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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바라 May 26. 2023

스마트스토어를 접기로 했다.(3)

가구매를 만들어내다

https://brunch.co.kr/@barbara/39


https://brunch.co.kr/@barbara/41


그래, 할 수 있어. 다이소 가서 서류 봉투 사서, 편의점 가서 택배 부치고, 송장 번호 나온 거 입력하면 끝이야. 할 수 있어.


  어제부터 계속 송장번호를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며 불안해하고 있던 나를 다독였다.

아 참, 서류 봉투 입구도 무언가로 막아야 한다. 회사에 굴러다니는 스티커들을 서너 개 챙겼다. 스템플러를 가져갈까? 잠시 고민 했지만 그냥 스티커만 주머니에 넣어서 사무실을 나왔다.


길을 따라 가다보니, 다이소에 다다르기 전에 '오피스디포'가 먼저 나왔다. 오피스디포에 들어가서 서류봉투가 어디있는지 물었다. 종이 서류봉투가 10매에 2천 원이었다.


그 옆에는 두껍고 튼튼한 비닐로 만든 서류봉투가 한 개에 천 원이었다. 게다가 이 봉투는 입구에 똑딱이 단추도 달려있다. 내용물이 쉽게 빠질 것 같지도 않았다. 아주 완벽했다. 하지만 나는 어떤 서류봉투를 살 지 고민했다.


10매에 2천 원짜리인가, 1매에 천 원짜리인가?


지금 생각해보니 이 질문은 곧 내가 가구매를 앞으로 계속 만들 것인가, 이번으로 끝낼 것인가의 문제와 같았다. 나는 5분 넘게 고민을 하다 1개에 천 원짜리를 골랐다. 가구매를 이것으로 끝내야겠다,는 명확한 결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서류봉투 10매를 사서 친구들과 가족을 동원해 가구매 9건을 더 만들어낼 용기가 없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서류 봉투만 달랑 보내려던 처음 계획과 달리, 안에 뭔가를 넣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천 원짜리 껌을 한 통 샀다. 벌써 2천 원을 썼다.


지도 앱으로 편의점 택배가 있는 편의점을 검색했다. 큰 길로 쭉 내려가다가 좁은 골목길로 조금 올라가야했다. 1층 상가에 있는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택배 보내는 기계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저울 같이 생긴 기계에 택배 무게를 재고, 주소를 입력하고, 운송장이 출력되면 서류 봉투에 붙여서 택배함에 넣어놓고, 아무와도 마주치지 않고 편의점을 빠져나오려던 계획이 틀어진 것이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다 포기하고 싶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물러설 수는 없었기 때문에 마지막 남은 용기를 짜냈다.


  "편의점 택배 되나요?"

내가 어렵게 입을 떼자, 편의점 사장님으로 보이는 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거 보낼 거예요?"

   "이거요."

   "그....포장이"

사장님이 내가 들고 있늗 서류봉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서류봉투에 똑딱이 단추가 달려있긴 했지만 완벽하게 밀봉이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택배 기사님에게 인수 거절을 당할 수 있을 터였다.


  "아이코. 모르고 포장을 안 했네. 안녕히 계세요."

기회는 이 때다 싶어 그 자리를 도망치듯 빠져나가려고 하는데, 등 뒤로 사장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일단 가져와봐요."

나는 문을 열고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다. 식은 땀이 흘렀다. 가구매고 뭐고 그냥 도망 가고 싶었다.


    "안에 뭐예요?"

    "꺼...껌이요."

    "껌이요?"

    "네에..."


얼마나 이상해보였을까? 어디서나 살 수 있는 손바닥 반만 한 껌 한 통을 택배로 부치다니. 나는 뒤에 뭔가 부연 설명을 하고 싶었지만, 다행히 그 어떤 애드리브도 떠오르지 않아 그냥 입을 닫았다. 다행히도 사장님은 별 말 없이 굵은 스카치 테이프를 꺼내서 봉투 입구에 튼튼하게 붙여주셨다. 나는 운송장 종이를 받아서 보내는 사람에 나와 우리 집을, 받는 사람에 남편과 남편 회사 주소를 썼다.


됐다. 이제 운송장을 사장님께 드리고 나오면 끝이다. 운송장을 드리면서 택배비를 결제했다.

드디어 편의점을 나왔다.


영수증을 보니. 세상에. 4천 원이었다.


이상하다? 분명 네이버에서 편의점 택배 예약할 때는 3,200원으로 봤는데?

네이버에서 편의점 택배를 검색하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4,000원이었다. 아까 처음 검색했던 편의점과 다른 편의점이라서 그런 것 같았다.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가구매 하나 만드는데 도합 6천 원이라는 거금이 들었다. 이럴 거면 제품을 실제로 하나 사는 게 낫겠다 싶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나처럼 이렇게 어설프게 하지는 않겠지.


스마트스토어를 연 지 3주만에, 어떻게 알고 들어왔는지 모를 신규 주문 5건(물론 최신성 버퍼를 받아 인기 없는 키워드에서 상위 노출이 되긴 했다.), 친한 친구에게 부탁해서 1건, 남편에게 부탁해서 1건 총 7건의 주문을 받았다. (친구에게는 물건값을 줄 테니 물건을 받아서 포토 리뷰를 써달라고 부탁했는데, 친구가 '마수걸이'인 셈 치자며 돈을 받지 않았다.)


남편은 2개 상품을 주문했는데, 하나는 내가 실제로 사용해보고 상세페이지를 다시 만들어볼까 하고, 실제로 제품을 주문해서 우리 집으로 배송 시키고, 나머지 한 개는 그냥 어디서 스치듯이 본 '가구매'란 걸로 해보자 싶었다.


'가구매'로 처리한 이 제품 A는 며칠 후에 또 주문이 들어왔다. 중국 제품인데도 불구하고 상세페이지가 굉장히 자세하게 잘 만들어져 있었고, 활용하는 법을 GIF로 자세히 보여주고 있어서 사람들의 궁금증을 해소시켜주었다. 나름 우리 가게 '베스트셀러'인 셈인데,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나는 이 제품을 '무료배송'으로 17,600원에 팔고 있었는데, 이 카테고리 1위 판매자는 똑같은 제품을 8,900원, 배송비 2,500원에 팔고 있었다.


내가 파는 가격의 거의 반 값이다.


하지만 나는 비싼 가격으로 팔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도매사이트에서 이 상품을 10,600원에 사야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배송비가 1개당 무조건 3,000원이 붙었다. 그러니까 3개를 사면 배송비가 9,000원인 것이다.


실제로 나는, 4만 원 이상 무료배송이라는 대담한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었는데, 어떤 고객이 이 제품 3개를 주문했다. 제품 합계 가격이 4만 원이 넘으므로 나는 배송비를 받지 않았는데, 정작 나는 도매사이트에서 결제할 때 배송비를 9,000원이나 냈다.


그래서 나는 물건값에 배송비를 포함하여 가격을 17,600원으로 올리고 '무료배송'으로 처리한 것이었다.


소비자에게 새로운 가치 주는 것도 아니고, 남들 다 파는 똑같은 물건 떼다 팔고, 그렇다고 남들보다 더 싸게 파는 것도 아니고. 내가 계속 이 상품을 이 가격에 파는 건 소비자한테 사기를 치는 거나 다름 없었다.


실제로 사용해보고 상세페이지를 다시 만들어보려고 했던 제품 B가 우리 집으로 배송되었다. 이 상품도 A 상품만큼 팔린 제품이었다. 이 제품은 A제품과 달리, 상세페이지에 GIF 이미지도 없고 해서 내가 직접 동영상을 찍어 GIF를 만들어서 올려보려고 했다. 가격도 남들이 파는 가격과 거의 비슷하게 팔고 있었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도 제법 있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택배 크기가 작았다. 박스에 올 것이라고 기대한 것과 달리 책 크기보다 조금 더 큰 택배 비닐에 담겨왔다. 포장을 뜯었다.


사용할 수도 없는 쓰레기였다. (진짜 쓰레기는 아니고 사용은 가능하나, 대표이미지나 상세페이지로 봤던 것보다 품질이 너무나 떨어졌다.)


고객에게 이런 제품을 팔았다는 사실에 화가 치밀었다.


그나마 팔린 제품이 두 가지인데, 하나는 남들보다 2배 높은 가격에 판매해서 소비자 호구 잡고(그렇다고 마진이 높은 것도 아니고), 또 하나는 쓰레기 같은 제품을 판매해서 호구를 잡은 것이다.


내가 물론 돈을 벌려고 하는 일이지만, 이렇게 보람도 성취감도 없이, 양심까지 팔아가며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사실 이커머스 업계에서 오랫동안 서비스기획자로 일해왔다. 그래서 누구보다 커머스 관리자사이트에 익숙하다. 내가 그런 걸 설계하고 구축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스마트스토어 판매자센터에서 상품 등록이나 광고 세팅 같은 걸 쉽고 빠르게 할 수 있는데, 그런 걸 남들보다 조금 더 쉽게 한다고 해서, 유료 멤버십 가입해서 키워드를 쉽게 찾는다고 해서, 도매쇼핑몰 수백 개에 단시간 안에 가입했다고 해서 유리할 게 하나도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소비자의 새로운 니즈를 충족하는 새로운 제품을 직접 개발해서 브랜딩하고 마케팅해서 판매를 하든지, 아니면 내가 직접 사용해보고 정말 좋다고 검증된 제품만 상세페이지를 직접 만들어 판매를 하든지 그런 식의 명확한 방향성이 필요했다.


그러자면 나처럼 풀타임으로 일하고 퇴근해서 또 아이를 봐야하는 워킹맘의 24시간으론 턱없이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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