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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la May 27. 2016

패자 만드는 사회

왜 우리 사회는 실패에 가혹한가


#30 패자 만드는 사회: 
왜 우리 사회는 실패에 가혹한가



  내가 나온 대학교 부근에 꽤 큰 규모의 영어학원이 있다. 

세계 곳곳에 신도를 가진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곳으로, 영어권 국가의 신도들이 이곳의 원어민 강사로 일한다. 십 년여 전 대학생 때 나도 이 학원에 다녔다. 첫 시간엔 자기소개를 했다. 대부분의 수강생이 내 또래였고, 전공은 ○○이며 그와 관련한 직업인 △△이 꿈이다, 아직 결혼을 안 해서 아이는 없다는 식으로 소개를 했다. 모두가 말을 마치자, 강사 에이미는 두 가지 측면에서 놀랐다는 소감을 전했다. 첫째는 다들 출산과 결혼을 연관 지어서 말한다는 점에서, 둘째는 각자 장래 희망을 하나만 갖고 있다는 점에서 놀랐다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삼십 대 초반이며, 지금껏 스무 가지도 넘는 직업을 거쳐 왔다고 알려주었다. 한 가지 일을 평생토록 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말과 함께.


  그날 뒤통수 한 대를 가볍게 맞은 듯한 기분은 나만 느낀 게 아니었을 것이다. 한국사회 안에서 평균적인 교육을 받으며 자란 이라면 말이다. 학교에서 말하는 꿈이란 잘 때 꾸는 꿈 말고 ‘진로’를 뜻한다는 사실을 초등학교 입학하자마자 배웠다. 아직 십 대도 안 된 어린이들에게 진로가 뭐냐고 재촉한다. 요즘 중학생들은 진학할 고등학교 수준에 맞춰 친구를 사귄다고 한다. 자사고, 특목고 등 고등학교 때부터 이미 줄 세우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잠깐 한눈팔았다간, 단추 한번 잘못 끼웠다간 큰일 날 것 같다. 백세 시대라는데, 사회는 인생의 1/5도 채 살기 전에 서둘러 진로를 정하라고 성화다.


  모두가 조급한 이유는 뭘까. 사회가 실패에 관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50대의 맥도널드 배달원이 고객의 집에서 난동을 피워 화제가 됐다. 주문자인 30대 남성은 배달원이 욕설과 고성을 내지르는 모습을 촬영해 sns에 올렸고, 자신이 폭행당했다고 주장했다. 사실 관계는 이와 달랐다. 배달이 늦었다며 주문자가 배달원의 헬멧을 빼앗아 집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실랑이가 벌어진 것이다. 영상 속 배달원은 배달 한 건에 고작 400원 받는데 이렇게 모욕을 당한다며 울부짖었다. 실직과 생계의 어려움 속에 대학생 남매를 키우느라 배달이라는 막다른 길까지 내몰렸다는 얘기였다. 영상을 본 사람들은 주문자보다 배달원의 처지에 공감하고 안타까워했다. 실패도 재기도 오롯이 개인의 몫일 뿐인 한국사회의 비정함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각자도생의 사회 속에서는 그 모든 불안과 고통을 고스란히 혼자 감당해야 한다.



맥도날드 배달원이 사건 이후 주문자 측과 주고 받은 문자 메시지



  덴마크에는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이 있다. 실직했을 경우 2년까지 정부에서 기존 급여 수준의 실업보조금을 지급한다. 그래도 취업이 안 되면 될 때까지 보조금의 70%를 지원해준다. 이것은 품위와 직결된다. 어떤 상황에 처해도 인간적 품위를 잃지 않도록 보장해주는 것이다. 소득이 안정되니 선택의 자유가 생긴다. 현재의 일에 염증을 느끼고 다른 진로를 모색하고 싶을 때, 생계 걱정 없이 퇴사할 수 있다. 긴 인생, 평생 한 개의 직업이나 하나의 직장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우수한 인재만 우대하는 사회가 아닌, 구성원 전체를 끌어안는 사회이기에 이런 발상이 가능하다. 공자도 나이 사십은 되어야 유혹을 떨칠 수 있다지 않았는가. 열 살, 스무 살은 끊임없이 흔들려보고 실패해 봐야 할, 아직 자기 자신을 충분히 제대로 알기 어려운 나이다. 그 어린 나이에 남은 인생의 전부를 결정하라 내모는 사회는 얼마나 매정한가.


  1995년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노동의 종말’을 말했다. 그는 “2050년쯤이면 전통적 산업 부문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데 전체 성인 인구의 5%밖에 필요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봤다. 또한 2013년 옥스퍼드대 연구진은 47%의 직업이 자동화로 인해 20년 내에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이래도 인간의 가치를 기능적 측면에서만 판단할 것인가. 인간은 결국 기능 싸움에서 질 수밖에 없다. 사회(社會)는 모일 사, 모일 회, 두 글자가 모여 만들어진 말이다. 모여 더불어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곧 우리의 목적이자 지향점 아닐까. 인간이 지향해야 하는 바는 기능의 우수함을 다투는 경쟁이 아닌 것이다. 경쟁을 재촉해 구성원을 승자와 패자로 나누는 사회에 분노하자. 

두루 협력하고 서로 끌어안는 그것이 곧 우리가 만들어야 할 사회다.





*참고하거나 인용한 책

제레미 리프킨,『노동의 종말』, 민음사, 1996

오연호,『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오마이북, 2014

제현주,『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어크로스,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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