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조선의 소나무를 생각하다
경남 하동은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화개장터로도,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으로도 유명하다. 화개장터에 대한 첫 기록은 1770년대, 토지의 시간적 배경은 1897년부터이니 참 오랜 역사다. 그런데 그 화개장터나 최참판댁보다도 먼저 하동에 뿌리내려,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는 곳이 있다. 27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백사청송, 하동 송림이 바로 그곳이다.
섬진강 하류에 위치한 이 아름다운 솔밭은 광양만의 바닷바람과 섬진강변의 모래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 역할을 한다. 영조 21년(1745년)에 도호부사 전청상의 명으로 곰솔 1,500여 그루를 심은 것이 시초인데, 바람막이 역할은 물론이고 섬진강의 범람에 따른 수해를 예방하는 데에도 그 실효성이 컸다.
강원도에도 역사 깊은 솔숲이 많다. 특히 강릉 초당동의 솔밭은 율곡 이이가 지은 글 「호송설護松說)」로 더욱 그 이름이 높다. 호송설은 소나무를 잘 가꾸라는 교훈이 담긴 글인데, 이는 이이가 이웃 김열의 청을 받고 쓴 것이다. 초당동 솔밭의 근간은 김열의 선친이 심은 나무들로, 해안방풍림 구실을 하며 마을을 보호했다. 이 솔숲을 통해 선조를 기렸던 김열은 혹시나 후손들이 그 의미를 모른 채 나무들을 베어버리는 불상사가 생길까 염려하여 율곡 이이에게 글을 부탁했던 것이다.
조선 시대의 여러 문헌들은 이처럼 방풍 및 방재 구실을 하는 보안림이 조선의 강변과 해안 곳곳에 조성되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자연적으로 발생된 솔숲과는 다른 인공림인 것이다. 나무를 활용한 치수(治水) 방재 사업의 역사가 얼마나 유구한지 알 수 있다. 소나무는 모진 환경에서도 꿋꿋이 견디는 그 강인함 덕택에 더욱 각별히 애용되었다.
소나무가 조선인들의 사랑을 받은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다. 풍수해를 막는 것 외에도 소나무의 쓰임새는 다양했다. 흔히 소 한 마리에서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을 한다. 이 말은 소나무에 적용해도 어색함이 없다. 조상들은 소나무에서 나는 것이라면 뭐가 됐든 버리는 일 없이 살뜰히 활용했다.
일단 굶주린 백성들에게 소나무는 보릿고개를 견디는 한 방편이었다. 솔잎을 갈아 죽을 쑤고, 속껍질인 백피를 씹어 먹으며 기근을 버텼다. 송편, 송기떡 등의 음식에도 솔잎이나 백피가 사용되었다. 꽃가루인 송화가루도 차나 다식으로 만들어져 백성들의 입을 달랬다.
소나무 뿌리에서는 때때로 귀한 물건이 발견되기도 한다. 소나무의 귀(松耳)라는 이름을 가진 송이버섯이 바로 그것이다. 일찍이 허준은 동의보감에서 송이버섯을 일컬어 ‘나무에서 나는 버섯 중 으뜸’이라 적었다. 소나무 특유의 청쾌한 향기와 진한 흙냄새를 아울러 품은 송이버섯은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명산물로 이웃나라인 중국, 일본에까지 그 이름이 높았다.
소나무의 몸통은 어떻게 쓰였을까. 도자기, 옹기를 굽거나 지붕에 올릴 기와를 만들 때 소나무는 반드시 필요했다. 어떤 나무보다도 소나무를 땔감으로 하여 그릇이나 기와를 구웠을 때 가장 우수한 품질의 제품이 나왔던 것이다. 화력이 강하고 오래 타는 소나무의 성질 덕택이었다. 또한 소나무는 한반도 전역에 가장 널리 분포하는 나무였던 만큼 목조건물의 건축재로도 즐겨 사용되었다.
무엇보다도 소나무의 진가는 국난의 시기에 그 어느 때보다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연이어 벌어진 해전을 승리로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이다. 사람이 아닌 나무가 전쟁에서 공을 세우다니 대관절 무슨 엉뚱한 소리냐고? 바로 거북선 이야기다.
일본의 병선에는 주로 삼나무가 사용됐다. 소나무가 흔한 한국과는 달리 일본에는 삼나무나 녹나무가 많기 때문이다. 삼나무는 무르고 약하다. 이에 반해 소나무는 견고하고 치밀하며 단단한 특성을 갖는다. 소나무로 건조된 거북선은 해상에서 포격을 맞거나 접근전에 몰려도 건재했다. 특히 배와 배가 부딪칠 경우 일본의 삼나무 배는 조선의 소나무 배에 여지없이 밀리고 파손되었다. 여기에 이순신과 같은 명장의 지휘가 더해져 조선은 왜의 침략을 격퇴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소나무 병선의 위력을 실감한 일본은 이후에도 틈만 나면 조선의 배를 탈취하려 하는 등 눈독을 들이며 조선 수군의 골치를 썩였다.
애국가 2절의 주인공은 소나무다.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에도 불변하는 그 소나무는 곧 한국인의 모습과 기상을 투영한 상징물이다. 우리 민족의 생활상 곳곳에 깃든 소나무의 흔적을 짚어보고 있노라면 그러한 위상에 납득이 간다. 우리말 ‘솔’은 ‘으뜸’이라는 뜻을 갖는다. 으뜸이라 이름 붙은 나무라니, 조상들이 소나무를 얼마나 아끼고 높이 샀는지 알 수 있다.
일본 사가현에 있는 솔밭, 니지노마츠바라를 다녀오면서 생각해두었던 '소나무'에 대한 글을 연재합니다. 이번 연재를 통해 한국과 일본의 소나무를 함께 살펴볼 생각입니다. 소나무 속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웅숭깊게 잘 담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Mila의 소나무 이야기 - 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