠 버거는 옛날 스타일 햄버거를 지향한다. 눈으로는 창밖의 푸른 숲을 보면서, 입으로는 추억의 맛을 삼킨다.
가라츠 버거는 맛도 맛이지만, 이런 독특한 요소들 때문에 더욱 인기를 누린다. 햄버거 겉포장에도 사소하지만 독특한 특징을 부여했다. 비닐봉지 양쪽 가장자리를 귀가 달린 것처럼 앙증맞게 묶어놓은 것이다. 먹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굳이 여기에 올 필요가 없다. 숲 속의 버거 트럭에서 맛보는 이런 소소한 재미야말로 변방의 가라츠 버거가 가진 자산이다. 가라츠 시내나 규슈 최대 도시인 후쿠오카에도 분점이 있지만, 오기도 불편한 이곳을 손님들이 일부러 찾아오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Mila의 소나무 이야기 - ①
Mila의 소나무 이야기 - 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